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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경력의 트레일러 기사 용씨의 듬직한 뒷모습
▲ 15년 경력의 트레일러 기사 15년 경력의 트레일러 기사 용씨의 듬직한 뒷모습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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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새벽길을 나서는 44세 용씨.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인 일란성 쌍둥이 두 아들의 아빠이자 트레일러 기사다. 

매일 새벽 한참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 깰까 봐 조심조심 미리 싸 둔 도시락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약 30분 거리의 트레일러 주차장에 도착하면 용씨의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지방 소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홀어머니 아래서 누나와 함께 어려운 유년시절을 거쳤고 넉넉지 않은 집안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은 진작에 포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선생님의 권유로 직업훈련원에 들어가서 용접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배운 용접기술로 어렵사리 첫 직장을 구했으나, 용접은 해볼 기회도 없이 허드렛 일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직장생활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두기로 하고 회사를 나오는 날까지도 결국 용접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다시 직장을 구하려고 했지만 군대도 다녀오지 않고 경력도 없는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서 처음보다 직장 구하기가 더 힘들었다. 쫓기듯 도피처로 군대를 택했고 제대했지만 제대 후에도 역시 일자리를 찾는건 쉽지 않았다. 

당장 먹고 살아야 했으므로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하며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친구가 트럭 운전을 해보면 어떻겠냐며 운전을 권했다. 딱히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까 막막하던 차에 시작하게 된 트럭 운전이 평생 직업이 될 줄이야! 

트럭 운전에 특별한 목적도 의미도 없었다. 그저 안정적인 직업이 생기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음에 안도했다. 처음에는 운송회사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으며 일을 했는데 바삐 지내는 사이 어느덧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일을 하며 틈틈이 대형면허를 따고, 특수면허까지 따 두었다. 어느 정도 일을 해보니 이젠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며 내 차를 갖고 직접 사업자가 되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결혼을 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을 수 있는 돈을 따 끌어모아 중고차 시장에서 가장 싼 트레일러를 2000만 원에 구입했다. 만만하게 생각하고 시작한 운송사업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힘들게 일하고 운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고, 경험이 부족해 운전 부주의로 곡선구간을 지날 때 실었던 짐이 다 쏟아져서 돈을 물어야 했던 경우도 있고,  도착지를 잘못 알아서 밤새 다시 운전을 해서 되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소주 한 잔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 소주 한 잔으로 시작된 인터뷰 소주 한 잔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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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없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운전사업자가 된 지 벌써 15년. 지금 그는 주변 사람에게 트레일러 기사를 권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면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되고,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며 도전해 보라고 한다(그는, 나에게도 여성 트레일러 기사가 멋지지 않느냐며 해보라고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차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4시쯤이면 퇴근해서 집에 온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정해서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일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가족은 삶의 즐거움이자 의미라고 말한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운전을 시작했고, 15년을 운전대를 잡으며 그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낳았고, 대출을 받았지만 작은 아파트도 장만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용씨. 마지막 술잔을 부딪치는 중에도 아직 할 말이 많다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쩌면 모든 가장은 늘 할 말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따뜻한 이웃이 곁에 있어서 우리동네는 참 정겹다.

덧붙이는 글 | 한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아이의 친구 가족과도 또다른 가족이 되었습니다. 서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연없는 가정은 없는것 같더군요. 한 동네에 살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아빠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인터뷰를 해보고 싶더라구요. 우리동네 아빠들의 삶을 함께 나눠보고 싶네요.


태그:#따뜻한이웃, #친구아빠, #트레일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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