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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치러진 볼리비아의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운동(MAS) 당의 루이스 아르세(Luis Arce)후보가 당선됐다. 사실 볼리비아는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에 이미 대통령선거를 치러 14년간 통치해온 좌파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대통령이 재선을 했었다. 그러나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기구(OAS)가 대통령 하야를 압박했고 군부와 경찰마저 대통령에 협조를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신변의 위협을 느낀 에보 모랄레스가 사퇴하고 외국 망명에 올랐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제 좌파가 다시 집권하기 힘들다는 전망을 했으며 재선거를 통해 우파 정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1년간의 보수 임시 대통령 체제를 거쳐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에보 전 대통령의 후계자라고도 불리는 아르세 후보가 예상과는 달리 압승을 거둠으로써 이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주고 있다. 당연히 다양한 면에서 시사점들이 많다. 특히 미국이나 주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세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요약: '진보의 대승'
  
 지난 10월 18일 볼리비아 대선에서 55.1%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통령 당선인이 된 루이스 아르세. 그는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경제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 10월 18일 볼리비아 대선에서 55.1%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통령 당선인이 된 루이스 아르세. 그는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경제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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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우파가 허무하게 패배했다"는 평이 가능하다. 선거가 너무 쉽게 끝난 점이 오히려 사람들을 의아하게까지 만드는 정도다. 볼리비아는 대선에서 결선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1차 투표에서 50% 이상 득표하거나 40% 이상 득표하고 2위와 격차를 10% 이상 벌린 후보가 나오면 2차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아르세 후보의 경우 이번 1차 투표에서 55%를 득표했고 2위인 우파 후보는 28% 득표해 2차 투표를 할 필요도 없이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상황을 깔끔히 정리한 것이다. 한마디로 압승인 것이다.

선거가 있기 이전의 결과 예측 과정에서의 변수는 상당히 복잡했다. 1차 투표에서 좌파 후보가 이기더라도 드라마 같은 개표 상황이 예상됐고 과반수를 얻거나 10% 이상의 득표율 차이를 보이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2차 투표가 진행될 것이 예상됐다. 2차 투표에서 우파 연합이 단일 후보에게 지지를 몰아주면서 아르세 후보의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나왔다. 미주기구나 미국 정부의 다양한 압력도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다 보면 군부가 누구의 편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볼리비아의 미래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졌다. 물론 대부분의 예상은 유럽과 미국의 언론기관에 의한 것이었지만 하여간 복잡한 안갯 속 정국이 예상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결선투표마저 필요 없을 정도의 큰 차이로 쉽게 선거가 끝났으니, 허무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게 된 셈이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절대적 주류가 아냐

라틴아메리카의 지난 100여 년 간의 역사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미국과는 너무도 가깝고 신과는 너무나도 멀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역사가 이어졌다. 어떤 나라건, 혹은 누가 됐건 간에 미국이 원치 않는 세력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정치의 주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오른다 해도 오래가지 않아 권력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소위 '좌파 휘몰이'라는 현상을 통해 성장한 라틴아메리카의 진보 세력은 미국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언정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을 이번 선거가 확인시켜준 것이다. 실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이다. 볼리비아의 경우 이전의 좌파 대통령이 14년간이나 반미 전선을 주도해 왔고 그 결과 선거에서 이기고서도 망명을 가야만 했다. 즉 반짝 등장한 반미 세력이 오래가지 못하고 망해버리는 지난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이 되살아나는 듯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미국에 저렇게 미움을 사고도 14년 정도면 오래 잘 버틴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좌파가 대통령에 다시, 그것도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이 된 것이다. 즉 미국이 이제는 자기 맘대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를 쥐락펴락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중남미 좌파의 제2의 전성시대를 열다

이미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아르헨티나, 파나마, 멕시코 같은 굵직한 나라들에 좌파 대통령이 존재한다. 이 중에서도 베네수엘라나 니카라과 등과 같은 나라에서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행해져 왔다. 그런데도 이들 국가는 굴하지 않고 잘 버텨내고 있다. 많이 알려진 베네수엘라의 경우에도 미국은 현 마두로 대통령의 합법성을 부정하며 친미세력인 과이도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공식화시켜 놓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실권을 쥐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마두로 대통령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무색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반미 세력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역효과까지 낳고 있다. 쿠바만 하더라도 지긋지긋한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잘 버티고 있다. 쉽게 무너질 것이란 예상을 하는 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개입에 좌파국가들이 휘청거릴지는 몰라도 넘어가지는 않는 이변이 속속 생기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이변이 아닌 게 되고 말았다. 미국으로서는 뼈 때리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라틴아메리카의 좌파로서는 자신감을 더욱 고취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삐걱거리는 우파정권... 고전 면치 못하는 우파

좌파에 대항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우파는 이와는 반대로 어려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남미의 트럼프라고도 불리는 극우의 대명사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와 더불어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고 있고, 칠레는 1년째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역시 풍전등화의 운명이다. 이번에 치러진 반독재 헌법 개정안이 찬성 80%에 이르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역시 우파의 입지가 쪼그라들고 말았다.

전통적인 우파 국가인 콜롬비아의 경우도 심각하다. 콜롬비아는 반군과 정부군의 대립이 국가의 중요 현안인데, 현 대통령이 평화협정을 걷어찬 후 반군과 극우 게릴라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극우 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집단 살해됐다는 뉴스가 신문에 연일 실리는 국가 혼란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나아가 반정부 게릴라들이 구체적 활동을 재개하면 내란이 발발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제 코가 석자인 미국이 이전과 같이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좌파 동맹이 견고해지면서 우파국가의 외교적, 경제적 고립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경제 발전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우파정권의 경제 활성화가 남의 집 이야기가 됐다. 오히려 좌파 국가들과의 협조를 통해 경제적 돌파구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파로서의 매력조차 찾을 수 없게 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왜 좌파인가?

20세기 말 신자유주의를 가장 빠르게 채택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양 기업으로부터 쉬운 먹잇감이 됐고 결국 수탈과 착취 그리고 그 이후의 경제폭망 이라는 공식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항상 따라붙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고, 미국과 서양의 기업들이 라틴아메리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결국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볼리비아의 경우 이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도 미국이 추진하던 송유관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면서 인기와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여러 국가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형국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에 주어진 과제는 녹녹한 것이 아니었고 많은 부분 만족할 정도의 성과를 얻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방향성에 대한 지지를 멈추지 않고 있다. 비록 천천히지만 그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그러나 최소한 "무분별한 신자유주의는 아니다", "묻지마 우파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라는 국민적인 분위기가 정착됐다는 것을 이번 볼리비아 대선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즉 라틴아메리카의 좌파는 포풀리즘에 의해 유행처럼 지나가는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미국과는 적당히, 중국과는 뜨겁게'

더 이상 미국이 중남미를 좌지우지 못 하는 현실의 원인 혹은 결과로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중국의 약진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는 마치 북한이 그나마 견디고 있는 배경에 중국이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문화적으로까지도 중국은 자신의 주요 파트너로서, 또한 미국 압박의 카드로서 중남미에 일찍부터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좌파국가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중국과의 밀월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특히 중요 천연자원을 많이 가진 볼리비아의 경우 이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세계 자원시장에서 볼리비아와 같은 자원 강국이 석유를 가진 베네수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러시아와 손을 잡는다면 미국으로서는 상당히 힘든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친 중국 현상이 좌파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중차대한 목표에 미국의 협조는 줄어들고 중국의 매력은 날로 높아만 가는 상황이다 보니 그 누구도 맹목적 친미 해바라기로 남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우파국가가 가진 난처함이다.

파나마 같은 나라에서는 2017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었는데 그 당시의 정부는 우파였다. 2019년에 등장한 중도좌파 정부에서조차 지난 정부의 중국과의 밀월에 속도 조절을 하고 미국과의 친밀도를 높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제는 외교적인 면에서나 경제적인 실익의 면에서 좌파 경제, 외교가 가져다주는 달콤함이 더 큰 상황이 생긴 것이다. 돈 떨어진 미국이 호통만 친다고 해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더는 고분고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제는 "미국과는 적당히 그리고 중국과는 뜨겁게"가 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들어 중남미 좌파 블록에 대한 중국의 무기 거래까지도 활발해지고 있으니 그 애정의 열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뜨겁다. 미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한다면 중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에워싸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형세이다.

한국도 긴장해야 하는 라틴아메리카 좌파 현상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의 중요한 특징으로 엘리트 위주가 아닌 중산층 중심의 경제정책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 내고 있다. 재벌이나 대기업 혹은 외국인 투자 중심의 경제가 아닌 서민층 구제와 저소득층 발전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진보적 대안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모델이 힘을 얻어 경제 분야에서 확실하게 그 방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중국과의 연동 등을 통해 그리고 좌파경제 블록 활성화 등을 추구하면서 극빈층은 서민층이 됐고 역동적 중산층은 시장에서 매력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이해관계의 득실도 복잡해졌다. IT기술, 전자상거래와 같은 첨단 산업에서부터 2차산업이나 천연자원 등과 같은 전통적 경제 분야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는 세계 경제의 주요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이 미국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독자적으로 혹은 자체 경제 블록과 연계된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구현된다면 이는 우리의 대라틴아메리카 진출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닐 수 없다. 매력적 경제 주체가 된 라틴아메리카에 기존의 수탈적 투자와 수직적 협력이라는 관계 전통을 이어가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세계를,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다시 한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라틴아메리카도 변하고 있다. 그것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말이다. 이제는 그 변화를 전통적이고 막연한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될 정도의 한국이 됐다. 즉 새로운 관계를 우리 스스로가 판단해서 이끌어 나아가야 하는, 이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국면을 맞은 것이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가 중요하고 좋은 시험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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