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포스터

영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포스터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내가 좋아하는 전쟁>은 제22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제44회 안시영화제 콩트르샹상을 받았다. '일제 부르코프스카 야콥슨' 감독의 조국 라트비아의 가슴 아픈 현대사를 개인적인 역사와 결합했다. 실사 장면과 애니메이션이 교차 편집되고, 실존 인물 사진 및 아카이빙 자료, 푸티지 영상들이 적재적소에 혼합된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잘 되어 있고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며 사실성을 높였다.

한 지붕 속 두 이념

어릴 적 집안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항상 웃음 띤 공산주의자 아빠와 항상 슬픔을 띤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당의 충실한 일꾼이었지만 감독이 7살 때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동네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시설을 만들었고 항상 행복했다.

반면 할아버지는 구소련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때문에 받은 고통을 떠올리며 자식에게 대물림되지 않길 바랐다. 당연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신 할아버지는 늘 손녀에게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손녀가 공산주의자가 될까 봐 걱정스러워했다. 훗날 할아버지는 자기 땅을 가진 농부라는 이유만으로 반동분자가 되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죄였기 때문이다.

감독은 세대를 걸쳐 집안의 큰 그림자처럼 내려앉은 전쟁과 함께 자랐다. 어릴 적 가장 좋아하는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TV나 라디오, 책, 주변의 선전물은 이를 주제로 한 것들로 가득 채워 있었다. 언제나 공산주의는 힘이 세고 멋있었다. 나치는 비겁하고 험악한 악당이고 공산당은 영웅이었다. TV에서는 나치 하의 구소련 전사들의 활약을 보여주기 바빴고, 학교에서도 사상교육, 군사교육이 이어졌다.
 
 영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스티컷

영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스티컷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그렇게 피오네르(пионе́р 개척자)라는 구소련과 공산권의 소년단에 입당해 좋은 성과를 올려 단장이 된다. 당에서 원하는 우등생이 되기 위해 봉사활동과 당을 찬양하는 기사도 썼다. 이유는 간단했다. 남편을 잃고 가장이 된 엄마의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닦아주고 좋은 평가를 받아 대학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사춘기가 되자, 냉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저 하라는 대로 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알면 알수록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공산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체제였지만 개인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곧 3차 대전이 일어날 거라며 긴장감을 조장했고, 총을 쏘는 훈련은 공부보다 중요했다. 학교 밖에서는 항상 비누나 버터 등 생필품은 모자라 허덕였다. 배급이 끊어지면 어찌할 도리 없이 다음 배급을 기다려야만 했다. 공산주의와 낙원의 공통점은 헐벗고 사과 하나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은 공동 소유, 평등을 외치지만 모두가 평등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항상 굶주렸고 누군가는 배가 불렀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
 
 영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스틸컷

영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스틸컷 ⓒ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영화는 소녀였던 감독의 성장과 체제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담담히 담았다. 결국 아무것도 몰랐던 소녀가 국가 체제의 실상을 알아차리며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변화는 맞는다. 어릴 적 자부심을 가졌던 고향의 왜곡된 역사의 실체도 전한다. 독일과 소련이 평화 협정을 했던 역사적 장소로 알려졌지만, 사실 쿠클란드 전투는 나치의 항복문서를 받기 위해 자국의 병사가 큰 희생을 치른 피의 전투였다. 가장 좋아하던 전쟁은 사실상 조국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강요된 전쟁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감정을 속여서는 안 될 뿐더러 서로 믿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구소련 연방국이었던 라트비아가 독재 정권 치하에서 비로소 독립을 맞이한 것이다.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역사상 가장 긴 인간 띠를 만들었다. 이른바 '자유의 사슬'로 이어지는 연대기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감독은 내 목소리가 없다면 가축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런 영화의 메시지는 부모님과 바다를 보러 가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초반 장면에서 발화된다. 지금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자유가 누군가에는 그토록 갈망하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은 어릴 적 기자가 되고 싶었던 감독의 이루지 못한 꿈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과, 고향마을 사람들이 실제로 겪은 일이자 잘 몰랐던 라트비아의 역사를 조망하는 계기이다. 구술로 풀어낸 증언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만들어졌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