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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예고도 없이 어느 날 찾아온다는 사실이 준 트라우마가 컸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예고도 없이 어느 날 찾아온다는 사실이 준 트라우마가 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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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아빠가 죽었다. 말기암 3개월 선고를 9월에 받았는데 12월에 장례를 치렀다. 당시 기숙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지라 주말에만 집에 올라왔는데 매번 아빠가 집에 없었다. 엄마는 '아빠가 탈장 때문에 병원에 있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숨겼다.

10월이 되어서야 엄마가 아빠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드라마에서 "암입니다" 할 때 주인공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믿기지 않았다. 아빠가 아파 보이긴 했지만 암이란 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거였다.

당시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친구와 이제 막 알콩달콩 연애를 시작하고 있던 나는 현실을 외면했다. 주말에 집에 와도 잠깐 아빠를 보고 데이트하러 나갔다. 연애하는 기분에 들떴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아빠의 병을 생각하면 나의 두 발은 땅을 딛지 못하고 허공을 헤맸다.

장례를 치르면서 아빠의 삶을 생각해봤다. 가난한 집 9남매 맏이로 태어나 영특했지만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아빠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 기중기를 운전했지만 거대한 차를 살 수 없어서 공사판 반장 자리에서 물러나 트럭을 몰았다.

그다음엔 택시를 몰아서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냈다. 고단한 인생을 술과 담배로 달래던 아빠는 딸이 교사가 되고, 아들은 미국에서 자리를 잡는 와중에 세상을 떴다. 고생한 결실로 인생을 즐겨야 할 순간에 생이 끝나버렸다.

아빠에게 유난히 예쁨 받은 딸이었는데 암 투병을 하는 동안 나는 연애나 했다는 죄책감에 힘들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예고도 없이 어느 날 찾아온다는 사실이 준 트라우마도 컸다.

그런데 재작년 가까운 친구가 생을 마감했다. 희귀암이었던 그는 11개월의 투병 기간 동안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있었다. 살아 내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그의 손을 잡아주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를 보는 게 아니라 자꾸 죽음을 보았다. 아빠의 죽음이 겹쳐져 그에게서 멀리 달아났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내게 코로나는 힘겨운 시간이다. 올 2월 처음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했을 때 불면에 시달렸다. 신경쇠약의 첫 증상인 건강 염려증이 도져서 모든 것이 걱정되었다. 회사에 가는 남편도 불안하고, 아이와 집콕하면서 엘리베이터도 안 타면서 살았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었다. 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받고 일상을 회복했다. 그러나 알고 있다. 내 마음 속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직면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될 거라는 걸.

다시, 사다리 앞에 선 그 마음
 
 책 <떨어질까 봐 무서워>
 책 <떨어질까 봐 무서워>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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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떨어질까 봐 무서워>의 주인공 험프티 덤프티는 높은 담벼락에서 하늘을 나는 새를 보는 걸 좋아했다. 그곳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여러 사람이 나서서 부서진 몸을 붙였지만 반창고로 붙일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험프티 덤프티는 그 사고 이후 높은 곳이 두려워졌다. 마트에 가서도 낮은 곳에 있는 것만 살 정도였다.

새를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그는 땅에서 새를 보았지만 이전만 못 했다. 고심 끝에 종이비행기를 접듯 종이새를 접었다. 실패하고 실패하고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그럴싸한 새를 만든 험프티 덤프티.

그는 밖으로 나와 종이새를 날렸다. 새는 진짜 새처럼 하늘을 날았다. 그런데 또 사고가 났다. 종이새가 그때 그 담벼락에 올라가 버린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험프티 덤프티는 담벼락을 오르는 사다리 앞에서 고민하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른다. 결국 담벼락 끝에 오른 그는 두려움을 이기고 알에서 깨어나 진짜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떨어질까 봐 무서워>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경험 때문에 다시는 높은 곳을 쳐다 보지 않던 험프티 덤프티가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한 책이다.

담벼락 그림자 위를 걷는 그림이라든지, 험프티 덤프티와 담벼락에 올라간 새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구도, 높다란 담벼락을 올려다 보는 험프티 덤프티의 시선이 인상적인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이다. 알에서 깨어나 새가 되어 날아가는 험프티 덤프티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피하지 않고, 한 걸음씩 발을 옮기다 보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 <데미안> 중

유명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를 가둔 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빠가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아빠가 지금 내게 원하는 게 뭘까?'

아빠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두려워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아빠가 원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겠지.

'그의 손을 잡지 못하고 달아난 내게 그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그때 너무 서운했겠지만 그 역시 내가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사는 걸 바라진 않을 것이다.

가까운 이가 떠나간 두 번의 죽음을 깨고 나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언제든 내 삶 어딘가에서 당시의 기억이 튀어나와 두렵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험프티 덤프티가 자신이 좋아하는 새를 통해 두려움을 직면하고 극복한 것처럼, 나도 하고 싶다. 내가 사랑한 그들이, 나를 사랑한 그들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담벼락을 직면하고 한 걸음씩 오르고 싶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담벼락을 다 올라 그 위에 서는 것보다 오르는 과정이나 다름 없다. 트라우마를 극복해 높은 곳에서 서면 좋겠지만 담벼락을 피하지 않고 한 걸음씩 오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담벼락을 오르는 험프티 덤프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를 응원하려 한다.

떨어질까 봐 무서워

댄 샌탯 (지은이), 김영선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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