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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텀블벅에서 열린 프로젝트 '성지 할머니들의 꿈을 담은 물건들'의 리워드로 주어졌던 유리컵.
 지난 4월 텀블벅에서 열린 프로젝트 "성지 할머니들의 꿈을 담은 물건들"의 리워드로 주어졌던 유리컵.
ⓒ 텀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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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깍이 할머니 학생의 글씨·그림'이 포함된 제품을 앞세워 대중들로부터 750만원을 모금했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한 프로젝트가 저작권 논란에 휩싸였다. 

'할머니가 그렸다'던 유리컵 속 그림은 알고보니 한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이었고 '할머니가 썼다'던 일력(한 해의 날짜가 각 장에 적혀 있어 매일 한 장씩 떼는 달력) 속 글씨는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 '카카오같이가치'가 지난 2017년 '상업 용도 사용 불가'를 전제로 무료 배포한 한 할머니의 폰트였던 것으로 16일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상황의 전모는 이렇다. '성지 할머니들의 꿈을 담은 물건들'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텀블벅 사이트에 올라온 건 지난 4월. 창작자 A씨는 당시 "늦깍이 할머니 학생들의 꿈을 응원하고자 한글 교과서와 자서전 제작을 지원하려 한다"며 프로젝트 취지를 밝혔다.

대중들로부터 100만원의 투자를 받아 전쟁·가난 등의 이유로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채 공장으로 내몰렸던 60~80대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이들이 자서전을 쓰는 데 보태겠다는 취지였다. 해당 프로젝트는 지난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약 한 달 간 진행됐다.

'할머니' 앞세워 750만원 번 프로젝트에 할머니는 없었다

프로젝트는 '리워드(보상)형'이었다. 일정 금액 이상을 내면 일력이나 유리컵 등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 A씨는 "할머님들이 직접 쓰고 그리신 글과 그림 그리고 꿈을 엽서책과 일력 그리고 컵에 담아냈다"며 제품들을 소개했다.

대중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취지에 공감한 투자자 대다수가 할머니가 그리고 썼다는 일러스트와 글씨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제품을 구입할 목적으로 펀딩에 참여했다. 시작된 지 하루 만에 프로젝트는 목표 금액 100만원을 넘어섰고,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333명이 참여해 총 750만원이 모여 목표 금액의 750%를 달성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그렸다던 유리컵 속 일러스트는 실은 일러스트 작가 B씨의 작품이었다. B씨는 "올해 초 텀블벅에서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A씨의 말을 듣고 그 취지에 공감해 소정의 금액만 받고 계약서 없이 그림을 건넸다"고 <오마이뉴스>에 설명했다.

A씨는 B씨로부터 받은 일러스트를 엽서와 유리컵 등에 활용하면서도 프로젝트 초기에 이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동시에 유리컵 소개 문구에 '성지 할머니들의 그림을 담았다'고 적어 마치 할머니들의 작품인 것처럼 소개했다. 이를 본 B씨가가 문제를 제기하자 A씨는 그제야 일부 단어를 수정하고 제품 소개란에 일러스트 작업에 B씨가 참여했음을 알리는 문구를 추가했다.

문제가 된 건 일러스트뿐만 아니다. A씨가 판매한 일력에는 손 글씨처럼 보이는 문구들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는 카카오같이가치가 지난 2017년 서비스 시작 10주년을 맞아 무료로 배포한 '할머님 폰트'였다. 카카오는 현재 A씨가 폰트를 무단 사용했다고 보고 저작권 침해 관련 대응을 준비 중이다.

저작권 논란에도 창작자 A씨는 지난 9월 한 오픈마켓에 해당 제품들을 올리고 판매했다. 이에 B씨는 A씨에게 몇 차례나 판매중지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의 SNS에 저작권 문제를 공론화했다.

창작자와 작가 사이의 공방

A씨는 '저작권과 관련해 B씨와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프로젝트 진행 당시 B씨의 그림이 포함된 제품 하단에 'B씨가 참여했다'는 문구를 남겼다"며 "또 정식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으나 B씨에게 이미 소정의 금액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일러스트 작가 B씨는 "프로젝트 초기에는 일러스트를 '할머니 그림'으로 표현했고 내가 참여했다는 표시도 없었다"며 "직접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야 관련 문구를 포함시켰다"고 반박했다. B씨는 이어 "애초에 '텀블벅 기획'에 한해 일러스트를 쓰기로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러스트가 들어간 제품의 오픈마켓 판매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B씨의 작업임을 명시한 표현 자체에도 논란이 있다. A씨는 '해당 제품의 일러스트 작업에 B씨가 참여했다'고 적었는데 참여라는 단어만으로는 일러스트가 B씨 작품인지를 분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당 문구가 포함된 이후에도 설명란 곳곳에는 여전히 제작자를 불분명하게 하는 문구들이 남아 후원자들의 혼선이 빚어졌다.

실제로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리워드 제품을 전달받은 후원자들은 자신의 SNS에 B씨의 일러스트가 포함된 유리컵 사진을 올리며 '늦깎이 학생 할머니들의 작품'이라며 소개했다.

텀블벅 측도 문제를 인지하고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텀블벅 관계자는 "해당 창작자의 경우 저작권 문제 외에 별도로 텀블벅 내부 정책 중 '기부 금지'에 대한 위반 사항도 확인이 되었다"며 "종합적인 판단 아래 이용 경고 조치를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창작자쪽에서 후원자를 대상으로 한 사과문을 게재하기로 했으며 이 사과문을 카카오같이가치와 텀블벅에 동시 게재할지에 대해서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거짓 정보에 속은 후원자들 환불도 어렵다

후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어도 후원자들이 환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다수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약관에 '프로젝트 관련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을 적어두고 있어 환불은 어디까지나 창작자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텀블벅 웹사이트 이용약관 제39조에는 '회사는 창작자와 후원자의 연결을 매개하는 중개플랫폼을 제공하는 주체이므로 직접 프로젝트를 생성 및 운영하지 않으며 후원 및 선물 전달 계약의 당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이에 따라 제40조에는 '회사는 회원이나 제3자 및 기타 유관기관에 의해 게재된 의견, 정보, 자료 사실에 대하여 신뢰도, 정확성 등을 보증하지 않으며 회원이 이를 신뢰함에 따라 입은 손해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고 나와있다.

플랫폼만의 문제도 아니다. 법적으로 따져 봐도 소비자가 해당 제품을 환불받기란 쉽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아래 공정위) 소관 법률인 전자상거래법(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소비자는 '상품이 표시·광고와 다른 경우' 상품을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된 날이나 알 수 있었던 날부터 30일 이내에 교환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거래 과정에 일부 제품이 껴있다 하더라도 크라우드 펀딩의 주 목적은 제품의 매매가 아닌 '투자'라고 보고 크라우드 펀딩 과정 속에 오고가는 아이디어 제품들을 전자상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면책 조항을 앞세우는 플랫폼과 크라우드 펀딩을 투자로 해석하는 공정위 사이에서 소비자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소비자원은 작년 한 해동안 크라우드펀딩 관련 피해 구제 요청 건수는 66건으로, 1건이었던 2017년과 22건이었던 2018년 대비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태그:#텀블벅, #플랫폼기업, #크라우드펀딩, #저작권,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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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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