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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아차, 하는 수가 있다. 틀린 주장을 하거나, 어처구니없이 생떼를 쓰는 자아를 들여다볼 때 그렇다. 젊은 날에는 잘못해 놓고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지 못했다. 이제는 확실하게 사과하려고 한다. 나도 사람이고, 실수는 누구나 하니까, 하고 편하게 생각한다. 더욱이 "강호에는 고수가 많지 않은가?!" 죽는 날까지 배우며 살려 한다.

재미있는 책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의 부제가 많은 것을 내포한다. '융 심리학이 말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시간'. 융이나 프로이트에 관해 깊이 있는 서적을 읽은 적이 없기에 움츠러든다. 하지만 배움에 빠르고 늦고는 없는 법. 용기를 낸다. 중년에 접어든 나의 내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남은 생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서책의 표지에 있는 또 다른 문장이 눈길을 잡는다. '반쪽짜리 삶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면, 온전한 존재로 살고 싶다면 당신 그림자와 마주하라!' 나는 아직껏 내면의 심연에 자리한 음습한 그림자를 불러낸 기억이 없다. 아주 짧은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책하거나 반성한 일은 있지만. 이 책은 여러모로 나를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내가 살지 못한 삶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 융 심리학이 말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시간, 로버트 존슨, 제리 룰(지은이)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 융 심리학이 말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시간, 로버트 존슨, 제리 룰(지은이)
ⓒ 가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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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시공간과 인과율에 묶여 살아야 하기에 우리는 언제나 선택에 내몰린다. 가장 고전적인 선택의 고뇌는 '짜장이냐, 짬뽕이냐?'는 것이다. '짬짜면'이라는 비상수단이 나왔지만, 어째 비겁해 보인다. 선택하지 않은 짬뽕이나 짜장은 후회와 아쉬움을 남긴다. 삶은 이런 선택의 폭과 수준을 대거 확장하고 심화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겨난다.

공부 안 하는 아이를 닦달한다는 보험설계사 엄마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당신은 공부 좋아하고 잘했나요?" "전혀 아닙니다." "근데 왜 아이한테 공부를 강요하세요?" "제가 못했으니까 아이는 공부 잘해서 판검사나 의사 시키고 싶어요!" "아이한테 물어봤어요? 판검사나 의사가 되고 싶냐고?" "그런 걸 왜 물어요. 내 자식인데, 내 마음이죠!"

만일 그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아래 문장에 빨간 줄을 그었을 것이다.
 
융은 자녀가 져야 하는 가장 큰 짐은 부모 내면의 살지 못한 삶이라고 썼다.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야망이나 계획 또는 한계를 떠안는 한, 우리는 과거의 포로 신세로 살아갈 뿐이다. 부모가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자기가 살지 못한 삶을 자각하는 것이다. (57-63p)
 
우리는 살지 못한 삶의 그림자에 짓눌리거나 혹은 더불어 살아간다. 지난날의 선택에 한없는 회한을 되풀이하며 후회를 곱씹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살지 못한 삶이 지금의 삶보다 멋지거나 대단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저 다를 뿐, 삶의 원형적인 모습은 거기서 거기 아닐까. 살지 못한 삶을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콤플렉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에 콤플렉스 없는 사람은 없다. 핑계 없는 무덤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융은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심리유형의 집합체로 콤플렉스를 정의한다. 보험설계사는 한국에서만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판검사나 의사를 부러워하면서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편이 아이 닦달이다.

콤플렉스는 오랜 세월 누적된 결과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하여 확립된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이 우리 모두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언제나 비슷한 선택과 판단과 생각을 되풀이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한탄한다. 지은이들의 지적을 보자.
 
우리는 낡은 무의식의 프로그램을 따르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지겹거나 자멸적이거나 제한적인 선택을 하고는 애꿎게 불운이나 운명을 저주한다. (102p)
 
유사한 연애주기와 패턴, 잦은 이직과 불만족, 고정된 생활방식 등이 그들이 말하는 콤플렉스의 실례다. 콤플렉스에서 놓여나려면 자신의 선택과 능력이 늘 옳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들은 자신을 행동의 주체에서 관찰자로 바꾸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욕망과 소음을 잠재우라고 조언한다. 콤플렉스의 해악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시라.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거부하는 자기 안의 무엇, 그것으로 남을 비난하고 헐뜯을 것이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 그것 때문에 남과 싸우거나 도망칠 것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무엇, 그것을 채우려고 남에게 의존할 것이다. (115p)
 
중년의 두 얼굴

누적된 콤플렉스로 괴로운 인생은 중년이다. 청소년기나 장년기에 유용한 미덕이나 사고방식은 중년 이후의 삶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인생의 오후는 오전과 다름없이 의미로 가득하지만, 그 의미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전이 생으로 충만하다면, 오후에는 죽음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중년에는 '영원한 아이'와 '현명한 어른'의 두 원형이 있다.
 
영원한 아이는 기운을 북돋고, 기발하며 실험적이고, 낙관적이며 이상주의적이고, 장난기 많고 창의성이 넘친다. 환상에 사로잡힌 듯 무책임하고 변덕스러우며 종잡을 수 없다. 현명한 어른은 실용적인 구조와 체계를 만드는 기운이며, 법과 제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안정, 질서, 통제, 관리다.(249-250p)
 
중년과 그 이후의 사람들은 영원한 아이와 현명한 어른이 균형과 화합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원한 아이가 죽어버리면 '엄근진'에 빠져 법과 틀과 안전에 묶여버린 꼰대가 되기 쉽다. 영원한 아이에 사로잡힌 사람은 철이 없고 이기적이며,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 머물게 된다. 두 원형이 균형을 유지할 때만 진정한 성숙에 이를 수 있다. 지은이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늙는다는 것은 존재의 마지막 단계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지만, 여전히 지혜를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화와 질병의 제약과 싸울 것인가, 아니면 그런 과정이 주는 가르침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320p)
 
삶을 통합하고 긍정하라!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나는 날마다 내 안의 '비평가' 기질에 놀라곤 한다. 차선을 밟으며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는 난잡한 운전자를 향한 육두문자를 누르기 어렵다. 그런데 지은이들은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인간 내면의 목소리는 언제나 남을 평가하고 추측하며 판단하고 불평하며 참견한다는 것이다. 솔깃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우리 내면에는 탐욕, 잔인, 분노, 시기, 질투, 욕정, 인색 같은 인격의 난감하고 추악하며 당혹스러운 면이 늘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것들의 다른 이름이 비평가, 피해자, 냉소가, 시인 등이다.

지은이들은 이런 부정적인 면, 달리 말하면 우리의 악질적이고 음험한 그림자와 대화하는 연습을 통해서 무의식적인 패턴을 바꾸라고 권한다. 그들은 삶에 필연적으로 자리하는 선과 악,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 빛과 어둠 같은 대척적인 모순을 고스란히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삶을 모순의 연속으로 보고 의무적으로 싸우는 대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운명으로 껴안아야 한다. 세상의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면 된다. 무거운 짐을 벗는다는 것은 현실에 자아를 가둔 채 상처 입히는 것을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불평하는 것을 멈추는 일이다. (291-298p)
 
우리에게 주어진 시공간과 관계와 인과율을 긍정하고 통합하는 길이 현명한 인간의 선택이다. 우리 안의 깊은 심연에 자리하는 추악하고 컴컴한 그림자와 대화하면서 그것까지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살지 못한 삶의 부정적인 에너지까지 끌어올려서 인생 전체를 통관하고 돌이키면서 조화로움을 찾을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로버트 존슨-제리 룰 지음, 신선해 옮김, 가나출판사, 2020.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 융 심리학이 말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시간

로버트 존슨, 제리 룰 (지은이), 신선해 (옮긴이), 가나출판사(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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