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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이전 기사] "쾅" 오토바이 사고에도 배달 음식 먼저 챙긴 10대 건우 
(유건우씨 이야기 1편에서 이어집니다)

2019년 12월 유건우가 운전하던 오토바이가 택시와 부딪히는 사고가 났다. 미끄러져 혼자 넘어진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차와 부딪히는 사고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배달이 많은 날이었다. 사무실은 2개의 배달을 엮어 강제배차 시켰다. 두 배달지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고속도로 출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한 군데 배달을 마치고 정해진 시간 내에 다른 하나를 배달하기 불가능한 위치였다. 한 곳의 배달을 마치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고속도로 출구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시도했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택시가 달려오고 있었고, 오토바이는 달려오는 택시를 피하지 못했다. 유건우는 최대한 왼쪽으로 핸들을 틀었으나 배달통 끝부분이 택시와 부딪혔다. 결국 오토바이는 택시를 들이받고 날아갔다.

유건우는 튕겨 나갔고 몇 바퀴를 구르다 멈췄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일었으나 배달 중이던 음식에 대한 걱정이 그 생각을 눌렀다. 초조한 마음으로 사무실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속도로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말했는데, 유건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장님이 물었다.

"너 신호 지켰어?"
"잘 모르겠어요. 근데 배달을 하나 못 갔어요."


사고 순간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통화한 지 10분 만에 사장님과 다른 라이더가 각각 오토바이를 타고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라이더는 음식 봉지를 받아들고 배달을 하러 갔고 사장님은 택시기사와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사고를 수습했다. 유건우 오토바이는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사장님은 알아서 오라며 사고 현장을 떠나버렸다. 유건우는 배달 대행을 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겨우 집까지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긴장과 불안이 뒤섞여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난 날은 금요일 밤이었는데 다음날은 실신한 듯 하루 종일 잠에 취했다. 일요일 아침에야 겨우 눈을 떴는데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굽힌 곳이 다 아파 동네병원을 혼자 찾았다. X-ray와 MRI 검사를 받는데 아픈 몸보다 병원비가 걱정되었다. 간호사에게 비용을 물으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렸다. 간호사가 유건우에게 물었다.

"산재 가입하셨죠?"

유건우는 '라이더유니온'을 떠올렸다. 여름에 노동조합에 가입해 매월 조합비를 내고 있었다. '라이더유니온'에 전화를 걸었는데 활동가는 일하다가 난 사고니 산재를 신청하자고 했고 이후 필요한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유건우는 필요한 것에 대해 메모를 했다. 가장 먼저 병원에 진단서를 요청했다.

사고 나면 사장님
 
라이더 유건우씨
 라이더 유건우씨
ⓒ 유건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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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나면 배달음식과 영수증을 버리고 스마트폰에서 배달라이더 전용 앱을 삭제할 것.'

계약서를 쓸 때 사장님으로부터 들었던 유일한 지침이다. 다친 몸이나 치료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

"리스 비용이 보험료라고 생각해. 우리도 손해 보면서 빌려주는 거야."

사장님은 유건우를 볼 때마다 생색을 내며 말했다. 오토바이 리스 비용이 한 달에 50만 원인데 보험료가 포함되어 있다. 배달 라이더들이 가입하는 종합보험인 유상운송보험은 1년에 보험료만 770만 원이 넘는다. 한 달에 내야 하는 보험료만 65만 원이니 사장이 하는 소리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무실에서 드는 보험이 비유상운송보험이라는 데 있다. 비유상운송보험은 배달대행 기사들을 위한 보험이 아니다. 한 식당에 고용된 기사에게만 해당되는 보험이다. 비유상운송보험료가 유상운송보험의 절반정도라 대부분의 배달대행 업체는 비유상운송보험으로 가입한다.

라이더는 보험회사 직원이 당도하기 전에 필히 배달대행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 들키면 모든 비용은 기사가 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보험료가 나올 수 있다면 다행이다. 배달대행 사무실은 보험료가 오를 것을 염려해 보험회사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무실에서 상대방의 차를 수리해주는 것으로 사고를 수습하고 오토바이 수리 비용은 라이더에게 청구하는 식이다. 상대방의 과실일 경우 상대방 보험에서 치료비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라이더의 잘못일 경우 보상금은커녕 치료비마저 받을 길이 없다.

이 모든 사실을 산재 처리 과정에서 처음 알았다. '특고직'이라는 말도 처음 들었다. '특수고용직'의 준말로 배달대행 기사의 업무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특수한 고용이라니, 그 단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특고직의 특수한 점은 산재 사고가 날 때 드러난다. 특고직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하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때에 따라 노동자가 될 수 있다.

일하는 과정에서 업주가 업무내용을 정했는지가 판단기준인데, 쉽게 말해 라이더가 직접 콜을 잡으면 사장님이 되어 사고가 나도 보호를 받을 수가 없지만, 강제 배차를 받으면 사무실의 지시를 받은 것이니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예외사항이 존재한다. 강제배차를 받았어도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과실을 저지르면 산재적용에서 배제된다. 신호 위반은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등과 함께 12대 중과실에 포함되어 있다. 업무상 불가피했다거나 실수였다거나 그것이 사고의 결정적인 원인인지 등은 충분히 따지지 않는다. 유건우의 사고는 강제배차 후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택시 블랙박스에서 신호 위반 사실이 확인되어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유건우는 사고가 난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불편한 몸으로 월요일에 등교를 했다. 무릎의 통증은 걸을 때마다 더욱 심해졌다. 하교 무렵에 배달업체 사장으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해고 통지와 함께 오토바이 수리 견적서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견적서에는 총 85만 원이 청구되었는데 탈 때부터 떨어져 나가기 직전이었던 발판, 뚜껑이 잘 안 잠기던 기름 탱크, 낡아서 잘 닫히지 않던 배달통 수리비용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 사장은 수리비를 내놓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유건우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몸으로 다시 오토바이를 탔다.

한 달에 손에 쥐는 돈
 
남산 N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2020.9.20
 남산 N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2020.9.2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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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일하는 배달대행 사무실은 아파트 대규모 단지와 가까워 평소에도 주문량이 많은 편이었다. 같은 지역에 배달대행 업체가 여러 곳이었지만 유건우가 일하는 사무실의 가맹 식당이 가장 많았다. 밀려드는 콜수에 비해 라이더가 항상 부족했다. 라이더가 모자라다 보니 콜을 얹어서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에서 쓰는 배달대행 앱은 라이더의 전국 순위와 사무실 순위가 매겨지고 라이더가 배달한 횟수와 가져가는 배달료가 표시된다. 배달 횟수와 가맹 식당의 좋아요 숫자를 합산해 순위가 매겨지고 라이더들은 1위부터 30위까지 나뉘어 평가된다. 1위를 하는 라이더는 하루에 100개 이상을 배달하고 하루에 30만 원 이상의 배달료를 가져간다. 소문에는 식사도 거른 채 모든 배달을 뛰어서 한다고 했다.

하루에 40개만 배달해도 녹초가 되니 배달 숫자만으로 라이더의 상태가 쉽게 상상이 된다. 유건우는 랭크 페이지를 볼 때마다 생존을 확인하듯 그 라이더의 아이디를 확인한다. 순위는 지역을 넘어서 전국까지 매겨지는데 순위가 오른다고 수당이 주어지거나 혜택이 있지 않다. 사장님은 오늘도 랭킹에 오른 라이더들의 배달 숫자와 비교하며 닦달한다.

유건우는 오토바이에 고정적으로 한 달에 80만 원 정도를 쓴다. 오토바이 리스비용이 50만 원, 기름값과 관리비용으로 30만 원이 들어간다. 기름도 넣어야 하고, 엔진오일을 매주 갈아야 하고, 브레이크 패드를 갈아야 하고, 후미등도 정기적으로 손 봐야 한다. 그 비용을 빼고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00만 원 남짓이다. 일주일에 6일, 저녁 6시부터 새벽 1, 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해 버는 돈이다.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는다. 밥을 사 먹거나 필요한 것을 사는데 한 달에 50만 원 정도를 쓰고 나머지는 저금하는데 대략 50~60만 원 정도다. 유건우는 올여름에 오토바이를 사려고 했다. 자차 오토바이는 배달대행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갖고 있던 목표다. 지금 타는 리스 오토바이와 같은 기종으로 정했는데 배달하기에도 적당하고 연비도 잘 나오고 무엇보다 저렴했다.

정가는 400만 원 정도고 현금을 주면 380만 원이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건우는 중고 오토바이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여름 오토바이를 살 정도의 돈은 모았지만 오토바이 구입을 미뤘다. 오토바이를 사면 직접 보험료를 내야 하는데 적어도 1년의 보험료는 모아놓아야 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건우씨 이야기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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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분 늦었다, 배달이 취소됐다, 음식값 라이더가 내야했다 http://omn.kr/1p754

태그:#배달,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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