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산 정약용 초상화.
 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관련사진보기

 
그는 '음풍농월' 식의 글쓰기를 지극히 배척해왔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 조선시대 유생들의 행태와는 크게 달랐다. 유배지에서 쓴 각종 시문에는 사회성이 짙게 배인다. 직설 언어보다 비유 또는 상징적으로 각종 적폐를 고발한다.
 
1804년에 지은 「미운 모기」의 상징성을 보자. 시의 중간 부문이다.

 몸뚱이는 지극히 하찮고 종자도 미천한 네가
 어찌해서 사람 만나면 문득 침을 흘리느냐
 밤에만 다니니 참으로 도둑질 배웠으며
 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血食)을 하냐.
 
여름철이면 귀찮은 존재인 모기를 내세워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탐관오리들을 비판한다. 1803년의 작품인 「송충이」를 보자. 시의 후반부이다.

 큰 집과 명당이 만약에 기울어 무너지면
 들보나 곧은 기둥으로 크고 작은 대로 가다듬어 쓰려 했도다
 왜놈이나 유구국이 만약에 처들어 올 때는
 큰 전함 만들어 적의 예봉 꺾으려 했다
 네가 이제 사사로운 욕심으로 함부로 죽여 놨으니
 말을 하자니 내 기가 치받쳐 오르노라
 어찌하면 번개의 벼락도끼 얻어다가
 네 족속들 몽땅 잡아 이글대는 용광로에 녹여버리나.
 
정약용 선생이 유배하며 기거하시던 곳
▲ 다산초당 정약용 선생이 유배하며 기거하시던 곳
ⓒ 이상명

관련사진보기

 
순조 집권 이후 노론 세력이 '신유옥사' 등으로 얼마나 많은 '들보'와 '기둥'을 잘라 땔감으로 만들었는가, 그래서 조정에 똬리를 튼 '송충이'들을 용광로에 집어 넣고자 하는 함원이 담긴다. 다음은 제비를 내세워 무력한 백성들의 애환을 노래하는 1807년 작인 「제비」의 제1연이다.

  제비가 처음 날아 왔을 때
  지지배배 하는 소리 그치지 않네
 
  그 말뜻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집 없는 설움 하소연하는 것 같네

  "늙은 느릅나무 괴목나무엔 구멍 많은데
  어찌하여 그곳에 살지 않느냐"

  제비 다시 지지배배
  사람에게 대답하기를

  "느릅나무 구멍엔 황새가 와서 쪼고
  괴목나무 구멍엔 뱀이 와서 뒤진다오."
 
"위의 시에서 제비는 무력한 백성들이고, 느릅나무와 괴목나무의 구멍은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며, 지지배배 울음소리는 백성들의 원성이고, 황새와 뱀은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의 원수가 된 탐관오리임을 은유하였다. 화평의 세계, 공존의 질서가 무너진 낡은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를 풍자하면서 약자에 대한 연민을 형상화하였다." (주석 7)

 
그의 풍자ㆍ은유ㆍ고발 문학은 항상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상에 초점을 두었다. 1810년에 쓴 「보리죽」은 농촌의 참상을 사실대로 그린다. 제1연이다.

        (1)

 동쪽 집에서도 둘둘둘
 서쪽 집에서도 둘둘둘
 보리 타서 죽 쑤려고
 맷돌소리 요란하네
 보리싸라기 체로 치지 않고
 기울도 까부르지 않고
 그대로 죽을 쑤어
 주린 창자 채운다오
 썩은 트림에 신 침을 삼키니
 머리가 어지러워 아찔거리고
 해도 달도 빛이 없고
 천지가 빙빙 돈다오.

안동김씨 등의 세도정치가 극심해지면서 삼정(三政)이 문란해지고 관리들은 중앙이나 지방 할 것 없이 '승냥'이와 '이리'가 되어 백성들을 뜯어 먹었다. 아전ㆍ수령ㆍ방백ㆍ정승이 바로 승냥이와 이리의 다른 이름이었다. 1810에 쓴 「승냥이와 이리」중 제1연이다.

       (1)

승냥이여 이리여!
우리 송아지 채갔으니
우리 염솔랑 물지 말라
궤짝엔 속옷도 없고
횃대엔 치마도 없다
항아리엔 남은 소금 없고
쌀독엔 남은 식량도 없단다
큰 솥 작은 솥 빼앗아 가고  
숟가락 젓가락 가져가다니   
도둑놈도 아니면서            
어찌 그리 못된 짓만 하느냐   
사람 죽인 자는 이미 죽었는데    
또 누굴 죽이려느냐. (주석 8)


주석
7> 김상홍, 『다산문학의 재조명』, 174쪽,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4.
8> 이 부문, 『다산시정선(하)』에서 발췌 인용했음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다산 , #정약용평전, # 정약용 , #다산정약용평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