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사상
 제사상
ⓒ 노서영

관련사진보기

 
내일(10월 1일)이면 추석이다. 그런데 올 추석엔 이변이 일어났다. 제사 지내는 걸 종교의식처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전통을 지키는 집안이 우리 시댁이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왔다. 형제들도 큰집에 모이지 않고 제사도 큰집 가족만 지낸다고 형제들은 큰집에 오지 말라 한다.

나는 올해 결혼 53년 차다. 결혼 53년 만에 처음으로 추석 제사를 안 하는 것이다. 살다가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 집안으로서는 엄청난 사건인 셈이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사람들의 삶과 문화까지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말았다. 이런 일이 일어 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새로운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은 자꾸 변해 간다. 사람이 전통도 중요하지만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현실이 더 중하다고 본다. 우리 시댁은 오남매다. 누나는 두 분인데 큰 시누님은 돌아가시고 둘째 시누님도 나이가 많으셔서 왕래를 할 수 없다. 제사는 삼형제와 며느리, 손자, 손자 며느리와 함께 모신다.

지난주 전주에 사는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요즈음 코로나 2차 확산으로 비대면으로 추석을 보내라고 하니 우리도 이번에는 따라야 하지 않을까?"
"응? 큰집 형님과 의논하고 그래야지."

남편이 큰집 시숙과 의논 끝에 올 추석엔 제사를 모시지 않기로 했다.

우리 집안 대소사에는 시동생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 나이 든 형들보다 집안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판단력도 뛰어나서 형들이 오히려 동생에게 여러 도움을 받으며 동생 의견을 잘 따른다. 나이 든 형님들을 위해 희생을 많이 하고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시동생이 나는 항상 든든하고 고맙다.

우리 시댁은 종손 집안이다. 결혼 후 양 명절, 시 어른들 제사 여섯 번을 합해서 여덟 번을 지내다가 몇 년 전부터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웃어른들은 합하고 시아버님 시어머님 제사까지 세 번, 그렇게 지내도 일 년이면 양 명절과 세 번 제사와 모두 일 년에 다섯 번 제사를 모신다. 여자들은 제사 지내다가 세월이 다 가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큰상 두 개가 모자랄 정도로 거하게 제사상을 차린다. 우리 큰집 제사는 너무 과하다 싶다.

나는 결혼 전 제사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결혼하고 보니 이건 맨날 제사 지내는 날이다. 큰댁 일 도와주러 다니는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엄청 쌓였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가슴에 화가 올라오고 견뎌내는 일이 결혼 초였다. 그때는 시어른들이 살아 계실 때였다. 어른들이 계시고 시골 일이 많아 큰집을 도와주는 일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남편은 가족 일이라면 거절을 못 하고 온 정성을 다하는 효자였다. 나는 아이들 키우면서 시댁을 오고 가야해 힘든 날이 많았다. 제사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지금은 다 지난 세월이지만,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다. 어찌 살아냈는지.

시댁은 특별한 종교가 없다. 오로지 전통적인 가풍을 지키고 제사를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듯 사는 집안이다. 세상이 변했어도 제사 방법은 그대로 고수하고 이어오고 있다.

힘든 며느리들이 때때로 반기를 들어보지만 우리 집 남자들은 요지부동이라 우리 힘으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하는 일이 며느리 몫이었다. 요즘 세대들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한방에 바꿔버렸다.

시아버님은 제사를 잘 지내라며 유산을 큰댁인 큰아들에게 거의 다 주고 가셨다. 그래서 큰댁은 제사를 잘 지내야 하는 책임감이 크고 다른 형제는 부모 유지니까 잘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계속 제사를 잘 지내고 있다. 형제끼리 불평하지 않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신기하다.

세월이 가면서 달라진 부분은 제사 때 모이는 인원이 좀 줄고 음식이 조금은 간소화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다른 곳과 비교하면 거하게 차린다. 예전에는 종손 집안이라 제사에 오는 사람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야 삼형제와 조카들 몇 사람뿐 이지만.

지금은 큰집 형님이 나이도 많으시고 몸이 아프시다. 큰집 형님네 며느리는 하나뿐, 그러니 어쩌랴, 나는 칠십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에도 제삿날이면 일찍부터 큰댁에 가서 음식 준비를 도와야 한다. 작은집 동서는 교사 생활하다가 정년 후에야 제사 음식 만들기에 합류했다. 나는 결혼 후 작년까지 그렇게 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도 이 집안 문화에 적응이 되면서 괜찮아졌다. 지금은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예전에는 아이들 키우면서 큰집에 제사하러 가는 게 엄청 스트레스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명절 증후군도 찾아오고 힘들었다. 동서 간에도 약간은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불만도 있었다. 그러니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명절에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맞벌이를 하고 사니 바쁘고 더 힘들다. 우리 때와는 다른 세상이다.

사람 사는 게 참 별스럽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 들어가면서 형님 동서와 정이 쌓이고 서로 삶을 이해하는 동지가 되어간다. 누구에게 말 못 하는 남편 흉도 실컷 보면서 서로 이해해 주는 내 편이 되어주는 것도 형님 동서 간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꼭짓점이라는 게 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힘든 것도 익숙함으로 견디게 된다. 집안일도 그랬다. 서로 익숙해지고 배려하고 사랑을 하게 되니 관계가 따뜻해졌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짐을 등에 져 주는 일이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가족으로 찾아온 인연이기에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제 나이 들어 언제 세상과 작별할지 모르는 사이, 때때로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시려온다.

큰댁이 건재해서 명절과 제사 때 형제가 모여 조상을 추억할 수 있고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내는 에너지를 서로 나눈다. 평소에는 얼굴도 볼 수 없는 조카네 가족들까지 명절에 만나서 사는 이야기도 나누며 정도 나누면서 살아왔다.

우리 부부는 올 추석이 쓸쓸해질 것 같아 지금부터 마음이 헛헛해 온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사람들을 못 만나 외로운데 명절에 가족들조차 못 만나니 외로움이 더 깊어진다. 이번 추석을 계기로 우리 집 제사 문화도 바뀌기를 희망한다. 제사를 잊지는 말고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나누어 먹고 간소하게 조상을 잊지 않는 날로 정했으면 싶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어서 빨리 물러가서 마음 놓고 서로 대면하면서 사람의 정을 나누기를 소망한다. 가족들을 만나고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추석, #제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