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이른바 '정주행의 시간'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방구석 1열' 추천작을 갈구하는 수요는 존재하는 법,, 심지어 요번 추석 연휴는, 무려 5일간이다. 양질의 연작 시리즈가 절실한 이들에게 올 추석엔 '다큐(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추천한다.

일찌감치 추천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OTT의 강자' 넷플릭스는 '추석엔 먹방'이라는 듯 연휴에 앞서 '방구석 먹방 기행'을 추천하고 나섰다. <길 위의 셰프들: 라틴아메리카>, <더 셰프 쇼>, <셰프의 테이블>이 그 면면이다.

먼저, <길 위의 셰프들>은 전 세계 시장과 골목 장인들을 조명하는 '길거리 음식 문화사' 연작이다. 그중 최근 공개된 '라틴아메리카'편은 브라질 사우바도르, 멕시코 오악사카, 콜롬비아 보고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페루 리마, 볼리비아 라파스 등 총 여섯 개의 나라의 길거리 맛집과 장인들을 소개한다.

<더 셰프 쇼>는 훨씬 더 대중적이다. 주인공은 이미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길거리 셰프를 연기한 바 있는 <아이언맨> 감독 존 페브로의 인맥이 수완을 발휘하는 시리즈다. 영화 촬영 당시 멘토였던 유명 셰프 로와 함께 존 페브로는 '마블 유니버스'의 동료들인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기네스 펠트로, 톰 홀랜드,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 루소 형제 감독 등을 찾아가, 그들의 '최애' 레시피와 열정을 화면 위에 펼쳐 놓는다.

이 두 작품과 달리 <셰프의 테이블>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전 세계 감춰진 요리 '장인'들을 찾아다니는 이 다큐 시리즈는 시즌3에서 한국의 정관 스님과 사찰음식을 소개한다. 제67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추석엔 먹방'을 내세운 넷플릭스의 추천, 납득은 가지만 공감이 가는 건 아니다. '방구석1열'을 자처할 이들에게 전 세계 산해진미야말로 언감생심을 자극하는 심리적 고문 아니겠는가. 사실 넷플릭스의 다큐 리스트는 방대하고 다채로운 장르로 정평이 나 있다. 시야를 넓혀 보자. 5일 연휴는 그러기에 충분하고 남는 시간이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2020)
 
 넷플릭스 다큐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다큐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인간 마이클 조던을 보여주는 것에 가장 집중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치 조각상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 조각상의 받침대를 허물어 한 인간으로서 그를 담는 것이 제 목표였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이 한 사람을 대중이 더 잘 이해하고 알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제이슨 헤이르 감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이자 1990년대 전 세계를 강타했던 하나의 문화현상이었던 마이클 조던. 그의 전성기를 재차 마주하는 것만으로 '감동'이라는 시청자들이 이 스포츠 다큐를 이미 '레전드'로 만들었다. 넷플릭스와 미 유명 스포츠채널 ESPN이 합작한 이 다큐는 이제는 50대가 된 전설을 비롯해 그의 가족과 동료, 스포츠 전문가들을 포함 106명의 인터뷰와 경기 장면, 1997/98 시즌 우승 당시 뒷이야기를 집대성한 블록버스터급 일대기다.

단순히 농구 팬들을 위한 다큐라 오해하면 곤란하다. 농구를, 마이클 조던을 몰라도 빠질 수밖에 없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과 마이클 조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명장면이 두 눈을 호강시키는 가운데,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필 잭슨 감독 등 위대한 '시카코 불스' 시대를 완성한 동료들 역시 매회 드라마틱하게 조명되는 흥미진진한 다큐다.

물론 그 중심엔 마이클 조던이 자리한다. 이 노력형 천재는 어떻게 그 자리에 도달했는지는 기본이요,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성취의 뒷이야기, 그리고 약점들까지도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는 미디어와 프로 스포츠, 대중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다큐의 절정이다. 이 같은 화제성과 완성도를 바탕으로 이미 속편 <비욘드 더 라스트 댄스>도 제작 중이다.

<타이거 킹: 무법지대> (2020)
 
 넷플릭스 다큐 <<타이거 킹: 무법지대>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다큐 <<타이거 킹: 무법지대>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세상의 '돌아이'들은 많다. 인구가 많은 수록 '돌아이'들의 숫자도 느는 법이다. 미디어도, 그리고 대중들도 그 '돌아이'들의 행보를 욕하면서도 즐기는 법이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와 상반기 미국을 강타한 <타이거 킹: 무법지대>의 주인공 조 이그조틱(본명 조지프 슈라이보겔)의 흥망성쇠가 바로 그런 경우다. 미 오클라호마주에서 호랑이, 사자 등 고양잇과 동물원을 운영했던 조 이그조틱은 '동물 사랑'을 내세우면서도 자기 과시와 수차례의 (미심쩍은) 동성 결혼, 심지어 살인청부 등 범인들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기행을 이어온 인물이다.

지난 5년간 이 조 이그조틱의 행보를 7부작 다큐멘터리에 담은 제작진은 섬세한 다큐가 그러하듯 주인공의 행보를 다각도로 쫓는다. 짜임새 있는 구성도 구성이지만, 조 이그조틱이 급기야 살인청부에 나선 라이벌인 동물보호단체 '빅 캣 레스큐'의 대표 캐럴 배스킨 부부를 비롯해 등장 실존인물들 하나하나가 '희귀' 캐릭터들이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길티 플레져' 조 이그조틱의 행보를 쫓다 보면, 어느새 7부작 350분여의 감상 시간을 '순삭' 당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묵직한 화두를 맞닥뜨린 본인도 함께 말이다.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인터넷 킬러 사냥> (2019)
 
 넷플릭스 다큐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인터넷 킬러 사냥>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다큐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인터넷 킬러 사냥>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이번엔 미스터리 장르다. 그것도 전 세계 '냥이 집사'들을 분노케 할 '고양이 킬러' 얘기다.

시작만 그랬다. 처음엔 동물학대를 일삼는 '관종'인줄만 알았다. 이에 분노한 미국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학대가 담긴 온라인 영상을 토대로 범인 찾기에 골몰한다. 이 온라인 탐정단의 능력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저 온라인 탐정단의 범인찾기 미스터리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3부에서 놀라운 반전 아니 진상이 밝혀진다. 제작진이 끝까지 쫓은 범인의 진상은 실로 충격적이다. 역시나 흥미진진한 구성이 돋보이는 이 3부작 미니시리즈는 동물학대가 더 큰 잔학범죄의 단초라는 범죄학자나 심리학자들의 경고가 왜 '진실'인지를 일깨우는 증거이기도 하다. 역시나 3시간여의 '시간 순삭'은 기본이고 말이다.

<트럼프: 미국인의 꿈> (2020)
 
 넷플릭스 다큐 <트럼프: 미국인의 꿈>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다큐 <트럼프: 미국인의 꿈>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미국이 난리다. 다름 아닌 대통령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임기 내내 친 사고가 어디 한둘인가 싶지만, 선거를 고작 40여 일 앞두고 공공연히 '선거부정'을 앞세우는 '민주주의 파괴자'로서의 면모는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대통령 트럼프'의 연원은 어디서 기인할까.

<트럼프: 미국인의 꿈>을 보라. "진짜 트럼프는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그런' 인물이 대통령이 됐는가"를 묻는 이 4부작 다큐는 그의 50년 지기 친구와 그의 적들, 그를 지근에서 본 지인들, 기자·작가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완성한 '트럼프 일대기'다.

일찌감치 건축업계 유명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유산에 시달려온 트라우마를 특유의 '쇼맨십'으로 극복하는 한편 뉴욕을 주름잡는 '셀러브리티'가 지닌 유명세를 끊임없는 사업 확장과 세금 면제 혜택 등으로 활용해 온 미스터리한 '사업가이거나 사기꾼' 트럼프. 그의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을 직접 썼다는 '고스트라이터'가 전하는 트럼프의 세계관이야말로 현재 미국이 처한 위기의 단초는 아니었을까. 

"도널드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세상은 포식자와 피식자로 나뉩니다. 흑 아니면 백이에요. 포식자가 되지 못하면 희생된다는 거죠. 그의 세계관이요? 무가치하죠. 어떤 가치도 없어요. 저는 그를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했어요. 양심도 없고,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알지 못해요."
넷플릭스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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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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