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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하효선, 황지민, 이소현 학생
 왼쪽부터 하효선, 황지민, 이소현 학생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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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저렇게 발랄한 시기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약속이 많아 늘 분주하고. 친구와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즐거운 그 시절 스무 살. 돌이켜 보니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저들은 지금이 그때인 것을 알고 있을까.

스무 살 무렵 대학생 셋이 즐거워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스친 생각이다.

황지민, 하효선, 이소현. 그들을 지난 8월 14일 용인 백암고등학교 교정에서 만났다. 애초 계획은 꿈의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뒤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꿈지기 선생님까지 한 황지민씨만 만나는 것이었다.

'꿈의학교 하면 떠오르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 제안을 지민씨가 받아 들여서 이들을 한꺼번에 만날수 있었다. '느닷없는 제안인데 가능할까'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을 때 지민씨가 "올 수 있다는데요"라고 말했고, 그들은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교정에 차례로 모습을 보였다. 

지민씨와 소현씨는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하고 있다. 효선씨는 스튜어디스가 되기 위해 항공서비스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민·소현씨는 백암고등학고 선후배 사이다. 지민씨가 1년 선배다. 효선씨는 다른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렇듯 같은 학교지만 학년이 다르고, 더군다나 효선씨는 고등학교도 다른데. 느닷없는 전화 한 통으로 달려 나올 끈끈한 인연으로 이들을 맺어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꿈의학교 1년을 마감하면서 연말에 진행하는 '성장 나눔 발표회'였다. 이들은 학생이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해야 하는 '용인지역 성장나눔발표회 TF팀'에서 활동했다. 지민·효선씨는 사회자로, 소현씨는 기획자로 활동했다.

세 학생 모두 성장 나눔 발표회를 꿈의학교와 관련한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인 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스스로 해 냈다'는 자부심이었다.
 
셋이 친구가 된 사연

 
 왼쪽부터 황지민, 이소현, 하효선 학생
 왼쪽부터 황지민, 이소현, 하효선 학생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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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행사였어요. 그런 행사의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장학사님들이 회계처리 정도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우리가 스스로 기획해야 했어요, 정말 인상적인 기억이죠."- 황지민

"무슨 자신감인지, 제가 글쎄 덜컥 아나운서에 지원을 한 거예요. 행사 기획에 대한 의견도 냈고, 몇 백 명 앞에서 사회도 봤어요. 성장발표회 하면서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고, 제가 정말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쉽게 만날 수 없는 인연도 만났고요."- 하효선

"모임에서 확실하게 내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면서 행복감을 느꼈고, 아 이렇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얻었어요. 꿈에 대한 확신이 없어 혼란한 시기였는데, 발표회를 기획하면서 확신도 가지게 됐고요."- 이소현


듣고 보니 이들에게는 성장 나눔 발표회가 그 어떤 곳보다 큰 가르침을 준 훌륭한 학교였다. 함께, 그리고 스스로 한 덕분에 얻어진 보너스 같은 배움이었다. 이 또한 꿈의학교를 거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생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꿈의학교가 그들의 표정만큼이나 밝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저에게 꿈의학교는 에스컬레이터였어요. 꿈에 대한 확신도 자신감도 없어 남들보다 뒤쳐져 있던 시기에 꿈의학교를 만났고, 내 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돼 단번에 '꿈이 있는 학생'으로 쑥 올라갔기 때문이죠." - 이소현

"저한테는 터닝 포인트였어요. 서비스업을 하고 싶었는데 사람 대하는 게 어려워 주저하고 있을 때 꿈의학교를 만났으니까요. 활동하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러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 하효선

"첫사랑 같아요. 하하.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만날 수도 없고. 어려서 미숙했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그런 존재.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는데 저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간. 꿈의학교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 황지민


꿈의학교에서 꿈이 깨진 까닭
 
 황지민 학생
 황지민 학생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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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씨가 고등학교 때 운영한 학교는 마을 초·중학교 학생들 학습 멘토링과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제공 하는 '아는 형 백암마을학교'라는 꿈의학교다. 그는 이 학교 꿈짱(리더)으로 활동했다. '학생이 만들어가는 꿈의학교(아래 만꿈)'이니, 학교 설립·운영 기획부터 실제 운영까지 학생들이 직접 해야 했다.

꿈의학교는, 지민씨가 운영한 만꿈과 함께 마을에 있는 특정분야 전문가가 운영하는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학교', 기업과 기관이 운영하는 '다함께 꿈의학교', 세 종류가 있다.

지민씨와 함께 이 학교를 운영한 학생은 대부분 교사가 장래 희망인 학생이었다. 지민씨 역시 교사가 되고 싶어 경험을 쌓기 위해 이 학교에 참여했다가 엉뚱하게도 꿈을 깨게 됐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들의 부족한 교육 기회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한 학교였는데, 저는 이 학교를 운영하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즐거운 일이긴 한데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좀... 원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아마 이 경험이 없었다면 선생님 하려고 계속 노력했을 거예요. 특수교육을 준비하기도 했었거든요. 안 맞는다는 것을 빨리 알게 해 줬으니,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됐다고 봐야 하겠네요."
 

지민씨가 '아는 형 맥암 마을학교'에서 얻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저를 참 겸손하게 해 준 학교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내가 갖춰야 할 능력의 전부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꿈의학교를 하기 전이죠. 성적이 낮으면 무시하고 높으면 우러러보는 그릇된 문화가 있는데, 저도 암묵적으로 이에 동조하던 그런 때죠. 그런데 꿈의학교를 하면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하다 보니, 제 힘 만으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러면서 겸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 거죠.

장소대관, 학생 모집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하니, 정말 광야에 던져진 느낌이었어요. 이를 헤쳐 나가면서 나와는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친구를 보게 됐고, 성적이 다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거죠. 나보다 나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들과 힘을 합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새길 수 있었어요."


꿈이 있어 당당하고 발랄한 스무 살
 
 왼쪽부터 하효선, 이소현 황지민 학생
 왼쪽부터 하효선, 이소현 황지민 학생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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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학교에서 꿈을 깬 지민씨가 새로운 꿈을 찾은 곳도 꿈의학교다. 대학생이 되어 꿈지기 선생님으로 활동한 'COSMOTH(코스모스)'라는 꿈의학교다. 지민씨는 대학교가 있는 경북 포항에서 경기도 용인을 오가며 꿈지기로 활동하는 열정을 발휘했다. 

이 학교는, 그 자체가 '청소년 지역 언론'이다. 언론을 배우는 것을 넘어 실제로 청소년들이 지역 언론을 운영해 보겠다는 취지로 만든 학교다. 통 크게도 '정치, 경제 권력과 카르텔을 형성하는 기성언론과는 달라야 한다' 핵심 가치로 삼았다.

이 학교 꿈지기를 하면서 지민 학생은 전공을 '언론정보문화학'으로 확정했다. 입학할 때는 자율전공이었다.

"막연하게 기자라는 꿈을 꾸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꿈지기를 하면서 언론이 나와 잘 맞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죠. 힘이 들기도 했지만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앞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게 됐고요. 기자는 참 성취감이 높은 직업 같아요. 이런 것을 꿈지기를 하면서 알게 됐으니 좋은 경험을 한 것이죠."

지민씨는청소년 언론사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이 학교는 실패작이라 자평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절대 실패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며, 그래서 꿈의학교 자체가 일종의 특권이라고 정리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언론사라는 기준으로 보면 기사의 양과 질 모두 형편없는 게 맞아요. 그렇지만 고등학생 신분으로 이런 일에 도전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성공입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는데, 도전한 덕분에 실패를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요. '실패해도 좋으니 한 번 도전 해봐라', 꿈의학교의 메시지는 분명해요. 이것만 봐도 꿈의학교를 해 보는 자체가 엄청난 특권인거죠. 학생이라면 꼭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학생들과의 기분 좋은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3포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년들한테 힘든 시절인데, 이들의 스무 살은 어떻게 이처럼 당당하고 발랄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긴 생각 끝에 '노력해서 꼭 이루고 싶은 구체적인 꿈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과 나의 스무 살은 달랐다. 난 이들처럼 당당하지도 발랄하지도 못했다. 스무 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난 정말 깊은 고민에 빠질 것 같다. 아름다운 나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불투명한 진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어 늘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군사 독재라는 사회적 억눌림이 있어 고통스럽기도 했다. 

누군가 그 당시 내게 꿈이나 진로, 미래 계획에 대해 물었다면 난 대답을 못하고 쩔쩔 맺을 것이다. 거짓 대답을 했을지도 모른다. '네 꿈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이 흔치 않던 시대였다는 게 내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용인 백암고등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분명하고 명쾌하며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꿈이 있어 당당하고 발랄한 세 학생의 스무 살이 정말 부럽다.

태그:#꿈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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