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MG새마을금고 KBL컵대회 조별리그 A조 1차전 오리온과 상무의 경기에서 오리온 강을준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일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MG새마을금고 KBL컵대회 조별리그 A조 1차전 오리온과 상무의 경기에서 오리온 강을준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코트의 성리학자' 강을준 감독이 이끄는 고양 오리온이 'KBL컵 초대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강을준 감독이 이끄는 오리온은 27일 군산월명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의 2020 MG새마을금고 KBL컵 결승전에서 94-81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강을준 감독과 오리온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우승이었다. 오리온은 코로나19사태로 일정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고 중단된 지난 시즌 KBL에서 최하위로 마감한 팀이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13승 30패를 거두는 동안 '단일 시즌 연승을 단 한번도 거두지못한 팀'이라는 KBL 최초의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강을준호'로 새 단장한 오리온은 첫 공식무대인 컵대회를 4연승 무패우승으로 마감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강을준 감독에게도 프로무대에서 지도자로서 맛보는 첫 우승 경험이었다.

강을준 감독은 2011년 창원 LG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9년 만에 프로농구 현장으로 복귀했다. 강 감독은 LG 사령탑 시절 농구보다도 화려한 작전타임 '어록'으로 유독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우리는 옝웅(영웅)이 필요없다고 했지, 성리(승리)했을 때 옝웅이 나타나.(성리학개론)" "니가 갱기(경기)를 망치고 있어(니갱망)." "완빵(한 방) 노리지 말라니까, 자꾸 에라(Error.실수)가 나오는거 아냐." "다들 아프다꼬 그래, 야, 나두 아퍼" 등 주로 농구 이야기 자체보다는 선수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철학적인 표현력과 강 감독 특유의 찰진 영남 방언 억양으로 화제를 낳았다. 오죽하면 강 감독의 작전타임 장면만 모아도 한편의 '농구시트콤'이 탄생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강 감독의 복귀 소식이 알려졌을 때 농구팬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LG 시절 재임기간 내내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번번이 6강에서 완패하며 화려한 멤버 구성에 비하면 성적이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화제가 된 작전타임 어록에서 유래한 '코트의 성리학자'라는 별명만 해도 그렇다. 친근함의 의미도 있지만 반쯤은 조롱에 가까웠다. LG 시절에도 전술이나 리더십 면에서 프로보다는 차라리 학원농구에 더 어울리는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데다가 무려 9년간의 현장 공백기는 너무도 커보였다.

'나르시스트' 이대성과의 궁합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대성은 올 시즌을 앞두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고양 오리온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국가대표 장신가드로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우승까지 이끈 주역이었지만, 농구에 대한 자기 주관과 야망이 뚜렷하여 지도자들이 다루기 쉽지 않은 선수로 꼽혔다. '니갱망'의 원조로 알려진 아이반 존슨 등 개성강한 선수들과 갈등을 빚었던 강을준 감독과는 누가봐도 상극이 될 것처럼 보였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뀐 첫 경기

하지만 오리온은 첫 경기부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미운 오리'가 될 것을 걱정했던 이대성은 뚜껑을 열자 강을준 감독의 '백조'가 됐다. 이대성은 이번 컵대회 4경기에서 평균 17점·6어시스트의 맹활약으로 팀을 이끌며 기자단 투표 43표 중 25표를 받아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이대성은 SK와의 결승전에서도 18득점 3점슛 4개 3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강을준 감독은 이대성을 두고 "이제야 갑옷을 벗은 것 같다"고 말하며 새로운 어록을 만들기도 했다. 강을준 감독은 이대성의 자유분방한 플레이를 굳이 억누르려고 하기보다 최대한 믿고 맡기며 자율속의 책임감을 부여했다. 이대성도 그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팀 상황에 따라 1-2번의 역할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패스와 개인 공격의 균형을 맞추는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강을준 감독 체제에서 살아난 것은 이대성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오리온에서 계륵 취급을 받던 최진수 역시 부활의 조짐을 보여줬다. 최진수는 26일 열린 전주 KCC와의 4강전에서 17점으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중 11점을 2쿼터에서 몰아넣는 폭발력을 보여줬다. 골밑으로 돌진하는 적극성이 눈에 띄게 향상되면서 상대 수비가 몰리기 시작하자, 패스를 외곽으로 빼주며 어시스트를 5개나 기록하기도 했다.

최진수는 아마추어 시절까지 탈아시아급 재능을 지닌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정작 프로에서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선수로 꼽힌다. 3번(스몰포워드)와 4번(파워포워드)에서 모두 자리를 잡고 어정쩡한 '트위너'로 전락했고, 팀내에 이승현이라는 정상급 포워드가 가세한 이후로 공존에 실패하며 역할이 더욱 애매해졌다. 지난 시즌에는 몸싸움을 피하여 외곽만 맴도는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하여 많은 실망감을 안겼다.

강을준 감독은 최진수의 높이와 운동능력을 적극 활용하여 간결하면서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주문했다. 특히 KCC같이 확실한 국내 4번이 취약한 팀을 상대로 최진수의 림어택 능력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조커'로서 향후 강을준호에서 최진수의 활용도를 가늠해볼수 있는 장면이다.

오리온의 최대 강점은 국내 선수층, 특히 힘과 높이를 갖춘 포워드진에 있다. 장재석이 모비스로 이적했지만 이승현-허일영-최진수 등이 버틴 오리온의 포워드라인은 여전히 국내 정상급이다. 여기에 약점이던 가드진에도 우수한 피지컬을 지닌 이대성이 가세하며 오리온은 여러 포지션에서 '미스매치'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팀이 됐다.

첫 단추는 성공적으로 꿰였지만 본론은 지금부터다. 프로야구도 시범경기와 정규리그 성적이 큰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듯이, 농구도 컵대회 성적이 정규리그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시즌의 패배주의와 불안감에 휩싸여있던 오리온이 이번 컵대회를 통해 강을준호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은 분명 큰 성과다. 9년 만의 복귀 신고식을 성공작으로 마친 강을준 감독이 다가오는 2020-21시즌에서도 '성리학개론'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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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준감독 고양오리온 이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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