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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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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에서 발생한 이번 어업지도 공무원 피살사건을 국제기구에 회부하고 싶어한다. 국제형사재판소나 유엔 안보리로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25일 치 통지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전한 것에 대해,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우리는 북한이 한국에 해명과 사과를 전한 것을 안다"며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김종인 위원장은 26일 '북한의 우리 국민 사살 화형 만행 진상조사 TF' 회의에서 "정부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남북 당사자에 의한 해결보다는 국제기구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ICC와 유엔 안보리 모두 회부 가능성 지극히 낮아

일부 언론 기사들은 김종인 위원장이 언급한 국제형사재판소 옆에 ICJ라는 약자를 병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말한 재판소가 국제사법법원(ICJ,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인 듯한 오해를 줄 여지가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약자는 ICJ가 아니라 ICC다.

상설국제사법법원(PCIJ)를 계승해 1946년 설립된 ICJ가 국가를 원칙적인 소송당사자로 인정하는 데 비해, 2002년 창설된 ICC는 국가가 아닌 개인을 법정에 세운다. 또 ICJ가 당사국이 제기한 사안 또는 유엔 헌장이나 조약에 규정된 모든 사안을 다루는 데 비해, ICC는 집단학살·전쟁범죄·반인도적 범죄 같은 중대 형사사건을 취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ICC에 회부하자는 김종인과 국민의힘의 주장은 '북한 지도자나 하위 책임자를 국제 형사법정에 세우자'는 의미를 담는다. 북한 지도자나 하위 책임자에게 형사 범죄자 이미지를 씌우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되레 진상규명과 문제 해결을 원천 봉쇄하는 악수가 될 수 있다. 이 점은 ICC의 관할권 문제에서 드러난다.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제13조에 따르면 재판소가 관할권을 갖는 경우는 세 가지다. 첫째는 당사국에 의해 사건이 회부된 경우이고, 둘째는 유엔 안보리에 의해 회부된 경우이고, 셋째는 국제형사재판소 소추관(검사)이 독자적으로 사건에 착수한 경우다.

제12조 제2항에 따르면 첫째·셋째에 조건이 붙는다. 범죄가 발생한 국가나 범죄 혐의자의 국적국이 위의 로마규정을 수락했거나 아니면 재판소의 관할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이런 조건이 나오게 됐다. 이런 조건이 충족돼야 ICC가 사건을 다룰 수 있다. 이 점에 관해 정인섭 서울대 교수의 <신국제법 강의>는 이렇게 해설한다.
 
범죄 발생지국이나 범죄인 국적국 중 어느 한 국가가 규정 당사국이면 재판소는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피해자 국적국만이 국제형사재판소의 당사국이고 범죄인 국적국과 범죄 발생지국은 당사국이 아니라면 재판소는 범인을 재판할 수 없다.
 
이번 공무원 피살은 북한 영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발생했다. 따라서 북한이 로마규정에 동의했거나 아니면 이번 사건에 한해 ICC의 관할권을 수락해야만, 위의 첫째·셋째에 따라 ICC가 사건을 맡게 된다. 그런데 북한은 로마규정을 수락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한해 ICC의 관할권을 수락할지도 확실치 않다.

김종인 위원장은 ICC나 유엔 안보리로 사건을 가져가자고 했다. 그가 말한 두 번째 방안대로 안보리에 갖고 갈 경우, 5대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안보리에 의해 사건이 ICC로 넘어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북한이 로마규정을 수락했는지, 이번 사건에 한해 ICC의 관할을 받아들였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데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신속히 사과한 데다가 미 국무부 관계자까지 사과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관계를 악화시킬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공무원 피살 사건이 ICC나 안보리에 회부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사태 지연 가능성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측 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5일 이 공무원이 피격된 것으로 추정된 황해도 등산곶 해안 인근에 북한 군함이 이동하고 있다.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측 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5일 이 공무원이 피격된 것으로 추정된 황해도 등산곶 해안 인근에 북한 군함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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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건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ICC나 안보리 회부를 거론해서 북한 지도자 등에게 형사범죄자 이미지를 씌우려 하면, 오히려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켜 진상규명과 문제해결만 지연시키게 된다.

이번 사건은 북한 정부의 협조 없이는 해결되기 힘들다. 사건이 그곳에서 발생했고, 관련자들도 그곳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ICC 회부 등으로 남북관계를 극단으로 몰아가면, 남북의 접촉 기회는 요원해지고 진상규명도 멀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인과 국민의힘이 내놓은 주장은 사태 해결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지연시키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더해, 그런 주장에 담긴 모순점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세력이 남북간의 문제를 국제기구에 갖고 가려 하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앞장서서 북한을 규탄하고, 북한에 불리한 세계 여론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있다. 미국과 국제기구들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소원해지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기구가 자국의 말을 듣지 않거나 국제기구에 내는 분담금이 부담스러울 때, 미국은 국제기구를 압박하며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세계 최강국과 국제기구는 사이가 좋기 마련인데, 통념을 벗어난 현상이 점점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세계보건기구(WHO)뿐 아니라 미국과 ICC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 시각으로 지난 6월 11일 ICC 관계자들의 미국 내 금융자산을 동결하고 이들과 가족의 미국 입국을 막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9월 2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입에서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장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ICC가 미국에 불리한 일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벌인 전쟁범죄 의혹에 대한 조사를 시도했던 것이다.

범죄 발생 국가나 범죄 혐의자의 국적국이 로마규정을 수락했거나 아니면 특정 사건에 한해 ICC 관할권을 수락해야만 ICC가 사건을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미국 때문이다. ICC 설립 당시 독일은 그런 제약을 두지 않으려 한 데 반해, 미국은 훨씬 더 많은 제약을 둠으로써 ICC의 행동반경을 좁히려 했다. 양쪽 입장이 절충된 결과로 나온 것이 로마규정 제12조 제2항이다.

보수의 문제해결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8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북한의 우리 국민 학살만행 규탄 긴급의원총회'에서 "국민 사살 대통령 침묵 이것이 나라냐, 현안질문 회피하는 정부여당은 비겁하다" 등을 외치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8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북한의 우리 국민 학살만행 규탄 긴급의원총회"에서 "국민 사살 대통령 침묵 이것이 나라냐, 현안질문 회피하는 정부여당은 비겁하다" 등을 외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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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국과 ICC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보수가 ICC의 위상을 높여주는 발언을 하게 되면 트럼프의 심기가 더욱 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는 그런 주장이 미국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다. 한미동맹에 고도로 집착하는 국민의힘이 미국의 심기를 기민하게 살피지 못하는 것은 좀 뜻밖이다.

이처럼 김종인 위원장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국제형사재판소나 안보리 회부 방안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미국과 국제형사재판소의 관계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주장이다. 한국 보수의 문제해결 역량을 반영하는 지표가 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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