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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
 송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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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 누군가는 '먹을' 송편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빚을' 송편을 떠올릴 것이다. 차례상은 여자가 차리지만 차례는 남자가 지낸다. 매년 명절마다 여성의 가사노동이 많아 힘들다는 기사가 쏟아져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는다. 

명절을 대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명절이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들과 명절을 기다리는 사람들. 부엌과 TV 앞에만 가봐도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부엌에는 여자들이 대부분이고 앉아있는 것은 남자들이다. 아무리 가정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들, 남자들이 일을 한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여자들이 일을 쉰다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꼭 부엌에 있지 않아도 명절이 없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친척들의 이런저런 질문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명절이면 결혼이나 진학 진로에 대한 무례한 잔소리가 넘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런 간섭을 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잔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결국 명절은 대체로 여성과 청소년이 힘든 기간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핑계로 내려가지 않는 이유 

이 글을 쓰려고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많이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가족이 명절에 친척집에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개중에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홀로 시골에 내려가지 않는 친구도 있었다. 

반면, 명절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늘 크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명절을 온 가족이 모이는 기쁜 날로 그려내고 있다. 그 바람에 추석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가부장적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적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행사는 명절이고, 때문에 명절에는 꼭 모여서 얼굴을 비춰야 하는 관념이 박혀 있다.

이번 추석은 다를 줄 다를까? 최근 화제가 된 명절 현수막 문구다. '불효자는 옵니다.' 이 현수막은 분명 코로나가 명절에 대한 관념을 바꿨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354명을 대상으로 '추석 귀성 계획'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 이번 추석에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직장인의 비율이 작년보다 18%나 늘었다. 고향을 안 가는 이유로는 '코로나19'가 67.1%로 가장 높았다.

분명 코로나19가 이번 추석에도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추석 명절, 내려가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 중에서는 코로나를 핑계로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명절 문화가 누군가에게 답답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명절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변화해야 한다 
 
청양군에 걸린 '불효자는 옵니다' 현수막.
 청양군에 걸린 "불효자는 옵니다" 현수막.
ⓒ 청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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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모이는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대사회에서 명절 아니면 따로 가족들 얼굴 볼 일 없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이들 말대로 명절이 아니면 온 가족이 모일 기회는 없긴 하다. 어른들 입장에서 핵가족들이 간만에 모여 형제들도 만나고 부모님들도 챙기려면 명절만큼 좋은 명분은 없다.

하지만 명절이 아니면 볼 일 없다는 말은 반대로 그 날이 아니라면 굳이 만나려 하지 않을 만큼 반갑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아닐까. '반가운 만남'을 만들려면 현대사회에 맞는 명절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명절을 원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현대사회에서 명절을 지키려면 가족 간의 평등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집은 내가 설거지 해" 또는 "우리는 이제 음식 사서 차례를 지낼 거야" 등등. 과연 그정도로 충분할까? 명절이 평등해지려면 조금 '도와준다'는 생각만으론 안된다. 굳이 전통을 지켜 의례를 따르고 싶다면, 그 전 과정이 평등해야 한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요리하거나 정리할 때 모든 가족이 참여해야 하고, 차례는 남녀 가리지 않고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평등이다. 나이주의적인 문화도 사라져야 한다. 일방적으로 훈계나 훈수를 둘 수 없어야 한다.

앞서 말한 것들이 자리 잡아야 설, 추석이 사랑받는 우리 민족의 명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는 속도에 비해 우리 명절은 너무 천천히 바뀐다. 우리에게 추석이 필요한지 필요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명절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명절을 지키고자 노력했으면 한다. 사실, 이들은 명절을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요즘 보니까 남자들도 집안일 해야겠더라, 안 그러면 장가를 못갈 것 같아." 태극기 집회를 나가는 우리 할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던 내 동생을 보며 한 말이다.

몇 년 전 명절을 앞두고 가짜 깁스가 유행했던 게 기억난다. 그 당시 우리는 가짜 깁스를 하는 여성들만 비난할 줄 알았지 불평등한 우리 사회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코로나19를 맞아 좀 달라진 이번 추석, 그간 명절을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태그:#추석, #명절, #문화, #양성평등,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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