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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득 보훈처장이 9월 23일 열린 ‘일서 김홍일 장군’ 40주기 추도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박삼득 보훈처장이 9월 23일 열린 ‘일서 김홍일 장군’ 40주기 추도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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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과 호국, 민주를 아우르는 큰 업적을 남긴 '일서 김홍일 장군 서거 제40주기 추도식'이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23일 오전에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됐다.

평안북도 중앙도민회(회장 허덕길)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도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주요 관계자들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일서 김홍일 장군'은 일제강점기에 폭탄 제조를 통해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지원하고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또 광복 이후에는 육군사관학교 교장, 시흥지구 전투사령관 등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 수호와 근대화·민주화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다음은 국가보훈처가 밝힌 일서 김홍일 장군의 주요 공적 내용이다.

평북 용천(龍川) 사람이다. 정주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황해도 경신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18년 9월 학생비밀결사사건 후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초 평안북도 귀주 강무학교(貴州講武學校)에 입학하여 군사학과 군사훈련을 받고 동년 12월 졸업하였다.

1921년 3월 초 노백린(盧伯麟) 군무부장의 지시로 상해를 떠나 만주로 건너갔으며, 동년 10월 그는 서간도군비단(西間島軍備團)과 북간도국민회가 통합하여 조직된 대한의용군사회의 참모가 되어 독립군의 훈련에 전념하여 대독립군단을 조직할 계획을 세웠으나 소련군 당국의 약속 위반으로 실패하였다.

1926년 10월 중국 국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참모, 대대장, 연대장, 오송요새사령부 부관장, 상해병공창군기처주임, 사단참모처주임, 사단참모처장, 19집단군참모처장, 청년군사령부참모처장 등을 역임하면서 북벌전쟁, 중일전쟁 등에 참전하였다.

1931년에는 남경(南京)에서 한국군인회에 가입하였으며, 김구 주석을 도와 이봉창 의사 앵전문(櫻田門) 의거와 윤봉길 의사 상해홍구공원의거 등에 폭탄을 제공하였다.

1932년 2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여 재정부장을 맡았으며, 한국군인양성을 위하여 중국군 당국과 군관학교 특별반 설치를 협의하기도 하였다.

1937년 겨울에는 중국 강릉중앙군관학교 교관으로 한인학생 100여 명을 훈련시켜 이들을 조선의용대로 편성하여 항일투쟁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들은 뒤에 광복군에 편입되었다.

1944년에는 민족혁명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 6월에는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 겸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에 부임하여 한미합작으로 국내상륙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해 12월 그는 중국 동북보안사령장관부 고급참모 겸 한교사무처장에 취임하여 만주에 거류하는 교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귀국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1947년 5월 중국 국방부 정치부 전문위원에 임명되어 복무하다가 1948년 8월 귀국하였다. 귀국 후 그는 국군에 입대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 육군 참모학교 교장, 시흥지구전투사령관, 육군제1군단장, 육군종합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고 195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그 후 외무부 장관, 신민당 당수,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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