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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식 영유니온을 위한 제1차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식 영유니온을 위한 제1차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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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국민의힘이 당내 조직으로 '청년의힘'을 본격 수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만 39세 이하 당원으로 구성된다는 이 조직은 자세히 보니 기존 중앙청년위원회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모양새다. 과거와 달리 청년들의 자율적 프로젝트 그룹을 지원하고 예비 당원제와 청년정치발전소를 신설해 예산·사업 등을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줘 명실상부한 조직으로 출범시킨다는 구상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그간 당내 청년 조직들이 독립성이 없어 줄 서기 정치, 동원 정치 등으로 이용돼 왔다. 청년의힘에서는 자체적인 권한이 있어 국민의힘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활동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대위에 최종 보고를 마쳤고 11월께 관련 당헌·당규를 수정해 정식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그전까지 실무적인 준비를 모두 마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청년의힘은 독일의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의 '젊은 연합'(Junge Union)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독일어로 흔히 JU로 표기하는 '융에 우니온(영유니온)'. 그 '융에 우니온'에서 청년의힘이 나온다고? 독일어에 유독 민감한 내 귀에 그 맥락이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어 한 자 적어보지 않을 수 없다.

독일 청년조직은 피, 눈물, 투쟁의 산물

'융에 우니온'이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정당사를 간단히라도 살펴봐야 한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에는 대연정을 구성해 집권 중인 중도 좌파인 독일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과 중도 우파인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 Union)과 극우파인 독일대안당(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 우파인 자유민주당(Freie Demokraten Partei, FDP), 극좌파인 좌파당(Die Linke), 좌파인 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이 주요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1863년에 수립된 독일 사회민주당이 가장 유서 깊은 정당이고 나머지는 1945년 이후 만들어진 신생 정당들이다. 1945년 이후 독일에서는 독일사회민주당과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정권을 유지해왔다. 중간중간에 자민당이 독일사회민주당과 기민당/기사당 연합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연정에 참여해 실익을 챙겨 왔다.

그러다가 1980년대 녹색당이 혜성처럼 등장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사회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해 집권 여당이 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리고 구동독의 공산당 소속 인사들과 구서독의 독일사회민주당의 좌파 세력이 힘을 합쳐 2007년에 좌파당이 수립돼 원내에 진출했고, 2013년 수립된 독일 극우세력의 모임인 독일대안당은 창당 원년인 2013년 총선에서는 원내에 진출하지 못했으나 그 이후 약진하여 현재 89석으로 당당히 원내 제3위의 당으로 군림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벤치마킹하려는 '융에 우니온'은 독일에서 유서 깊은 독일사회민주당의 청년 정당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 연구회'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약칭으로 '유소스'(Jusos)라고 부르는 이 단체는 1904년에 탄생한 것으로 모당인 독일사회민주당만큼이나 유서 깊은 조직이다.

이 조직은 독일사회민주당 내의 기성층과 청년층의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1891년 당내 청년층이 5월 1일 독일 전역에서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마침내 윤곽을 드러냈다. 이후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조직화 작업을 시작한다. 이러한 청년들의 급좌적 운동에 당내의 이른바 '어른들'은 매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래서 1903년 이 조직의 기관지를 내겠다는 안건을 당이 공식적으로 거부하기까지 했다.

1904년 전설적인 인물인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1919)의 동지였던 립크네흐트(Karl Liebknecht, 1871~1919)의 반군국주의 청년조직 설립도 당은 단칼에 거부한다. 그러나 1904년 6월 3일 독일의 전태일 열사라고 할 수 있는 당시 15세 내링(Paul Nähring)의 자살로 촉발된 도제조합 설립 운동을 출발점으로 마침내 '유소스'가 탄생하게 된다. 1906년, 1907년 독일사회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사회민주주의 도제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청년조직의 수립을 결의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청년 당 조직의 설립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피와 눈물과 투쟁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젊은 사회주의자 연구회', 곧 '유소스'이다. 이 조직은 오늘날에도 독일사회민주당의 젊은 인재 양성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젊은 피' 공급의 제도적 장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융에 우니온'은 1947년 1월에 기독교 신자들이 중심이 돼 당내에서 설립된 조직이다. 1950년대에 당의 쇄신을 요청한 적이 있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특히 보수적인 권위주의를 대표하던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와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1897~1977)가 집권하던 시기인 1949년부터 1966년까지는 문자 그대로 어른들 앞에서 찍소리도 못 내는 허수아비 집단이었다.

그러다가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실권해 야당의 위치에 서게 된 1969년부터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후 '융에 우니온'은 1973년 조직의 목표를 '인간적 사회'로 정하고 개혁을 시도한다. 이어 구동독 지역의 청년조직인 자유독일청년단(Frei Deutsche Junge, FDJ)과의 접촉을 추진한다. 1980년에는 동서독 연합 청년단체 수립을 제안하는 데 이르기까지 했다.

이는 우리나라에 비유한다면 전두환 시절의 민정당 청년 조직이 북한 노동당 청년 조직과 연합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독일사회민주당이 끈질기게 추구한 동방정책, 곧 공산권과의 화해정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다시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장기 집권(1982~1998)을 하게 된 콜 수상(Helmut Kohl, 1930~2017) 정권 아래에서 다시 힘을 상실하게 된다.

국민의힘은 그 정도 각오가 돼 있는가?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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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골 기질의 전통이 있는 '유소스'보다는 길들이기 편한 '융에 우니온'이 훨씬 나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유소스'를 벤치마킹한 '융에 우니온'을 다시 벤치마킹하면 그 조직의 정체성은 무엇이 될까? 혹시 당내의 '어른들'이 북 치고 장구 치면 그 장단에 맞춰 춤추며 변죽이나 올리는 광대 역할을 바라는 것인가? 그러려면 차라리 아서라.

앞에서 약술한 바에서 본대로 독일 정당들은 의원내각제 제도 안에서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젊은 피의 수혈이 매우 필요한 생태계에서 생존을 모색했다. 그리고 아무리 정권이 탐이 나도 금도를 지키며 정당의 노선을 견지하며 사회 발전에 진보와 보수 간의 적절한 균형을 맞춰왔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의 정치사를 보면 4.19 혁명 이후 잠깐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다가 만 것 이외에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한국과 독일은 그 토양이 다르다. 아무리 보수색을 띠고 시작한 조직이라도 독일의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융에 우니온'은 나름대로 역사의 격변기에 탄생해 독일정치 생태계에서 단련을 받아온 경력이 있는 조직이다. 기독교 사회론과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 틀 안에서 쌓아온 '융에 우니온'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청년의힘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어쩐지 알맹이는 쏙 빼고 껍데기만 들여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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