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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검사, 변호인이 증거를 제출하거나 은폐하는 장면 한 번 쯤은 다들 보셨죠? 공판정에서 피고인과 검사는  재판의 당사자로서 서로 공격과 방어를 통해 재판을 이끌어 갑니다. 

즉, 검사는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고 피고인과 변호인은 본인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죠.

그렇다면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검사는 발견한 증거를 제출해야 할까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제출해야 한다" 입니다. 


위 내용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공식 블로그에 '검사의 객관의무 : 검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해야 할까?'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내용이다. 

피고인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검사가 수사를 통해 확보한 기록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건 검사의 객관의무상 당연하다. 우리가 검사를 '공권력의 대변자'가 아니라 '공익의 대변자'라고 부르는 것 또한 바로 이 객관의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고양저유소 화재사건 형사재판에서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위 블로그의 내용처럼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불허이유
 검찰의 불허이유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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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7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고양저유소에 있는 휘발유 탱크 1기의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고, 인근 터널공사현장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 디무두(이하 '이주노동자'라고 한다)가 날린 풍등의 불씨가 발화원인으로 지목되었으며, 전쟁이 나도 폭발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할 지하 복토형 저유소가 풍등 불씨로 인해 폭발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었다.
 
2018년 10월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경찰이 공개한 CCTV에서 A씨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쪽으로 떨어진 뒤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 (고양경찰서 제공)
 2018년 10월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경찰이 공개한 CCTV에서 A씨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쪽으로 떨어진 뒤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 (고양경찰서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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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2018년 10월 7일 발생한 고양저유소화재사건에 대해 2019년 6월 28일 공소제기하면서, 풍등 날린 이주노동자와 저유소 관리책임자들을 분리하여 기소했다, 저유소 관리책임자들의 재판(고양지원 2019고단 1692 사건)은 작년 12월 확정되었고, 이주노동자의 재판(고양지원 2019고단 1691 사건)은 아직 진행형이다. 

실화죄(失火罪)로 기소된 이주노동자는 이 사건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날린 풍등불씨로 저유소 지상에 있던 잔디를 태운 건 맞지만, 복토형 지하 저유소의 폭발은 저유소 관리부실로 인한 것이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일반건조물인 저유소에 실수로 불을 낸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그의 주장처럼 저유소가 아닌 일반물건(잔디)에 실수로 불을 낸 것만 책임지게 된다면 타인소유 일반물건 실화는 처벌하는 조항이 없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다. 

형법 170조(실화) 
①과실로 인하여 제164조 또는 제165조에 기재한 물건 또는 타인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에 기재한 물건을 소훼한 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과실로 인하여 자기의 소유에 속하는 제166조 또는 제167조에 기재한 물건을 소훼하여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 164조 기재한 물건(현주건조물 : 사람이 주거로 사용허가나 현존하는 건물)
- 165조에 기재한 물건(공용건조물 : 공용 또는 공익에 공하는 건조물 등)
- 166조에 기재한 물건(현주건조물과 공용건조물을 제외한 일반건조물)
- 167조에 기재한 물건(164조 내지 166조를 제외한 물건)


이주노동자의 무죄입증을 위해서는 저유소 관리부실 및 폭발원인 관련 보고서 등 관련한 자료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자료는 저유소 관리책임자들의 재판에만 현출되었고, 그의 재판에는 검사가 제출하지 않아 변호인은 법원을 통해 검찰에 그 제출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6월 8일 법원의 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0. 9. 5.자 문서제출명령신청
 2020. 9. 5.자 문서제출명령신청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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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8일 금요일 오후 2시 고양지원 402호 법정에서 형사5단독 손호영 판사는 변호인이 2020년 9월 5일 제출한 문서제출명령신청을 받아들였고, 저유소 관리책임자들의 재판에 현출된 자료의 제출을 다시 한번 공판검사에게 요청했다. 

손호영 판사 : 자료 제출에 큰 무리가 없다면 제출해주세요. 
정윤경 공판검사 : 내부적으로 논의해보겠습니다.
2020년 10월 28일 오후 2시 30분, 2019고단 1691사건 제10차 공판


우리는 그 날 검사의 객관의무가 대한민국에서 준수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유무죄를 떠나 검사가 저유소 관리부실 및 폭발원인 관련 보고서 등을 제출하여 무죄입증의 기회를 충분히 허락해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건진행내역(2019고단1691)
 사건진행내역(2019고단1691)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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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이주노동자 디무두의 공동변호인단의 한 명으로 2018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변론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고양저유소화재사건, #검사의 객관의무, #이주노동자 디무두 형사재판, #풍등화재사건,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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