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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은 <수상록>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Montaigne, 1533-1592)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우리말로는 <수상록>이라 하지만 원제는 <에세>(Essais)이다. <에세> 이후 수필 형식의 글을 '에세이'로 통칭하게 되었다. 몽테뉴는 '에세이'라는 용어의 원조인 셈이다.

<수상록>을 읽은 지 아주 오래되었다. 사실 서재에 있는 수많은 책의 대부분이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것들이다. 펼쳐보면 대체로 내지가 거의 갈색 수준으로 변색되었고, 자칫하다가는 부서질 만큼 종이가 낡고 말랐다. 그런데도 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줄곧 껴안고 있다.

​낡은 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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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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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최고의 경지로 살아 있는 때는 언제일까? 흔히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히고 있는 순간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필자는 '글쎄?'라고 말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글과 책을 읽어도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유엔이 매년 9월 8일을 '문해(文解)의 날'로 정해 기념하는 것도 그런 취지의 소산이다.

문해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흔히 "문맹(文盲) 퇴치" 구호가 많았는데 그 무렵에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학력 사회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학을 의무교육 기간으로 강제하는 까닭에 글자 자체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생겨날 소지가 희박하다.

​이제는 글자를 아는 것만으로는 사회 생활을 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신문이나 책을 읽었을 때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이 되어야 하고, 글로 써서 자신의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밝힐 수 있는 경지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문해 교육이 대단히 필요한 국가이다. 객관식 암기 위주 입학 시험에 온 나라가 매달린 지 오래 되어 사람들의 사고력은 떨어졌고, 문해 능력은 대학 이상을 졸업한 이들도 거의 최저 수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해 수준은 최저 지경

​책의 생명이 최고로 아름다운 빛을 뽐내는 때는 읽히는 순간이 아니라 독자가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말살이와 글쓰기를 하고, 나아가 그것을 실천하는 순간이다.

예를 들면 몽테뉴의 글과 번역자의 해설을 통해 독자는 37세 젊은 나이의 몽테뉴가 '절반도 남지 않은 여생을 자유롭게 보내기 위해' 공직에서 은퇴하였으며, 사색과 글쓰기 중심의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필자는 본인에게 '알면 뭐 하나?' 하고 물어본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화제로 꺼낼 수 있다. 그러면 교양 있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몽테뉴처럼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가다듬기는커녕 허위의식에 불과한 자기만족 일삼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비난할 것까지는 없다. 사람이 그 정도면 보통이지 특별히 문제 인간은 아니다.

​몽테뉴의 생애를 조금 알게 되고, 그의 글을 약간 읽고 나서 예전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편지나 일기도 쓰게 되었다면 그는 최상의 독자이다. 이때야말로 책의 진가가 최고로 발휘된다. 어찌 그 책을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낡고 변색되어 다시는 읽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더라도 책장에 고이 꽂아둘 일이다. 그런 책을 많이 서재에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몽테뉴는 37세에 직장 떠나 은둔 생활 시작

필자는 몽테뉴가 37세 이래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감을 느꼈다. 아마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계층 출신이거나 대단한 인생철학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언감생심의 일이다. 다만 그가 죽음에 관한 사색을 진술해 놓은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천하의 몽테뉴와 비슷하구나!' 하는 자긍심(!)을 받기도 했다.

​몽테뉴는 늙음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책에 빗대면, 사람의 노년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쌓은 지식과 교양을 최대한 세상에 기부할 수 있는 시기이다. 젊은 시절에는 읽느라고 경황이 없었는데 이제는 축적한 지혜와 경험을 거리낌없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청춘의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일지라도! '죽음을 학습하는 시기가 노화'라는 몽테뉴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자신의 진가를 남김없이 발휘하고 이승을 뜨는데 죽음이 왜 두려울 것인가!

<수상록>의 죽음 부분을 읽을 때면 필자는 캐태 콜비츠(Kathe Kolwitz, 1867-1945) 를 떠올린다. 사회성 짙은 판화를 많이 남긴 그녀는 히틀러 때 퇴폐 작가로 낙인찍혀 작품을 소각당하는 등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아들과 손자의 죽음이었다. 1914년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큰아들 페테는 자원 입대했고, 두 달 만에 전사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 때는 이름까지 큰아들과 같은 손자 페테도 자원 입대했다가 전사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본래 판사였는데, 독재 권력의 하수인으로 살 수는 없다면서 법원을 떠나 평생을 미장이로 살다 죽었다. 의사였던 그녀의 남편 칼 콜비츠도 평생에 걸쳐 가난한 환자 대상의 무료 진료 등에 몰두하다가 가난과 과로로 일찍 죽었다. 그런데 아들과 손자까지 전쟁터로 나아가 그렇게 속절없이 그녀의 곁을 떠났다.

47세에 "나의 노년이 시작되었다"고 한 콜비츠

​1914년 10월 30일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은 콜비츠는 며칠 후 일기에 "나의 노년이 시작되었다"라고 썼다. 그때 그녀의 나이 47세였다. 아직은 노년이 아니라 꽃다운 중년이지만 그녀는 노년이 시작된 것을 절감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힘차고 밝은 청년기를 떠나 점점 소멸되어가는 노년기로 접어들었다는 한탄이다.

​콜비츠의 예가 잘 말해주듯이, 사람은 누구나 어떤 특별한 일을 계기로 생의 활기를 잃게 된다. 하지만 콜비츠는 사람의 인생은 죽는 그 순간까지, 아니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줄곧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해주었다. 그녀는 판화와 조각 등 자신의 일을 통해 가족들의 죽음에 위로를 선사하고자 했다. 그 결과 그의 예술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Neue Wache) 내부 홀 중앙에 그녀의 작품이 있다. 노이에 바헤는 전쟁과 독재로 말미암아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추모관이다. 그녀의 작품 이름은 '피에타'(Pieta)로,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조각이다.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피에타'와 같은 작품이 다시 창작되지 않도록 하려면 지구상에서 전쟁과 테러를 없애야 한다. 그런데 서울 전쟁기념관 뜰에는 총칼로 적병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형상의 거대한 조각이 세워져 있다.

몽테뉴가 필자에게 준 두 번째 절망

​몽테뉴는 37세에 은둔 생활에 들어간 것 말고도 또 다른 절망감을 더 안겨 주었다. 젊을 때 <수상록> 번역본을 읽으며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글을 쓴들 이만큼 쓸 수 있을까?'라고 절망했다. 다만 세월이 한참 흐른 후 그것이 나만의 절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약간 마음의 평정을 얻었다. 게다가 남명 조식(1501-1572)은 "정주이후(程朱而後) 학자불필저서(學者不必著書)"라는 말로 필자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조식의 가르침은 마치 〈피에타〉 같았다.

​조식의 말은 정자와 주자 이후의 학자들은 새로 저서를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써본들 정자와 주자만큼 쓸 수 없으니 집필을 포기하라는 비아냥이 아니다. 조식의 말은 정자와 주자에 대한 격찬이기도 하지만, 앞선 사람들이 남긴 고전을 열심히 읽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의 바른 자세라는 교훈이다. 나의 섣부른 글을 역사에 새기려고 과욕을 부릴 것이 아니라 선현들의 글을 면밀히 학습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가르침이다.

조식의 후대 사람인 하백원(1781-1845)도 그와 비슷한 가르침을 남겼다. 하백원은 "우리는 (정주의 뒤에 태어났으니 이론에 밝지 못한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다만 들은 바를 존중하고 아는 바를 실천하면 된다(只當尊所聞 行所知庶幾). 부족하거나 과한 자들이 들은 말을 퍼뜨리며 박학을 자랑하거나(寡過若剽竊前言 以誇淹博),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한다면(創立新說 以眩聽聞) 이는 세상의 쓸데없는 짓이자 질병이다(直是剩也瘁也)"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수상록> 등을 읽고 아는 척하는 정도는 비난받을 일까지는 아니라고 했던 필자의 발언이 잘못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글을 쓰는 일도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하는 '쓸데없는 질병 같은 짓'으로 여겨진다. 몽테뉴가 37세에 인생의 획기적 전환을 실행에 옮겼듯이, 역시 '들은 바를 존중하고 아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사람다운 삶을 누려가는 최선의 길인 듯하다.

태그:#몽테뉴, #콜비츠, #수상록, #9월13일 오늘의역사,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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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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