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쪽 코트에서 멋진 상대로 뛰어준 아자렌카와 라켓 인사를 나눈 뒤 오사카 나오미는 파란색 코트 한복판에 드러누워 이 대회 두 번째 우승 감격을 누렸다. 일부 테니스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여자테니스 세계 랭킹 1위 애슐리 바티(호주), 2위 시모나 할렙(루마니아) 등 실력자들이 참가하지 않아서 반쪽 메이저 대회라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약 2주간 코트 바닥에 땀을 쏟아부은 선수들은 저마다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기에 오사카 나오미의 우승 세리머니는 더욱 특별하게 보였다.

세계 여자테니스 단식 랭킹 9위 오사카 나오미(일본)가 한국 시각으로 13일(일) 오전 5시 15분 뉴욕에 있는 빌리 진 킹 국립테니스 센터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0 US 오픈 테니스대회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27위)에게 1시간 53분만에 2-1(1-6, 6-3, 6-3)로 멋진 역전승을 거두고 통산 세 번째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준결승, 결승 기록 대조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준결승, 결승 기록 대조 ⓒ USopen.org

  
US 오픈 준우승만 세 번째,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데칼코마니

결과만 놓고 봐도 빅토리아 아자렌카는 너무나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 게임, 준결승에서 여전히 뛰고 있는 여자테니스계의 레전드 세레나 윌리엄스(미국)를 2-1로 물리치고 가장 주목받는 게임까지 뛸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무려 23개나 보유한 세레나 윌리엄스가 바로 이 대회 결승전에서 빅토리아 아자렌카를 두 번(2012년, 2013년)이나 이겼었기 때문에 올해 준결승 결과는 빅토리아 아자렌카에게 그 의미가 남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세레나 윌리엄스를 물리친 2-1 역전 게임 스코어(1-6, 6-3, 6-3)가 이 결승전에 데칼코마니처럼 반대로 찍히고 말았다. 두 번째 세트 초반까지의 흐름만 보면 이 결승전은 소요 시간이 1시간도 안 걸릴 정도로 싱겁게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우승으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테니스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을 때리기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심리적인 요소가 매우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이 두 게임만으로도 확인할 수가 있다. 

서브부터 흔들리고 그라운드 스트로크 실수까지 많았던 오사카 나오미를 상대로 첫 세트 6-1 게임 스코어를 만들어낸 빅토리아 아자렌카가 두 번째 세트 중요한 고비를 넘지 못한 것이 믿기 힘든 역전패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말처럼 준결승 게임 스코어가 빅토리아 아자렌카에게 정반대(6-1, 3-6, 3-6)로 뒤집혀 돌아온 것이었다. 2시간에서 몇 분 모자라는 소요 시간까지 거의 비슷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2012년, 2013년 2년 연속 이 대회 결승전에서 세레나 윌리엄스의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본 빅토리아 아자렌카가 이번 대회 준결승전에서 역전승으로 이겼고, 이 결승전 두 번째 세트 게임 스코어 2-0까지 앞서나갔으니 드디어 US 오픈 무관의 한을 풀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보다 아홉 살 어린 오사카 나오미의 뒷심은 놀라웠다. 진짜 스트로크 싸움은 그 때부터 불붙기 시작한 셈이다.

오사카 나오미의 놀라운 뒷심

첫 세트를 단 26분만에 6-1로 끝낸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기세는 이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려도 손색이 없었다. 세트를 끝내는 백핸드 다운 더 라인은 단연 압권이었다. 압박 붕대를 감은 허벅지를 왼손 주먹으로 자주 내려친 오사카 나오미의 한계가 딱 거기까지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세트 세 번째 게임부터 흐름이 바뀌었다. 이 갈림길에서 어떤 플레이를 펼치느냐가 결승전 하이라이트였다.

사실 빅토리아 아자렌카에게 행운도 따라붙는 듯 보였다. 두 번째 세트 첫 게임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네트 상단을 두 번이나 스치며 코트 반대쪽으로 넘어가 포인트로 쌓이는 보기 드문 장면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게임에서도 오사카 나오미의 포핸드 다운 더 라인 실수가 나왔고,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백핸드 다운 더 라인이 완벽하게 빠져나가며 브레이크 포인트를 따내 빅토리아 아자렌카가 2-0으로 달아났다.

여기까지만 봐도 싱거운 결승전 그림이었다. 그 다음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이 예상대로 끝난다면 3-0까지 벌어지는 흐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사카 나오미는 결코 이 흐름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끈질긴 스트로크 싸움을 펼치며 아자렌카의 실수를 이끌어낸 것이다. 결국 세 번째 게임에서 아자렌카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길어 상대 코트 베이스 라인을 넘어갔다. 오사카 나오미가 결승전에서 만든 첫 번째 브레이크 포인트 성공 순간이었다.

오사카 나오미의 뒷심이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듯 바로 다음 게임을 서브 에이스로 시원하게 끝냈다. 그리고는 9분이나 걸린 아홉 번째 게임에서 끝내 오사카 나오미가 웃었다. 듀스가 다섯 번이나 이어질 정도로 아자렌카의 서브 게임은 길게 늘어졌는데 끝까지 집중한 오사카 나오미는 아자렌카의 첫 서브 리턴 포인트를 기막힌 포핸드 다운 더 라인으로 따냈고, 곧바로 포핸드 위너까지 성공시켜 41분 걸린 두 번째 세트 주인이 됐다.

이어진 마지막 세트는 그 흐름이 오사카 나오미에게 넘어간 것을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결과적으로 네 번째 게임이 마지막 갈림길이 된 셈이었다. 첫 세트에서 어이없는 더블 폴트로 초반 기세를 스스로 허물어버린 오사카 나오미처럼 이 3세트에서는 빅토리아 아자렌카가 더블 폴트로 무너졌다. 빅토리아 아자렌카는 오사카 나오미의 백핸드 다운 더 라인 게임 포인트를 끝내 받아넘기지 못했다.

빅토리아 아자렌카는 바로 이어진 오사카 나오미의 서브 게임에 집중하여 0:40으로 세 개의 브레이크 포인트 기회를 잡아냈다. 아자렌카 앞에 찾아온 마지막 재역전 기회였다. 하지만 오사카 나오미의 뒷심은 놀랍게도 내리 다섯 포인트를 따내는 보기 드문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서브 위력이 다시 살아난 것도 모자라 베이스라인 스트로크 싸움까지 오사카 나오미가 압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챔피언십 포인트를 자기 것으로 가져오기까지 오사카 나오미는 포핸드 스트로크 위너, 와이드 서브 포인트를 묶어 차근차근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빅토리아 아자렌카의 백핸드 크로스가 네트에 걸리는 순간 오사카 나오미는 비로소 활짝 웃었다.

세 번의 메이저 대회 결승전을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하는 순간이었다. 2018년 이 대회 결승전에서 세레나 윌리엄스를 물리치고 첫 우승 감격을 누린 이후 지난 해 호주 오픈 정상에 올랐고, 이번에 다시 최고 실력자로 인정받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이제 오사카 나오미의 단식 세계 랭킹은 9위에서 3위로 바뀔 것이다.

2020 US 오픈 테니스 여자단식 결승 결과
(13일 오전 5시 15분, 아서 애시 스타디움-빌리 진 킹 국립 테니스센터, 뉴욕)

오사카 나오미 2-1(1-6, 6-3, 6-3) 빅토리아 아자렌카

- 결승전 주요 기록 비교
서브 에이스 : 오사카 나오미 6개, 빅토리아 아자렌카 3개
더블 폴트 : 오사카 나오미 2개, 빅토리아 아자렌카 2개
첫 서브 성공률 : 오사카 나오미 65%(51/78), 빅토리아 아자렌카 75%(68/91) 
첫 서브 성공시 득점률 : 오사카 나오미 61%(31/51), 빅토리아 아자렌카 59%(40/68)
세컨드 서브 성공시 득점률 : 오사카 나오미 48%(13/27), 빅토리아 아자렌카 39%(9/23)
네트 포인트 성공률 : 오사카 나오미 50%(6/12), 빅토리아 아자렌카 69%(11/16)
브레이크 포인트 성공률 : 오사카 나오미 42%(5/12), 빅토리아 아자렌카 50%(5/10)
위너 갯수 : 오사카 나오미 34개, 빅토리아 아자렌카 30개
언포스드 에러 : 오사카 나오미 26개, 빅토리아 아자렌카 22개
총 뛴 거리 : 오사카 나오미 2.217km, 빅토리아 아자렌카 2.088km

오사카 나오미의 그랜드 슬램 우승 기록
2020년 US 오픈, 2019년 호주 오픈, 2018년 US 오픈

US 오픈 여자단식 2010년 이후 우승, 준우승 기록
2020년 우승 오사카 나오미(일본), 준우승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2019년 우승 비앙카 안드레스쿠(캐나다), 준우승 세레나 윌리엄스(미국)
2018년 우승 오사카 나오미(일본), 준우승 세레나 윌리엄스(미국)
2017년 우승 슬로아네 스테픈스(미국), 준우승 메디슨 키스(미국)
2016년 우승 안젤리크 케어버(독일), 준우승 카롤리나 플리스코바(체코)
2015년 우승 플라비아 페네타(이탈리아), 준우승 로베르타 빈치(이탈리아)
2014년 우승 세레나 윌리엄스(미국), 준우승 캐롤라인 보즈니아키(덴마크)
2013년 우승 세레나 윌리엄스(미국), 준우승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2012년 우승 세레나 윌리엄스(미국), 준우승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2011년 우승 사만다 스토서(호주), 준우승 세레나 윌리엄스(미국)
2010년 우승 킴 클리스터스(벨기에), 준우승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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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오사카 나오미 빅토리아 아자렌카 US 오픈 그랜드 슬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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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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