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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의 멋진 날>,
  <다니엘의 멋진 날>,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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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라디오와 함께 시작한다. 작년, 아니 올초만 해도 그런 걸 들을 거라 생각조차 못했다. 음악은 나에게 소음과도 같았다. 시간을 쪼개 사는 일상에서, 음악 들을 여유가 어디 있었겠나. 하지만 코로나와 함께 남아도는 시간이 나를 갉아먹을 때, 음악은 자꾸만 마음 속 구덩이에 빠져드는 내 마음에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부터 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라디오를 켜면 화두가 거의 하루 종일 '코로나'다. 모두들 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 버겁다. 그리고 그만큼 코로나가 없었던 그 시절의 소중함을 그리워한다. 바로 이런 시절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책이 바로 <다니엘의 멋진 날>이 아닐까.

처음으로 그림책에 흑인을 등장시킨 작가 에즈라 잭 키즈를 기리는 '에즈라 잭 키즈상'을 수상한 미카 아처 작가, 당연히 그의 주인공은 흑인 꼬마 아이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멋진 날'이 궁금했다. 그래서 옆집 산체스 부인에게서 부터 묻기 시작한다. 다니엘이 할머니 집에 도착하기 까지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멋진 날'에 대해 말해준다. '하늘이 맑아서 페인트 칠하기 좋은 날', '바람이 씽씽 불어 연날리기 좋은 날', '공원 벤치에 그늘이 잘 드는 날', '아기 들이 쌔근쌔근 낮잠을 오래 자는 날' 등등. 

어떤가? 어린 아이가 던진 질문이라서 그랬을까, 돌아오는 답들은 한결같이 소박하고, 일상적이다. 아니 어린 아이의 질문이라 더 담백하게 지금 멋지다고 생각한 것들을 솔직하게 말해준 게 아니었을까.

처음엔 저게 멋진 거야? 하고 실없는 미소가 지어지다가,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진짜 멋진 게, 저런 일상의 행복이라는 것을. 먼 훗날의 거창하고 폼 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심리학에서 말하듯, 'here & now', 지금 여기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 그게 가장 멋진 것이라는 것을.

손주가 찾아와 그게 멋지고, 그 손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이 그림책의 엔딩을 보고 미소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사람은또 폼나는 멋진 걸 그리며 살아가려고 한다. 코로나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린 지난 시절 일상의 행복들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래도 누리고 있는 멋진 날도 놓치지 않았으면 싶다.

오랜만에 줌으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을 만났다. 따지고 보면 몇 달도 안 된 인연이지만, 사회적 격리로 인해 수업이 쉬었던 한 달도 안 된 시간이 하세월인 것 마냥 서로 반가워한다. 이런 시절이 아니라면 우리가 이렇게 애틋하게 반가워할 수 있을까. 이런 시절이 아니라면 우리가 이렇게 '사람'이, '관계'가 소중하게 느껴질까.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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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 아처의 또 다른 책,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은 또 다른 울림을 준다. '공원에서 시를 만나요'라는 게시문에 '시'가 궁금해진 다니엘, 그런 다니엘에게 동물들이 월화수목, 매일매일 '시'를 전한다.

거미는 시가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거'라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거미줄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청솔모는 '바스락바스락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거야'라고, 수요일의 개구리는, '시원한 연못 속으로 뛰어드는 거'라고 말한다.

귀뚜라미는 자신의 노래소리처럼 '해질 무렵의 노래'라고, 부엉이는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별, 풀밭의 달빛, 어디로든 나를 데려다 주는 고요한 달빛 같은 거야'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시를 길어내는 동물들, 그런 동물들을 통해 시를 배운 다니엘은 사람들 앞에서 그 시를 나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연못에 비춘 노을을 본 다니엘은 '내 생각엔 저게 바로 시같아'라고 한다. 그런 다니엘의 말에 잠자리가 '나도 그래'라고 화답하고.

다니엘이 시를 '영접'해가는 과정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시'를 찾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삶이 시가 된다. 그 말은 고쳐 말하면 시와 같은 삶이다. 거미줄도, 청솔모가 뛰어노는 나뭇잎도, 귀뚜라미의 노래도, 그 평범한 일상을 채우는 것들이 모두 '시'다. 우리가 '시'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다니엘의 멋진 날

미카 아처 (지은이), 이상희 (옮긴이), 비룡소(2020)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미카 아처 (지은이), 이상희 (옮긴이), 비룡소(2018)


태그:#다니엘의 멋진 날 ,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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