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박광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로 국내는 물론 세계 여성 영화인의 연대를 강조해 온 서울국제여성영화제(아래 여성영화제)가 올해로 22회를 맞이했다.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된 직후 한창 꽃피울 시기다. 국제여성영화제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행사가 10일 개막을 알렸다.  

올해 개막까지 넘어야 할 관문이 꽤 많았다. 코로나19 대유행 및 내부 조직 재정비 등 주어진 과제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기존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 및 집행위원 다수가 동반 사퇴한 후 변재란 조직위원장-박광수 집행위원장 체제로 접어든 지 2년 차다. 안팎의 우려를 딛고 올해 여성영화제는 영화인들 간 연결을 강조한 '링키지' 섹션을 신설했고,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섹션을 신설하는 등 도약을 노리고 있다. 현재를 짚어보고자 박광수 집행위원장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성 영화인의 갈증을 포착하다

"'여성영화인들이 작업하며 가장 절실했던 게 무엇인지'란 질문에 가장 많이 답변한 게 연결이었다. 올해 영화제는 여성영화인들 작업에 대한 담론을 확장하고, 그 성취를 세계 무대로도 연결해내겠다는 기획을 갖고 있다.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섹션도 신설됐다. 보다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사와 영화사를 탐구한 영화를 소개하는 섹션이다. 

올해는 '여성영화/사'라는 주제로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사 쓰기의 방법을 모색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14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여성, 영화사>, 김소영 감독이 1980년대 연출한 단편 <겨울환상>과 <푸른 진혼곡>, 그리고 이화여대 영화패 누에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한국 독립영화사를 젠더적으로 재구성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본다."


박광수 집행위원장은 신설 섹션과 바뀐 섹션 운영을 공들여 설명했다. 그가 강조한 링키지 섹션은 여성 감독과 비평가의 대담을 주축으로 한 행사였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부분적으로 온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하기에 이 섹션 또한 사전 녹화를 마무리한 상태였다. 

운영 시스템 정비와 투명성 강화가 2년 차를 맞은 박 집행위원장의 주요 과제였다. 박 위원장은 "영화제 준비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구성원들이 그 과정을 신뢰하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지원하려 했다"며 "영화제는 많은 사람이 들고 나는 장이기에 서로 신뢰를 갖고 일을 해나가려면 운영 프로세스가 투명하고 안정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일종의 집단지성을 통해 영화제를 운영하는 것에 방점을 뒀다. 어떤 관성에 매이지 않고 토론을 통해 임파워링(Empowering, 맡은 일에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식)을 주고받으며 지난 2년을 보냈다. 영화제 기조를 결정하고 주요 프로그램을 만들고 조정하는 일 등을 오랜 시간 토론하며 수정하고 다시 손보는 과정을 거쳤다. 집행위원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해부터 '올해의 보이스'상을 신설했다.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지는데 기여하고 특히 여성들에게 영감을 준 개인이나 팀에게 주는 상이다. 지난해엔 '정치하는 엄마들', 'UN으로 간 스쿨미투', 서지현 검사가 받았고 올해는 추적단 불꽃과 래퍼 슬릭이 수상자다. 여성영화제의 뿌리를 확인하는 의미가 큰 상이다."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현장 사진.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현장 사진.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내부 인력 구성은 최고"

변화와 도약의 의지 이면엔 지난해 겪었던 내홍에 대한 나름의 성찰이 있을 법했다(관련기사 : 내홍 겪고 있는 여성영화제... "관객들께 심려 끼쳐 죄송" http://omn.kr/1hted). 조직 내부 소통 문제, 그리고 새로운 인력의 경험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박광수 집행위원장은 "내부 인력 구성은 최고라고 생각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집행위원장으로서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와의 소통은 늘 어렵다. 이사회는 이사회의 일이, 집행위원회는 집행위원회의 일이 있으니 업무적으로 잘 조율하려 애써야 한다. 지난해 내홍에서 얻은 교훈도 소통의 중요성이었다. 

고여있는 물이 늘 좋을 수 없고 새로운 인력이 늘 경험이 부족한 건 아니다. 현재 여성영화제는 오래 활동한 이력과 새로 영입된 인력이 어우러져 최고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황미요조 프로그러머가 이전 여성영화제 활동 경험을 갖고 있다면 새롭게 합류한 정지혜 프로그래머는 <씨네21> 기자로, 평론가로 단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분이다.

또 변영주 감독, 이숙경, 감독, 배주연 프로그래머 등 여성영화제와 오랜 시간 함께한 분과 정재은 감독, 추상미 감독, 권김현영 활동가 등 새로 결합한 위원들의 실력 또한 최고다. 현재 사무국 총책임을 맡고있는 김태선 국장은 1회 여성영화제부터 함께 해온 베테랑이다. 사무국 활기와 전문 업무 역량 활성화는 모두 우리 사무국장님 덕이다."


코로나19 방역 질문도 빼놓을 수 없었다. 올해 여성영화제는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와 맞물려 개막식과 폐막식 및 주요 이벤트를 온라인으로 진행했거나 할 예정이고, 상영관 또한 50명 미만의 제한을 둬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공식 상영작 102편 중 22편을 국내 OTT 업체인 웨이브(wavve)에서 상영한다. 

일각에선 오프라인 상영을 서울 상암 메가박스와 종로 인디스페이로 나눠 진행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방역에 불리하다는 이유다. 박광수 위원장은 "두 곳으로 나눠 영화제를 진행하는 건 번거롭고, 스태프들 수고도 더해지는 일"이라며 "코로나 상황에 상영관이 겪는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시작된 'SAVE OUR CINEMA' 캠페인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말을 이었다. 

"올해 3월 초부터 코로나19 상황에 질문과 토론을 거치며 대응 근육을 키워 왔다. 단지 올해 영화제를 포기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 온라인으로 전환할 건가 등을 넘어 근본 문제를 논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제는 무엇인가, 서울국제영화제는 어떻게 변태해야 하나 등에 충분히 이야길 나눴다. 여성 영화인들의 실질적 지원, 그리고 관객들에게 여성 영화인을 많이 소개하는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영화인에 대한 지원책이 적절하지 않고 충분하지도 않다는 비판이 많았다. 여성과 젠더 부분도 고려되지 않아서 여성 영화인에 대한 지원도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제는 실질 지원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찾았다. 50팀의 여성 영화인이 함께 만든 개막작 기획도 그 일환이고, 피치 앤 캐치 섹션은 역대 최대 상금을 준비했다. 단편 제작 지원 프로젝트인 필름 앤 젠더도 적극 홍보해서 여성 영화인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독려했다. 

여성영화제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를 보다 민주적으로 만드는 과정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여성영화제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계속되고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연결이 계속되고 있음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8월 15일 이후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스타 토크나 쟁점 등을 생방송으로 전환하거나 사전 녹화를 진행했다. 예산과 공을 추가로 들이는 일이지만 관객들과 연결점을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진행했다. 관객분들이 최대로 즐기고 누리실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로 22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사진은 지난해 행사 현장.

올해로 22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사진은 지난해 행사 현장.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 집행위원장은 "(오프라인) 상영관을 유지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며 "단지 영화제 관행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함께 보고 소감을 나누는 영화적 체험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의식이기에 최후의 어려움이 있지 않은 한 방역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며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박광수 집행위원장은 "집행위원장이 되고 가장 황망한 게 영화제 기간 중 영화를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라며 스스로 여성영화제의 골수팬임을 자처했다. 동시에 국내 여러 지역 여성영화제와의 동반 성장도 강조했다. 그만큼 연결성을 중시하는 기조였다.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정말 많다"며 박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열리기 전 틈틈이 영화를 챙겨보는 처지가 돼 가슴 아프지만, <객도추한>은 꼭 상영관에서 볼 것이고 관객분들에게도 추천한다"고 말했다. 변영주 감독과 김아중 배우가 토크를 진행한다는 깨알 홍보 또한 잊지 않았다. 오는 16일까지 계속되는 여성영화제의 진행 과정을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다. 
서울여성국제영화제 박광수 김아중 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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