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젊은 여성(제시 버클리)'는 만나지 얼마 되지 않은 '제이크(제시 플레몬스)'와의 관계를 재고하면서도 그의 가족이 사는 농장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농장에 도착한 그녀는 제이크를 따라 집을 구경하고, 그의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그 사이 쏟아진 폭설로 인해 농장에 갇힌 그녀는 제이크의 어린 시절과 미래 모습을 동시에 목격하고 자신의 이름과 직업이 계속 변하는 일을 경험한다. 이에 혼란스러워진 그녀는 제이크와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에 대해 알거나 이해하고 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영화의 작품성과 대중성은 영화를 평가할 때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잣대다. 영화는 대중에게 재미를 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이자 감독과 작가의 세계를 담아내는 종합 예술이라는 이중적인 속성을 동시에 지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때 대중성과 작품성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공존하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역대 전 세계 흥행 1, 2위인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아바타>는 각각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스토리 전개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전형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작품성을 우선시하는 칸 국제 영화제의 황금종려상과 대중성도 같이 고려하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이 일치하는 경우 역시 두 번밖에 없었다.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작품성과 대중성이 공존할 수 없다는 명제에 힘을 실어준다. 2016년에 출판된 원작 소설을 읽었다면 감상이 다를 수 있지만,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난해함과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평점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84%의 신선도(전문가 점수)와 54%의 관객 점수를 받아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혼란과 무논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한 장면. ⓒ 넷플릭스

 
영화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드라이브 중에 내리는 폭설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제이크의 차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철학적이고, 사색적이고, 예술적이다. 문학, 음악, 그림 등에 관심이 없다면 그 맥락만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게 도착한 남자 친구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과적으로,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이름과 직업, 배경이 계속해서 바뀌는 여자 주인공, 분명 함께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나이를 먹는 상황은 좀처럼 혼란을 가중시킨다. 제이크와 여자 친구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한 할아버지 역시 영화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는 이유다. 이처럼 시공간을 넘나드는 혼란과 무논리의 이미지들은 도대체 이 영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게 한다.

물론 이 와중에도 몇 가지 힌트와 복선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이크의 여자 친구의 이름과 배경이 계속해서 변하는 것은 그녀가 진짜 여자 친구가 아니라 그가 좋아했던 한 여성, 이름도 직업도 알지 못하는 그녀에 대한 상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이크는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고 여자 친구가 회상하는 장면은 그가 과거에 그녀에게 끝내 말조차 걸지 못하고 지레 포기했음을 암시한다. 이 대목은 노인이 된 제이크가 관리인으로 일하는 고등학교에서 제이크와 그녀가 나누는 대화와 아귀가 맞아 들어가면서 제이크와 그녀 사이에 있었던 총체적 사건의 전말을 완성한다. 

이에 더해 집이라는 공간에서 제이크 가족의 미래, 현재, 과거가 두서없이 펼쳐지는 시퀀스로부터는 이 집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진짜 집이 아니라 제이크의 기억과 심리를 보여주는 장치임을 유추할 수 있다. 투병 중인 어머니와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좋게 보지도 않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가 성장해온 환경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아이스크림을 사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타인들과의 대화와 교류에 매우 소극적인 그의 모습은 영화 내내 몰아치는 눈보라와 만나 사랑도 우정도 없이 홀로 외로이 지내야만 했던 그의 고독한 우울함을 전해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결말에서야 그치는 눈보라, 그리고 잔뜩 내린 눈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 멈춰 있는 제이크의 자동차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는 제목에 한 줌의 고통까지 전부 내려놓은 편안함을 더해준다.  

결국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제이크의 기억과 현실이 상상 속에서 뒤섞일 때 그가 느끼는 감정과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이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가 '예술적이다, 수준 높다, 혹은 작품성이 뛰어나다'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오락으로 여겨졌던 영화에 대해 독일의 심리학자 후고 뮌스터베르크는 <사진극: 심리학적 연구>라는 저서에서 영화는 사건을 내적 세계의 형식에 조응시킴으로써 인간의 스토리를 이야기한다고 주장했다. 영화가 우리의 정신활동을 본떠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특정 사건에 감정과 기억을 투영하고, 상상력을 통해 현실과 떨어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그 이미지는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우리는 객관적인 현실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본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현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그 현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클로즈업으로 특정 사건과 사물에 의미를 더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건을 잘라 이어 붙이고, 서로 다른 두 이미지를 합쳐서 새로운 의미를 더한다. 그리고 '공간과 시간, 인과성의 물리적 형식에서 해방된 영상'인 영화는 관객들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작중 노인이 된 제이크가 영화를 보는 장면이 뜬금없이 삽입되고, 그가 그의 상상 혹은 망상의 내용을 마치 영화관 스크린에 띄워서 보는 이유다. 그가 상상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보는 그의 모습은 <이제 그만 끝낼까 해>와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혼란스럽고, 생각하면 할수록 말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역으로, 또 흥미롭게도 가장 영화답고 예술적이다. 이 영화는 그 자체로서 제이크의 기억, 심리, 그리고 현재 사건들을 조각내서 이리저리 새롭게 배합해 인간의 정신세계를 그려낸 결과물이다. 그러니 반드시 현실의 논리로 설명될 필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에 뒤죽박죽처럼 보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초창기 평론가들에게 '인간의 영혼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황금비율'이라고 평가받던 1.33:1의 화면비를 활용한 이 영화에게 예술적이라는 평가는 가장 적절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안 좋은 영화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현실의 사건을 매우 잘게 쪼개고, 이어 붙여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경우 원래 내용을 파악할 기회가 크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이 영화는 매우 불친절하며 관객들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은 후반부까지 가야 겨우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제시 버클리와 제시 플리먼스, 두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인 문어체로 이루어진 수많은 대사의 향연은 답답하다.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쫓아가는 상황은 주어진 정보가 적을 수밖에 없는 좁은 화면비율과 만나 불쾌함과 불편함을 유발하고, 영화는 마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힘겹게 전달된 제이크의 가슴 아픈 사연은 본래 가진 감흥에 미치지 못한다.

넷플릭스와 함께 작업했던 감독, 작가, 제작자들은 인터뷰에서 넷플릭스가 투자를 한 후에 작업 과정에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이러한 넷플릭스의 불간섭 정책이 예술가의 뜨거운 열정을 만났을 때 나올 수 있는 극한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감독의 철학, 신념, 취향 등을 가장 영화다운 방식으로 담은 작품이고, 그래서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또 그렇기에 도저히 알아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넷플릭스 예술 작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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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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