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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현재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다. 할 수 있는 건 숨을 쉬고 누워 있는 것뿐이다.
 할아버지는 현재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다. 할 수 있는 건 숨을 쉬고 누워 있는 것뿐이다.
ⓒ 최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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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일곱 우리 할아버지는 군인이었습니다. 6.25 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와 한평생 보수 정당에 표를 행사한 완고한 노인이자, 가족들에겐 다정한 할아버지였죠. 5년 전 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찾아왔습니다. 치매는 노인의 정신을 갉아먹었지만, 신체 건강까지 앗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초, 말이 어눌해지고 무기력한 날들이 많아졌지만, 할아버지는 건강했습니다. 집에서 아내와 둘이 살며 스스로 화장실을 갔고, 제 손으로 음식을 먹었고, 가족도 알아봤습니다. 몇 달 동안 여행을 간다는 손녀딸에게 용돈을 쥐여줄 생각도 스스로 할 수 있었죠.

12월 중순 집에 있던 할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지며 대학병원을 거쳐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초기엔 할머니가 매일 병문안을 하러 갔고 가족들도 자주 할아버지를 뵈러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가고 싶어 하시면서도 병원 생활 자체를 거부하진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며 할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은 외부인 면회를 금지하고 문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고령층으로 가득한 병원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요. 요양 시설 내 집단 감염 소식이 연일 들려오던 시기였습니다. 가족들도 초반엔 병원의 단호한 조치를 반겼습니다. 면회를 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죠. 그때는 당분간일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7개월 만에 다시 보다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는 유일한 방법은 간병인을 통해 할아버지의 건강을 묻는 것뿐이었습니다. 몇 개월 뒤에도 코로나19가 지속되자 병원은 환자와 가족들의 영상통화를 시켜주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만에 영상으로 본 할아버지는 많이 마른 모습이었습니다. 가족을 알아보는 일이 많이 힘들어진 것 같았지만, 이름을 말하자 곧 '우리 손녀'라고 하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죠. 한 주에 한 번씩 할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하며 버티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7월 초 병원에서 할아버지에게 패혈증이 생겼다고 알렸습니다. 가족들은 바로 할아버지를 대학병원으로 옮겼고 그때서야 할아버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7개월 만에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이미 며칠째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몸을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도 패혈증만 치료할 뿐 할아버지의 현재 상태와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패혈증을 다 치료한 후에는 퇴원을 통보했죠.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인데도 대학병원에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죠. 8월 초 할아버지는 그토록 원했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나온 지 한 달 반, 할아버지는 여전히 일어나지 못합니다. 말을 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숨을 쉬고, 잠을 자고, 소변과 대변을 보는 일입니다. 스스로 숨 쉴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입도 다물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혀는 바싹 굳었고, 고이는 침을 제대로 삼키지 못해 계속 가래가 생깁니다.

24시간 집에 상주하는 간병인은 할아버지의 몸을 수시로 뒤집고 체위를 바꿔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닦아 줍니다. 소변과 대변을 치우고, 기저귀도 갈아 주고요. 폐렴이 생길 수 있어, 주기적으로 흡인기로 가래도 빼내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숨을 쉬기 힘들어할 때마다 입에서 식도를 타고 위까지 얇은 호스를 넣어 고인 가래를 빼죠. 식사 또한 여전히 어렵습니다. 코부터 위까지 연결된 콧줄에 '뉴케어' 영양식을 넣어 음식 섭취를 대신합니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채 날이 지날수록 말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우리 집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 이유는 누구에게 원인을 돌리거나 책임을 지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우리 가족뿐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의 사정을,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의 투병 과정을 자세히 전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8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8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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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19명, 이 중 지역 발생은 108명입니다. 6일 종료 예정이었던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도 13일까지 연장되었습니다. 신규 감염자가 여전히 세 자릿수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증 환자가 늘어 인천과 경기에는 코로나19 중환자가 당장 입원해 치료받을 수 있는 병상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랑제일교회와 8.15 광화문 집회 관련자들의 코로나19 확진율이 31%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관련자 및 참여자 3명 중 한 명이 감염된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1일 기준, 사랑제일교회 관련자 1400명, 광화문 집회 참석자 7000명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거부하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분들 중 다수가 지금 집에 누워 계신 제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고령층입니다. 이분들이 감염된 채 검사와 치료를 거부하면 계속 바이러스는 퍼져나가고, 또 어느 요양원은 코호트(동일 집단) 격리가 될 테지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로 상태가 악화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피하고, 도망가며, 문을 잠그는 동안 

부탁드립니다. 한 명의 할아버지, 또 한 명의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할아버지. 이분들은 모두 당신과 같은 시대를 겪으며 열심히 살아온 동료이자 친구입니다. 제 할아버지처럼 참전 용사였던 분도 있겠죠. 이들이 다시 요양원에서, 또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도록 해주세요.

저는 우리 할아버지도 당신들처럼 마음껏 소리치고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만 한다면 더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바라건대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병으로, 또 외로움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이제 그만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주세요.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늘어갈수록 노환이 있는 부모를 모시는 자식은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집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부디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친구를 위해서 보건소로, 선별 진료소로 향해 주세요.

당신들이 피하고 도망가고 문을 걸어 잠그는 동안, 또 어느 병원과 요양원은 바깥을 향한 문을 굳게 닫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동료와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병에 걸리고, 또 사랑하는 자식과 손주를 볼 때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하겠죠. 이들의 가족은 또다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절망과 자괴감에 빠질 겁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널리 퍼진 바이러스를 주워 담아 없앨 수도 없을 테지요. 그렇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속도는 막을 수 있습니다. 감염의 위험에 노출됐던 분들이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둔 가족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단지 병원의 문이 잠시라도 열리길 바라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애타게 바랍니다. 제발 바이러스의 확산을 멈출 수 있도록 협조해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상황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에 따라 주세요.

할아버지께서 건강해질 수 있다면, 코로나19가 끝난다면, 태극기 집회가 무슨 문제가 될까요? 광화문에서 밝게 웃는 할아버지를 보고 싶습니다.
 
지난 2월 25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산에서 첫 코호트 격리 조처가 이루어진 아시아드요양병원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위 사진은 기사에 나오는 요양 병원과 관련이 없습니다.
 지난 2월 25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산에서 첫 코호트 격리 조처가 이루어진 아시아드요양병원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위 사진은 기사에 나오는 요양 병원과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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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코로나19, #요양병원, #할아버지, #광화문집회, #태극기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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