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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모습(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사진). 현진건은 백제부흥운동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무영탑>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 민족의식을 진작시킨다는 이유로 게재 중단 조치를 당했다. 그에 비해 김동인은 같은 백제부흥운동을 다른 <백마강>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애 연재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선일체'를 강조했다. 이인직도 이른바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에 일본의 대동아공영 논리를 설파하고 사건 전개와 인물 묘사를 통해 교묘히 일본과 일본인들을 찬양하여 친일파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현진건의 모습(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사진). 현진건은 백제부흥운동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무영탑>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 민족의식을 진작시킨다는 이유로 게재 중단 조치를 당했다. 그에 비해 김동인은 같은 백제부흥운동을 다른 <백마강>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애 연재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선일체"를 강조했다. 이인직도 이른바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에 일본의 대동아공영 논리를 설파하고 사건 전개와 인물 묘사를 통해 교묘히 일본과 일본인들을 찬양하여 친일파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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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은 '청일전쟁'(淸日戰爭)의 분수령이 됐던 평양성 전투가 벌어진 날이다. 이 전쟁은 1894년 6월부터 1895년 4월까지 진행됐다. 그런데 두 나라가 싸운 지역의 절반 이상이 우리나라 영토였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 때에도 두 나라는 한반도에서 싸웠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죽어나는 것은 조선 백성들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우리나라 조정은 청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그것이 청일전쟁의 실질적 시작이었다. 청군은 동학군과 관군이 전투 중인 전라도로 진입하는 아산에 들어왔다. 그에 비해 일본은 잽싸게 군대를 서울로 가는 길목인 인천에 상륙시켰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일본은 철군하지 않고 있다가 경복궁을 점령했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군은 아산만의 청군을 공격하는 것으로 첫 전투를 개시했다. 그후 성환 전투, 평양성 전투, 압록강 하류 황해 해전, 요동 전투, 위해 해전이 이어졌다. 일본군의 연전연승이었다. 청군은 평양성 전투 이후 한반도에 한 명도 머무르지 못했고, 청은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평양성 전투 후일담 <혈의 누>는 친일소설

흔히 이인직의 <혈의 누>는 '최초의 신소설'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을사늑약(1905년) 이듬해에 발표된 이 소설은 친일문학으로 지탄받는 작품이다. <혈의 누>가 평양성 전투의 후일담이라면 외세들의 다툼에 고통받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현실을 고발했을 성싶은데, 어째서 친일문학으로 분류되는지 궁금하다.

제목만 보면 '혈(血)'의 '누(淚)'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끼리의 전쟁 때문에 흘린 피눈물(血淚)을 묘사한 소설로 여겨진다. 전문을 실을 수 없어서 소설의 첫 부분만 교과서에 수록되기 때문에 특히 학생들이 그런 인식을 가지게 될 공산이 크다.

"일청전쟁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더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티끌뿐이라."

이인직은 <혈의 누>의 첫문장 첫어휘부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교묘하게 삽입한다. 모두가 청일전쟁이라 부르는데 이인직은 그것을 일청전쟁으로 표현한다. 일본군 통역 담당으로 러일전쟁에 복무했고, 이완용의 비서로서 조선의 망국에 크게 기여한 친일파다운 계산이다.

첫줄부터 그런 정도이니 소설 전체의 내용이 친일 의식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 평양성 전투 와중에 부모와 헤어진 일곱살 옥련은 일본군 군의관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가서 학교에 다니게 된다. 옥련의 어머니는 낯선 조선 남자에게 봉변을 당할 뻔하지만 일본군 헌병장교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청군은 온갖 나쁜 짓을 자행하고 일본군은 엄격한 군율을 지키며 질서정연하게 행동한다. 

소설은 서구식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에 대한 호감을 곳곳에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옥련의 약혼자가 되는 구완서는 "우리나라를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 강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나라들이 뭉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는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논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인직과 비슷한 작품 경향을 보여주는 김동인

이인직이 <혈의 누>를 통해 청일전쟁과 그 이후 한국인의 삶을 친일적으로 왜곡해서 그려내었듯이, 김동인은 <백마강>을 통해 그와 비슷한 창작 경향을 보여준다. <백마강>은 소설 첫머리에 일본 유학을 갔던 백제 소녀 봉니수가 일본인 소녀 오리메와 함께 부여로 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내선일체'를 상징적으로 녹여낸 문학적 장치이다.

<백마강>은 결말도 '내선일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의 대단원은 나당연합군에 대항하여 봉니수, 봉니수의 남편 태자, 봉니수의 오빠 집기, 집기의 일본인 친구 소가, 소가의 아내가 된 오리메가 주류성을 지키고 있는 중에 일본군이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병하는 장면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함께 중국에 대항하고, 일본이 지원군을 보내어 한국을 돕는다는 전형적 '내선일체' 구성이다.

<백마강>은 1941년 7월 24일부터 1942년 1월 30일까지 158회에 걸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됐다. 1941년이라면 1937년 7월 7일부터 1945년까지의 중일전쟁과 1941년 12월 7일부터 역시 1945년까지의 태평양전쟁 시기이다. <백마강>은 일본인과 조선인이 '내선일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가자는 시의적절한 계몽(?)소설인 것이다.  

소재 같아도 주제는 작가에 따라 딴판

같은 백제부흥군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현진건의 <흑치상지>는 주제의식이 전혀 다르다. 1939년 10월 25일부터 1940년 1월 16일까지 52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흑치상지>는 백제 유민들의 항쟁을 통해 민족의식을 강조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 탓에 연재도 중단됐다.
 
의자왕이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흑치상지는 부흥군을 일으켜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흑치상지는 군사들을 이끌고 이동하던 중 당나라 군대에 포로로 잡혀가는 백제 유민들을 구해낸다. 백성들 중에는 좌평 임자의 부인 창화도 있었다. 창화는 당나라 장수에게 교태를 부려 백성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나라를 팔아먹은 남편을 질책하는 태도도 보였다. 

백성들은 모두 흑치상지를 따르겠다고 했다. 창화만 다른 곳으로 가겠다면서 혼자 가버렸다. 흑치상지의 군대가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는 소문이 번지자 백성들이 모여든다. 그때 낯선 청년이 흑치상지를 찾아와 창화의 편지를 내놓는다. 그녀는 거짓 항복으로 당나라 진영에 들어가 내부 사정을 파악했고, 그것을 흑치상지에게 알린 것이었다. 

흑치상지는 창화의 정보를 활용하여 당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한다. 전투가 끝난 후 창화가 흑치상지에게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본래 양민의 딸이었고, 수진이라는 청년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재상 임자에게 첩으로 끌려갔다. 그 일로 창화는 남자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창화는 흑치상지를 만나고부터 생각이 바뀌었노라 고백한다.
 
대구 두류공원에 세워져 있는 '현진건 문학비'. 그는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유공자이지만 생가 또는 살던 집이 복원되거나 문학관이 건립되는 등의 기림은 받지 못하고 있다.
 대구 두류공원에 세워져 있는 "현진건 문학비". 그는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유공자이지만 생가 또는 살던 집이 복원되거나 문학관이 건립되는 등의 기림은 받지 못하고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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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

책을 고를 때 누가 썼는지, 출판사가 어디인지, 목차가 어떤지 등을 먼저 살펴보라고 한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쓴 사람이 누구인지, 달리 말하면 저자의 사람됨됨이를 파악하는 일이 가장 급선무라고 본다. 글은 필자의 사상과 감정을 담는 그릇인 바 좋지 않은 독서를 하면 독이 든 물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글의 다른 표현 양식인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화제의 경향성, 농담의 수준, 대화의 예절 등은 화자(話者)의 인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잠깐의 말섞음으로 재빨리 상대의 인간됨됨이를 파악해야 한다. '물이 아니면 건너지 말고 인정이 아니면 사귀지 말라'고 했다. 붕우유신(朋友有信)도 같은 뜻이다. 이인직, 김동인, 현진건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그와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태그:#청일전쟁, #현진건, #흑치상지, #혈의누, #9월15일 오늘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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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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