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 문희> 포스터

영화 <오! 문희>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엄마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툭하면 집 나간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늙으면 죽어야지'를 달고 사는 오문희 여사(나문희). 오늘도 죽겠다고 높은 곳으로 출두하셨다. 그래봤자 동네 뒷산이 전부지만. 양치기도 한두 번이지 가족들은 '또 시작이다'라는 듯 유머스럽게 맞받아치며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사실 오문희는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으며 자살 소동은 매번 해프닝으로 끝난다. 그 무섭다는 치매 귀신이 나타날 때면 가족들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하나뿐인 손주 보미(이진주)의 머리를 듬성듬성 잘라놓질 않나, 충견 앵자 몸에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뚫어 놓는 건 예사다. 냉장고든 뭐든 죄다 전기코드를 뽑아 놓고, 태연하게 웃으며 해사한 얼굴을 보여준다. 화를 낼 수도 윽박지를 수도 없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파파이자 보험 회사 에이스인 두원(이희준)은 두 사람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매번 엄마가 벌려 놓는 일을 수습하기 바쁘지만 두원에게는 알콩달콩 세 가족이라 행복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심통 만두 보미가 무럭무럭 자라고 엄마도 약만 잘 챙겨 먹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은 행복의 작은 틈 사이를 비집고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다.
 
 영화 <오! 문희> 스틸컷

영화 <오! 문희>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늦은 밤 두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보미와 문희, 앵자는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마침 추석 행사로 교통통제 중이라 지나가는 차도 없이 인적이 드물었던 게 화근. 무단횡단하던 보미가 뺑소니차에 치였다. 의식불명 상태의 보미를 보자 눈이 돌아간 두원은 문희에게 나무라기 바쁘고, 영문을 모르는 문희도 속상하기만 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늦은 밤 목격자도 없는 뺑소니를 잡을 단서가 부족하다. 설상가상으로 문희와 앵자가 목격했다고는 한들 치매 노모와 말 못 하는 짐승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주변의 CCTV도 어두워 보이지 않고,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은 동네 보궐선거로 묻히고 만다. 경찰은 기다려보라며 사건을 질질 끌기 바쁘다. 이대로 사건은 소리 소문 없이 종결되는 것일까.
     
하지만 목격자도 단서도 없이 속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뜻밖에 문희의 말 한마디가 단서로 떠오른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마다 내뱉은 말 한마디를 새겨듣는다면 충분히 범인을 찾을 수도 있다. 무심코 내뱉는 것 같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단어들을 조합해보니 말이 되어간다. 과연 치매 환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의구심이 들지만 가끔 돌아오는 정신줄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보기로 한다.

우리 가족, 죽어도 못 잊어!
     
영화는 범죄라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농촌 수사 극이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중무장하고 엄마와 아들로 분한 나문희와 이희준의 연기 배틀도 관전 포인트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호흡이 맞아떨어지는 엄마와 아들의 모습이 훈훈하다. 말도 안 되는 추리와 막무가내 수사력이 앞서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모자 케미가 폭발한다.
 
 영화 <오! 문희> 스틸컷

영화 <오! 문희>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아들은 며느리도 내쫓고 치매 간병까지 도맡게 된 엄마를 원망할지언정 미워하지는 않는다. 힘들고 지치는 삶이지만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밝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치매 때문에 자기보다 더 아끼는 딸 보미를 잃어버릴 뻔한 상황에서도 가족애로 포옹한다.

엄마 문희는 치매로 정신은 잃어갈지언정 가족을 사랑했던 기억은 간신히 붙잡고 있다. 두원이 어릴 적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기억을 잊지 않고 미안해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오해를 풀어가고 숨겨 두었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두원이란 이름 대신 육봉이라 부른다거나, 애지중지하는 초코파이의 사연, 반려견 이름이 앵자인 이유 등. 모자 사이에 있었던 뭉클하고 아픈 사연들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엄마는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엄마의 부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엄마 없는 삶을 꾸려나가는 또 다른 가족 모습이 뭉클함을 유발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늘과 땅을 다 합쳐도 헤아릴 수 없는 엄마의 넒은 마음을 느껴볼 수 있다. 집콕이 일상이 된 시대에 가족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과 사랑에 대한 한국적인 코드가 심겨 있다.

다만 시기를 잘못 택한 것이 안타깝다. 명절 시즌에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가족과 다 같이 보기 좋은 드라마에 코믹을 섞어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버 세대를 전면에 내세워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관객층을 고려한 점도 눈에 띈다. 현재 선전하고 있는 < 69세 >나 <남매의 여름밤>처럼 노년과 가족을 주제로 했다.

한편, <오! 문희>는 <최종병기 활>, <애자>의 조연출 출신인 정세교 감독의 데뷔작이자 CGV 아트하우스의 마지막 투자, 배급작이다.
오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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