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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강미숙님이 자신의 SNS에 쓴 글로,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정부의 의사정원 확대 등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진이 진행 되고 있는 8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한 전문의가 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정부의 의사정원 확대 등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진이 진행 되고 있는 8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한 전문의가 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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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의사들의 이야기에 둘러싸인 적이 또 있을까. 매일 눈뜨면 의사들 소식이다. 요구사항도 정부의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상향되다 못해 정권 퇴진까지 언급되는 걸 보면서, 의사만큼 자신들의 존재감을 강하게 증명하는 집단이 또 있을까 싶다. 한편으론 이들의 주장이 부럽다는 어느 간호사의 독백에 감정 이입하게 된다.

의사집단 전체를 악마화할 수도 해서도 안 될 터인데, 국민에게 스스로 멀어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주변에 좋은 의사가 얼마나 많은데, 소수가 다수를 대표해 횡포를 부리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안 좋다.

내가 만난 좋은 의사 소개하기 챌린지라도 해볼까 하다가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의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에겐 최악의 의사 두 분과 최상의 의사 두 분이 있다. 최악의 의사 한 분은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 생략하기로 한다. 그분은 지금도 원주에서 영업 중이다. 하나를 보고 전부를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겠지만, 그런 우를 범하는 게 또 사람이다.

젊을 때는 병원 출입이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한두 사람의 의사나 간호사의 행동이 그 집단의 기억을 지배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좋은 분들이 계셔서 대척점에 있는 이들이 면죄부를 받는 것 같다.

입에 담기조차 거북했던 산부인과 의사의 말
  
첫 번째 의사는 산부인과 원장이다. 결혼 초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원주에 와서 동네 아주머니들의 소개로 간 곳이다. 당시 원주에서 입소문 난 유명 산부인과 병원이었으나, 딱 한 번 가고 발길을 끊었다. 여성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산부인과 병원에 가는 건 정말 고역이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할 때 산부인과 진료침대를 바꾸자고 그렇게 외쳤건만, 여전히 의사 진료편의를 우선한 진료방식은 바뀌지 않는다. 아마 남자들도 생리하고 임신을 했다면 생리대는 무상공급되고 진료방식은 진즉에 바뀌었을 거라고 말해보지만, 그럴수록 여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같아 기분만 착잡해질 뿐이다.

나는 줄곧 의사가 남자든 여자든 그저 의사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병원의 원장은 나에게 남자의사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을 가르쳐주었다. 그날도 예외 없이 모멸감을 억누르며 다리를 벌리고 누워 루프(피임) 시술을 받는데, 그 늙수그레한 의사의 입에서 차마 듣지 못할 말들이 쏟아졌다.

"남편이 잘해줘? 실력은 좋아? 밤마다 많이 괴롭혀? 콘돔으로는 안 되겠어?"

60대 초반의 의사가 30대 초반의 여성을 진료하면서 하는 말씀이시다. 모멸감과 치욕으로 온몸을 떨며 진료침대에서 내려왔다. 더 화가 나는 건 추천해준 동네 젊은 엄마들의 태도에 있었다. 그들은 '친근하고 좋지 않냐', '딸 같아서 그러시는 거다' 등 원장의 태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남편을 제외하면 마음 터놓고 얘기할 대화상대 하나 없는 동네에 절망스러웠다.

지금 같으면 턱도 없는 일들이 불과 20년 전엔 농담으로 치부되었다. 신고할까도 생각했지만, 당시 성인지감수성으로는 어림없었고 여성의사가 있는 산부인과로 옮기는 것 말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중에 내가 활동한 여성단체가 그 맞은 편 건물로 이사했는데,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 원장이 떠올라 한동안 건물을 쳐다보지 못했다.
  
대학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드나들면서 그는 의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주치의이자 친구가 되었다.
 10년 가까이 드나들면서 그는 의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주치의이자 친구가 되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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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의사는 두 아이를 키워주시던 분을 따라 이사한 무실동의 정형외과 원장이다. 지금은 원주시청사, 법원 검찰 등이 이전하여 원주의 신도심이 되었지만, 처음 무실동에 이사했을 땐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제외하곤 허허벌판이었다.

몇 안 되는 건물에 입주한 정형외과의 의사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분이었다. 검도를 하던 아들이 손목을 자주 삐끗해 찾게 된 병원으로, 지금은 갈 일이 거의 없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의 주치의라고 생각되는 고마운 분이다.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앞으로 지정병원으로 삼아도 될까 싶어 로비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의사의 면허증을 보게 되었다. '인제대에 의대도 있구나. 그런데 인제대는 어디에 있는 거지?'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의사를 만난 후 의구심이 전부 사라졌다. 한산한 동네였음에도 품성 때문인지 정형외과는 늘 사람이 많았다.

의사선생님은 일곱 살 아들에게 눈을 맞추며 농담도 하고, 반깁스해주며 '딱딱한 팔을 마구 휘두르다 누나가 다칠 수 있으니 힘이 셀수록 조심해야 하는 거야' 하고 주의를 주셨다.

워낙 짧은 진료에 익숙했던 나는 볼일만 보고 얼른 나오려 했지만, 의사는 기다리는 환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심하게 주의사항도 일러주고 밤에 아이가 아파하면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이들은 밤에 잘 아프니 혹 다른 데가 안 좋아도 기본적인 도움은 줄 수 있으니 응급실부터 가지 말고 전화하라며 핸드폰 번호까지 알려주면서 말이다. 오밤중에 도움을 청할 일은 없었지만,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딱 한 번의 진료로 그는 나에게 서울대 의대보다 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10년 가까이 드나들면서 그는 의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주치의이자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진학상황이나 학업의 애로사항을 물어보는 등 고민 상담을 해주었고, 나에겐 자녀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아들 녀석이 외지의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인사드리고 오라고 시켰을 정도로 사이가 참 각별했다.

나도 척추협착 수술을 한 후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환자들이 물리치료사들을 '아가씨' 하고 부르는 게 거슬려 원장선생님께 침대 옆에 벨을 부착하거나 '불편하시면 물리치료사 선생님을 부르세요'라고 써 붙이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더니,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개선해 주기도 했다.

이후 무실동이 점점 도심화되면서 외곽으로 이사를 결정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찾아가자 그는 "불편하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끝까지 친절을 베풀었다.

2019년에 아들이 훈련 중 손목을 또 다치는 바람에 오랜만에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는 마치 오랜 친구 대하듯 우리를 반겨줬다. 지금은 과거보다 환자도 많아지고 복잡해서 얼른 진료만 받고 나오려고 했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저런 안부를 물어왔다. '딸은 대학 잘 다니고 있냐', '척추 수술한 건 이젠 괜찮으냐', '아이들이 클수록 걱정거리가 많아지더라' 등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아들에게도 '성격상 동료들 보기 미안해서 참고 훈련할 것 같은데 절대 그러지 마', ' 군대에서 다치는 것만큼 억울한 건 없다, 누구도 대신 아파주지 않는다'며 손목사진과 함께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서까지 써줬다.

어머니가 무실동에 계셔서 지금도 자주 지나다니는데, 늘 그 병원을 쳐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건강하길 맘속으로 기원한다.

유방암 치료, 몸이 힘들지 않았던 단 하나의 이유
    
어쩌다 질문이 많아져도 귀찮은 내색 없이 선배여성으로서,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었다.
 어쩌다 질문이 많아져도 귀찮은 내색 없이 선배여성으로서,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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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의사는 서울 아산병원에 계신 주치의 선생님이다. 그렇다. 그 흔한 유방암으로 나는 굳이 서울을 찾았다. 이번 의료대란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서 나는 암 진단을 받은 후 원주에서 치료를 결심했다. 친정오빠는 '서울에 아는 의사도 많은데 왜 시골에서 하느냐', '어느 병원이든 말만 하라'고 했지만, 암치료가 다 표준화되어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치료 후 수술까지 마쳤지만, 매우 드물게 양쪽 모두 종괴가 발견되었다. 암세포의 종류도 달랐다. 재발 전이의 위험성이 남들의 두 배였지만, 그때까지도 '다 알아서 한다'며 퇴원할 때까지 유치원생 달래듯 유치한 말로 무시했다.

좋지 않은 결과는 물론 양쪽 가슴에 대형 스테이플러 쇠심을 꽝꽝꽝 찍어놓은 게 너무하다 싶었던 참에 나는 지인 찬스 없이 서울로 병원을 옮겼고, 지금의 주치의를 만났다.

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치의 선생님에게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처음 찾아갔을 때 그는 양쪽 가슴의 서로 다른 세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딸이 있으니 유전자 검사를 고려해보자고 제안했다. 특히 몸에 충격을 주는 항암이 아닌 우회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나에게 검토의 시간을 주었다.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여 신중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는 내 성향과 딱 맞는 분이었다. 이래서 다들 서울 서울 하는 거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환자는 의사와의 유대감과 신뢰가 절반 이상, 아니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충족시켜주는 의사를 만난 덕분에 어려운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대형병원의 의사들이 3분 진료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내 주치의에게 한 번도 내쫓긴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표준치료 스케줄이 시작되고 나서는 특별히 궁금한 것도 없어 2분 만에 끝날 때도 있었지만, 대기시간에 이미 나의 차트를 훑어보신 덕에 아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쩌다 질문이 많아져도 귀찮은 내색 없이 선배여성으로서,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었다.

지금도 가끔 앞의 환자가 10분 혹은 20분이 넘도록 진료를 볼 때가 있다. '예후가 안 좋은 분이신가보다', '말기암 환자이신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길게는 한 시간 넘게 기다릴 때가 있는데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힘들어지면 그렇게 케어받을 수 있겠구나' 싶은 것이다.

암환자들은 수가가 높다 보니 검사 때마다 CT는 기본이고 PET CT까지 남발하는 의사들이 있다. 그러나 나의 주치의는 방사선은 가급적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는 게 좋다며 핵의학과 검진은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몸을 크게 축내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다 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환자 옆에서 당신들은 비로소 빛난다
   
'4대악 의료정책(한방첩약 급여화, 의대 정원 4천명 증원, 공공의대 신설,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궐기대회'가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개업의, 전공의, 의대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4대악 의료정책(한방첩약 급여화, 의대 정원 4천명 증원, 공공의대 신설,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궐기대회"가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개업의, 전공의, 의대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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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개한 산부인과 의사를 제외하고, 한 분은 동네 의사이고 한 분은 대형병원 의사이니 단순비교는 불가할 것이다. 그러나 경중이 있을 뿐 몸이 아프고 그로 인해 마음마저 약해진 환자를 대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는 안다.

이러한 마음으로 제안하고 싶다. 환자가 어느 과로 진료를 봐야 할지 분명히 알기 어려운 때, 치료가 필요한 건지 그냥 견뎌도 되는지 헷갈릴 때, 동네 의사를 찾아가 상담할 수 있는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일상적인 의료상담으로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되게끔 해주는 주치의가 있다면, 지역 내 의료공백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바다의 낭만과 천혜의 습지를 즐기면서도 여수, 광양, 남원 등 전라 동부에 대학병원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오지 않았나. 지역마다 괜찮은 대형병원과 중증외상센터 하나씩만 있다면 지역 사람들이 과연 서울로 올라가 치료를 받을까 생각해본다. 서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1, 2차 병원만으로도 충분히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로스쿨로 변호사 수임료가 낮아져 접근성이 높아졌듯이, 의사들을 많이 양성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전 국민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누구도 예외 없이 만나는 직업은 의사가 유일할 것이다. 이번 진료 거부에서 보듯 그들이 손을 놓으면 환자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요즘 의료의 질은 의사가 아니라 최신기기가 좌우한다지만, 그것을 읽고 분석하는 것만이 의사가 하는 일이라면 AI 의사를 도입하면 된다.

의사가 존경받는 것은 전문적인 의료지식 덕분이겠지만, 일차적으로는 환자가 심리적으로 그들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이 공부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전 국민에게 존경받는 역할을 스스로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고, 당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환자 옆이며 환자 옆에서 비로소 빛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태그:#의사, #의료진집단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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