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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진이 셋째 날을 맞은 8월 28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전문의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진이 셋째 날을 맞은 8월 28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전문의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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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전공의라는 걸 증명할 수 있으신가요?"

한 의사 단체 회원들이 파업 중단을 호소한 전공의에게 '가짜 의사' 의혹을 제기하며 '신상털이식' 검증을 시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집단 휴진을 주도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 아래 의협)는 지난 8월 31일 파업 중단 호소문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된 '일하는 전공의'가 "진짜 의사 맞나?"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 보도로 논란이 커지자, 결국 '일하는 전공의' 계정을 운영하는 A씨가 같은 날 오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수도권 한 대형병원 소속 전공의"라고 스스로 밝히고 의사 면허증까지 공개했다.

파업 중단 호소문 올린 전공의 '신상털이' 시도
  
지난 8월 29일 '일하는 전공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이 정도면 됐습니다'라는 제목의 파업 중단 호소문이 발단이 됐다.

글쓴이는 '전공의 1인'이라고 밝힌 편지지 2장 분량의 글에서 "이번 파업을 통해서 의사들이 의료정책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앞으로 정부가 이러한 일의 반복을 피하고자 더 정교한 정책을 추진해야 함을 주지시켰다"면서도 "의료 정책을 내는 데에 있어서 의사들이 얼마나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고민해볼 문제"며, 국민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글쓴이는 "'4대 악 정책'에 제동을 걸었고, 앞으로 나올 의료 관련 정책에서도 의사의 의견이 중요할 것임을 충분히 알렸다"면서 정부와 대전협(대한전공의협의회) 및 의협에 "조속한 합의를 통해 파업을 마무리해달라"고 호소했다.

이 글은 전공의가 직접 썼다는 점만 빼면, 그동안 집단 휴진에 반대해온 시민단체나 의료단체 주장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하지만 이 내용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해당 페이스북에는 "전공의 사칭하지 말라", "진짜 전공의면 소속과 이름을 밝혀라" 같은 비난 댓글들이 달렸다.
 
대한의사협회는 8월 31일 '의협, "파업 중단 호소 '일하는 전공의', 진짜 의사 맞나?" 의혹 제기'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대한의사협회는 8월 31일 "의협, "파업 중단 호소 "일하는 전공의", 진짜 의사 맞나?" 의혹 제기"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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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일부 의협 회원들은 페이스북 메신저로 계정 운영자가 '진짜 전공의'인지 검증을 시도했다. 의협에서 지난 8월 31일 공개한 '증거자료'가 바로 이들 대화 내용이다. 의협은 운영자가 '바이탈 사인'(V/S : 생체활력증후) 등 몇 가지 의학 전문 용어를 묻자 엉뚱한 대답을 했다며 진짜 의사가 맞는지 의심했고, 심지어 운영자가 '회의한다(의심한다)' 같은 '중국 표현'이나 '번역투'를 일부 썼다는 이유로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제보 내용에 따르면 해당 운영자는 전공의도, 의사도, 한국인도 아닌 사람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면서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누군가 전공의 단체행동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전공의를 사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에게 의사 면허증까지 공개했지만... 의협 "진짜라는 보장 없어"
  
결국 계정 운영자인 A씨는 이날 오후 <연합뉴스> 화상 인터뷰에서 의협이 제가한 의혹들을 해명하고 자신이 "수도권 소재 대형병원 소속 전공의"라고 밝혔다. A씨는 해당 계정을 전공의 2~3명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면서, 기자에게는 자신의 의사 면허증도 직접 보여줬다고 한다.

의협 회원들이 의학전문용어를 묻는 질문에 엉뚱한 답을 했다는 지적에 A씨는 "신상털이 등 공격의 의도를 갖고 메시지를 보내오는 사람을 반박하려는 의도였다"고 밝혔고, 중국어식 표현이나 번역 투를 쓴 데 대해서도 "전공의 사회가 워낙 좁아 말투가 티 나지 않게 하려고 번역기처럼 답했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 기사: '비의사·중국동포' 논란에 본인 직접 등판한 '일하는 전공의')

8월 30일 한때 폐쇄됐던 '일하는 전공의' 페이스북 계정도 2일 현재 다시 운영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연합뉴스> 기사 링크를 걸면서 "익명을 쓰지 않아도 소수의 목소리가 허용되는 건강한 소통 문화가 의료계 내부에 자리 잡길 바란다 #의료계 #조직문화 #소통"이라는 글을 올렸다.

 
'일하는 전공의' 쪽에서 연합뉴스에 공개한 한 누리꾼과의 메신저 대화 내용. 첫 질문에 대한 답이 맞았다며 "전공의쌤(선생님)이 정말 맞으신가보네요"라고 답했지만 이후 전공을 묻는 등 '신상털이식' 질문을 이어 갔다. 의사협회는 이 대목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일하는 전공의" 쪽에서 연합뉴스에 공개한 한 누리꾼과의 메신저 대화 내용. 첫 질문에 대한 답이 맞았다며 "전공의쌤(선생님)이 정말 맞으신가보네요"라고 답했지만 이후 전공을 묻는 등 "신상털이식" 질문을 이어 갔다. 의사협회는 이 대목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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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의협 회원들과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가운데 의협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도 일부 공개했다. 여기서는 "응급실에 환자가 방문했을 경우, 간호사 선생님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씀하실 수 있으실까요?"라는 질문에, A씨가 "Triage(환자를 중증도에 따라 분류하는 것. 기자 주)"라고 영어로 답하자, 해당 회원이 "맞습니다. 전공의쌤(선생님)이 정말 맞으신가보네요"라고 답한 대목도 있다. 하지만 이 회원은 그 뒤에도 전공과목을 묻는 등 A씨의 '신상털이'를 계속 시도했다.

또 이 계정에는 8월 23일 이후 모두 3편의 호소문이 올라왔지만, 한국인이 아니라거나 전공의가 아닌 사람이 썼다고 볼 만한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의협 "합리적 의심" vs. 참여연대 "비판적인 의사들 위협하는 행동"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2일 오전 서울대병원 병원 본관 입구에서 의협의 진료거부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2일 오전 서울대병원 병원 본관 입구에서 의협의 진료거부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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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은 여전히 이 계정 운영자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2일 오전 <오마이뉴스> 전화 통화에서 "기자가 의사 면허증을 확인했다고 하지만 그게 진짜라는 보장은 없다"면서 "2~3명이 함께 활동한다고 하니 그중에 실제 의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회원들과 나눈 SNS 메시지 내용은 의사라면 의구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신분 노출 위험 때문에 의사들이 파업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지적에, 김 대변인은 "전공의도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고 단체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조사하거나 불이익을 주진 않는다"면서도 "언론에서 의사인데도 파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목하고 보도했는데 회원들이 글쓴이하고 대화를 시도했더니 (의사로 보기 어려운) 이상한 답변을 했다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의사협회 진료거부 철회 촉구' 1인 시위를 시작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이조은 간사는 "의사 단체에서 (진료 거부에) 비판적인 의사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게 위협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문제의식을 가진 의사가 목소리를 못 내면서 의협과 전공의단체가 의료계를 과잉 대표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들이 시민 비판을 무시하고 진료 거부를 강행하면서 의료계 전체가 시민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그:#의사파업, #집단휴진, #전공의, #의사협회,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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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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