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성의 주인 전북 현대는 8월의 마지막 게임을 꼭 이기고 싶었다. 1위 울산 현대를 잡기 위해서도 승점 3점이 필요했지만 정확하게 3개월 전 강릉에서 당한 0-1 패배의 아픔을 씻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러나 축구는 그들의 마음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전북도 갈 길이 바쁜 팀이지만 강원 FC도 다시 상위권을 넘봐야 하기 때문에 양보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거기서 후반전 교체 선수 김지현이 아름다운 축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김병수 감독이 이끌고 있는 강원 FC가 30일 오후 7시 전주성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원 18라운드 전북 현대와의 어웨이 게임에서 슈퍼 서브 김지현의 놀라운 극장 골로 2-1로 이겨 순위를 8위에서 6위까지 끌어올렸다. 다시 살아난 강원 FC 덕분에 광주 FC, FC 서울, 부산 아이파크 등과 벌이는 상위 스플릿 커트 라인 싸움이 더 흥미진진하게 열린 셈이다.

매콤한 맛 '강원 고춧가루'

이 게임 전반전 중간에 전북 선수들에게 불편한 소식이 들려왔다. 1시간 30분 먼저 시작한 울산 현대와 FC 서울의 쌍용 더비가 3-0 울산 현대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이 게임 시작 전까지 승점 1점 차로 살얼음판 선두 다툼을 펼치고 있는 전북 현대로서는 승점 3점을 따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의 승리 의지는 전반전부터 뜨겁게 끓어올랐다. 간판 골잡이로 자리잡은 구스타보와 왼쪽 날개 바로우가 강원 FC의 병수볼을 무색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강원 FC 골키퍼 이범수 앞에서 혀를 내둘러야 했다. 누가 봐도 골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이범수의 믿기 힘든 슈퍼 세이브가 빛난 것이다. 

28분, 전북 현대의 날카로운 역습 패스가 빈 공간을 파고든 왼쪽 풀백 이주용 앞으로 뻗어왔고 이 공은 곧바로 골잡이 구스타보에게 정확하게 연결됐다. 구스타보 앞에는 강원 FC 골키퍼 이범수밖에 없었으니 그의 오른발 인사이드 슛은 보나마나 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범수는 각도를 줄이며 앞으로 달려나와 왼 다리로 그 공을 기막히게 막아냈다. 

이범수의 슈퍼 세이브는 2분 뒤에도 빛났다. 전북 현대의 날개 공격수 이성윤이 재치있는 가로채기로 역습 기회를 만들었고 과감한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선취골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강원 FC 골키퍼 이범수는 침착하게 몸을 날려 손끝으로 그 공을 쳐냈다. 고춧가루 색깔의 붉은 유니폼은 강원 FC 필드 플레이어들이 입었지만 정작 우승 다툼을 펼치고 있는 전북 현대 선수들에게 매콤한 강원산 고춧가루를 뿌린 전반전 주인공은 노란 옷을 입고 몸을 날린 골키퍼 이범수였다. 

슈퍼 서브 '김지현' 극장 결승골
 
 30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전북 현대와 강원 FC의 경기. 강원 FC 김지현이 골을 넣고 웃고 있다. 2020.8.30

30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전북 현대와 강원 FC의 경기. 강원 FC 김지현이 골을 넣고 웃고 있다. 2020.8.30 ⓒ 연합뉴스

 
이 전주성 축구 드라마 전반전의 주인공이 강원 FC 골키퍼 이범수였다면 후반전 드라마 주인공은 교체 선수 김지현이었다. 그는 66분에 김병수 감독의 지시를 받고 회오리 감자 슈퍼 골 주인공 '조재완' 대신 들어와 강원 FC를 위한 귀중한 승점 3점을 혼자서 만들어냈다.

75분에 아름다운 첫 골이 전북 현대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친정 팀 전북을 상대로 뛰고 있는 고무열이 왼쪽 측면에서 정석화에게 밀어준 공이 반 박자 빠르게 9분 전 교체로 들어온 김지현에게 정확하게 전달됐다. 여기서 김지현은 간결한 페인팅 동작으로 전북 수비수 둘(이주용, 최보경)을 흔들고는 둘 사이로 비교적 낮은 궤도의 왼발 감아차기를 날렸다. 이 공은 전북 골키퍼 송범근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구석으로 날아가 꽂혔다. 

이로 인해 전주성에는 비상벨이 울렸다. 3개월 전 강릉에서 당한 0-1 패배의 암운이 또 한 번 그들의 머리 위를 덮친 것이었다. 홈 팀 전북 현대를 지휘하고 있는 모라이스 감독은  빠른 날개 공격수 바로우를 빼고 조규성을 들여보내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고 88분에 귀중한 동점골을 뽑아냈다. 골잡이 구스타보의 오른발 슛을 골 라인 바로 앞에서 강원 FC 풀백 이호인이 걷어냈지만 한교원의 2차 슛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게임 시나리오가 이대로 승점 1점씩 나눠서 가지는 결말을 예고한 것이다. 하지만 강원 FC의 막판 집중력은 남달랐다. 추가 시간 3분이 가까워질 무렵 강원 FC 고무열이 끝내 친정 팀을 주저앉힌 것이다. 그의 위력적인 오른발 중거리슛이 전북 골문 구석으로 날아갔다. 이 공을 골키퍼 송범근이 몸을 내던지며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바로 앞에 떨어진 공을 향해 김지현이 달려들어 오른발로 가볍게 밀어넣은 것이다.

이 순간 전북 필드 플레이어들은 팔을 번쩍 치켜들며 김지현의 오프 사이드 반칙을 주장했지만 고무열의 슛이 발끝을 떠나는 순간 김지현은 분명히 온 사이드였다. 이렇게 전북 현대는 지난 5월 30일 강릉에서 열린 어웨이 게임에 이어 강원 FC에게만 시즌 2패(0-1, 1-2)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로써 울산 현대와의 우승 경쟁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 게임 전까지 승점 1점차로 바짝 추격하던 분위기가 승점 4점차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흐름대로 이어진다면 오는 9월 15일 전주성에서 열리는 울산 현대와의 21라운드 홈 게임을 이겨도 우승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하여 이번 시즌 K리그 1 일정이 상 하위 스플릿 팀 당 5게임씩 더 뛰는 파이널 라운드 없이 22라운드에서 끝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왔기에 조급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형편이다.

이 게임 승리로 6위까지 올라온 강원 FC는 일주일 뒤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19라운드에서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 FC를 만나게 되고, 전북 현대는 강원 FC보다 하루 전인 9월 5일 탄천종합운동장으로 찾아가서 시즌 첫 홈 게임 승리를 노리고 있는 성남 FC를 만난다.

2020 K리그 원 18라운드 결과(30일 오후 7시, 전주성)

전북 현대 1-2 강원 FC [득점 : 한교원(88분) / 김지현(75분,도움-정석화), 김지현(90+3분)]

전북 현대 선수들
FW : 구스타보
AMF : 바로우(79분↔조규성), 김보경, 이승기(70분↔쿠니모토), 이성윤(46분↔한교원)
DMF : 손준호
DF : 이주용, 최보경, 김민혁, 이용
GK : 송범근

강원 FC 선수들
FW : 조재완(66분↔김지현), 고무열, 정석화
MF : 김경중, 이재권, 신세계, 신광훈
DF : 김영빈, 임채민, 이호인(90+1분↔이영재)
GK : 이범수

2020 K리그 원 18라운드 순위표
1 울산 현대 45점 14승 3무 1패 41득점 11실점 +30
2 전북 현대 41점 13승 2무 3패 31득점 13실점 +18
3 상주 상무 31점 9승 4무 5패 24득점 23실점 +1
4 포항 스틸러스 28점 8승 4무 6패 31득점 23실점 +8
5 대구 FC 26점 7승 5무 6패 30득점 25실점 +5
6 강원 FC 21점 5승 6무 7패 22득점 27실점 -5
7 광주 FC 20점 5승 5무 8패 22득점 27실점 -5
8 FC 서울 20점 6승 2무 10패 16득점 34실점 -18
9 부산 아이파크 19점 4승 7무 7패 19득점 26실점 -7
10 성남 FC 18점 4승 6무 8패 15득점 21실점 -6
11 수원 블루윙즈 17점 4승 5무 9패 17득점 22실점 -5
12 인천 유나이티드 FC 11점 2승 5무 11패 11득점 27실점 -16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김지현 강원 FC 전북 현대 K리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