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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가 지난 28일 건강 악화를 이유로 돌연 사퇴를 선언하자, 후임 총리 인선을 둘러싸고 일본 정가가 들썩이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등 3인을 차례로 알아본다.[편집자말]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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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하기 하루 전인 지난 27일 발매된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 9월 3일호에 주목되는 기사가 실렸다. 아베 총리의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했고, 심지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대로라면, 그 동안의 건강이상설이 모두 사실이었고, 그럼 며칠 전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갈아치웠던 아베 총리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연결된다.

일개 주간지의 보도라고 치부할 지도 모르지만, <주간문춘>은 부수 수백만부를 찍는 일본의 유수한 일간지들을 제껴놓고 매호 굵직한 특종을 쏟아내고 있는 유력매체다. 최근 아베 정권을 괴롭히고 있는 전 법무상 부부의 지방의원들 매수사건, 검사장 내기마작 사건 등도 이 매체의 특종이다. 결국 이 기사는 사실로 드러났다. 다음날 아베는 사임을 발표했다.

그런데, 아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이전부터 줄곧 의혹이 돼왔던 것이지만, 좀 의외의 것은 후임 총리로 스가 관방장관이 유력하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차기 총리로는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과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가장 유력하게 꼽히고 고노 다로 방위상이나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정도가 입에 올랐으나, 스가 장관이 제1후보로 거론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쨌거나 차기 총리 향배를 놓고 치열한 암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스가 장관은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부상해 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스가 장관은 지난 29일 새 총리 선출 과정을 총괄하는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만나 출마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비상상황... 스가 관방장관이 부상한 이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 후보로 급부상한 것은 아베 총리가 갑자기 물러난 것과 관계가 있다. 아베 총리가 예정대로 내년 9월 임기를 마치고 그만 뒀다면, 역시 '예정대로' 기시다-이시바의 양자 구도가 지속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총리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둔 비상상황이 되자 지난 2012년 아베가 총리에 취임하면서부터 줄곧 아베 총리와 손발을 맞춰온 스가 장관이 떠오른 것이다.

아베 정권이 그간 해왔던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꿰고있고, 코로나19 대응이나 도쿄올림픽 내년 개최 등 당면한 가장 큰 현안들을 무리없이 대응해가는 데 그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후보 선출방식도 스가 장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30일 NHK 보도에 따르면, 후보 선출 방식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29일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과 만나 '당원투표 없이 국회의원과 지방연맹 대표들만 투표'하는 방식으로 새 총리를 선출하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이 방식이 스가 장관이나 기시다 정조회장에게 유리한 이유는 당원 투표를 포함시킬 경우 이시바 전 간사장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현재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20% 전후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기 때문에 의원들이 아닌 당원투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대중적인 인기가 없는 기시다 정조회장은 5% 정도에 그치고 있고, 스가 장관은 여론조사 대상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원투표 없이 선거가 치러진다면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나 아소 다로 부총리의 아소파 등 당내 주요 파벌 의원들의 지지가 기시다와 스가 가운데 누구로 향하느냐가 결과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25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8.26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 25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8.2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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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의원 아닌 자수성가형... 고압적 언론관, '손타쿠' 초래 등은 약점

스가 장관은 부친의 지역구를 이어받아 손쉽게 정계에 진출한 보통의 일본 고위 정치인들과 달리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단신 상경한뒤 스스로의 힘으로 의원 비서관, 지방의원을 거쳐 중앙 정계로 진출한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그러나 스가 장관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관저에서 하루 두 번 열리는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집요한 질의를 무표정하게 받아넘기는 모습이다. 그래서 '웃지않는 대변인'이란 별명도 얻었다. 관방장관은 내각 사무를 총괄하는 자리이지만 또 한가지, 정부 대변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끈질긴 질문을 못이기고 도쿄신문에 "추측에 근거한 부적절한 질문을 반복한다"며 그 기자를 기자회견에 보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또 기자에게 직접 "당신에게 답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이같은 고압적인 태도는 오히려 모치즈키 기자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신문기자>란 영화를 낳게 했고,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인공으로 나온 이 영화는 작년 일본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와 같이 7년 넘게 관방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그는 NHK개혁, 통신비 인하 등과 같은 굵직한 업적을 남긴 반면, 일본 관료사회를 퇴행시키는 악습을 낳았다. 나쁜 말로 '알아서 긴다'라는 뜻인 '손타쿠'가 바로 그것이다. 내각인사국을 만들어 인사를 장악한뒤 관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일본 사회는 관료가 이끌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능했던 관료들을 인사로 손발을 묶어 정권에 봉사케 하고, 결국은 문서나 자료를 날조해서 정치인들의 비위를 맞추는데까지 이른다. 이것이 결국 오늘날 일본사회의 정체를 불렀다는 비판도 나온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사진은 아베 총리에게 인사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왼쪽).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사진은 아베 총리에게 인사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왼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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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강경한 자세... 변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일관계 또는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이다. 지금까지의 그의 발언을 보면 적어도 그가 총리가 된다고 해서 지금과 크게 다라질 것 같지는 않다.

지난달 강원도 평창의 한 식물원에 아베 비슷한 남성이 위안부상에 무릎꿇고 절하는 조형물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스가 장관은 이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제 의례상 허용되지 않는다"며 "사실이라면 양국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발끈했다. 그러나 '국제의례'는 차치하더라도 사실 확인도 하기 전에 민간시설에 설치된 조형물 때문에 양국관계가 "결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발언은 매우 경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13년에는 한-중 양국이 안중근 의사 표지석 설치에 대해 논의하는데 대해 "안중근은 범죄자"라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스가 장관은 오랜 기간 아베 총리와 한 길을 걸어왔다. 설사 총리가 된다 하더라도 1년 임기 동안 아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와 다른 길을 가긴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귀화 한국인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30일 KBS-TV 인터뷰에서 "스가 장관은 아베와 한 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원래 친한, 친중파"라며 "(그가 총리가 되면) 한국과 관계 개선에 기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태그:#스가 요시히데, #스가, #스가관방장관, #일본 총리,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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