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지난해 가을에 인터뷰 했던 문방구 할머니를 다시 찾아뵀다. 서울 후암동에서 40년 전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문방구를 운영하던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온기가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문방구를 홀로 지켜오시다 결국 폐업을 결정하셨단다.
 
혼자 문방구를 꾸려나가시는게 힘드시긴 했지만 문방구를 이용하는 아이들 생각에 그래도 3년은 더 문을 열 생각이었다던 할머니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결국 문을 닫으시는 모양이었다. 내 평생 한 번 본 적도 없는 문방구인데, 신기하게도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어린 내가 들락거리던 나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앞 문방구가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연필, 공책, 문제집은 물론이고, 학교 수업에 필요한 과학상자, 수수깡, 크레파스를 비롯한 모든 준비물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학교 앞 문방구였다. 색칠공부나 고무줄처럼 우리들의 취미와 건강까지도 책임지던 갖가지 물품들뿐만 아니라 도대체 1등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늘 궁금했던 뽑기와 알록달록 예쁜 색을 띤 온갖 불량식품들, 어디서 누군가에 의해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던 유행을 따라 만들어진 조악한 장난감들이 즐비했던, 문방구는 우리에게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문방구에 들어갈 때만해도 공책도 사고, 지우개도 살 계획이었지만 문방구를 한 바퀴 돌다보면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새로 나온 장난감에, 휘황찬란한 색색의 사탕과 온갖 먹을거리에 마음을 뺏겨 결국에는 무언가라도 하나 손에 들고 나오고야 마는 마력의 공간, 어린 눈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던 그곳, 내일은 친구들하고 문방구 가서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야지 생각만 해도 설레던 그곳은 참새 같던 우리들의 방앗간이었다.
 
<유퀴즈>에 나온 할머니께서 운영하시는 문방구는 어릴 적 우리가 다니던 그 문방구 모습 그대로였다. '삼광문구' 간판에 무려 2글자가 떨어져나가 지난날의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간판조차 정겨운 그곳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한 4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얼마 전,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해야 할 소임을 충분히 다 하시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아이들을 말처럼 지구에서의 소임을 끝내시고 돌아가신 후 할머니 혼자 문방구를 지켜오고 계셨다.
 
할아버지와의 인생이, 졸업을 하고 오랜 전 떠난 그 시절 아이들과의 추억이, 등하굣길 아이들과 나누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아마 할머니를 그곳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버린 과거였지만 할머니에게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오늘이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팬시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요즘 상점이 갖는 세련됨은 없지만,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만이 갖는 멋과 운치를 가득 품은 그곳이 이제는 폐업으로 없어진다고 하니 왠지 나도 서운해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찾은 학교에서 내가 다니던 문방구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됐던 그날의 기분이 이랬을까. 어린 나를 오롯이 떠올리게 만드는 그 시절 우리들의 공간이 하나 둘 사라진다는 건, 우리의 추억마저 하나하나 지워지는 것만 같아 서글픈 마음마저 든다.
 
나도 아쉬운데 할머니의 마음을 어떠실까.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의 눈물에서 허전하고 헛헛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스치듯 짧은 인연이었지만 잊지 않고 다시 찾아 할머니를 위로해준 유재석과 조세호가 그래서 더 고마웠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우리의 보물창고가 또 하나 사라졌다. 그곳을 지키던 젊은 아주머니는 이제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어 당신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그곳을 이제 떠나보내지만 너무 슬퍼하시지는 마셨으면 좋겠다. <유퀴즈> 보고 유년시절 나의 문방구를 꺼내보았던 것처럼, 어느 날 또 이런 방송을 보고, 어느 누군가의 가슴 한편에 숨어있던 할머니와의 추억을 반짝하고 꺼내볼 누군가가 있을 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아마 평생 뵐 일은 없겠지만, 내 어린 시절 나에게 같은 추억을 만들어주셨던 나의 문방구 할머니, 할아버지께 하지 못했던 말을 삼광문구 할머니께 대신 해드리고 싶다. 누군가의 추억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말이다. 내 어린 시절 문방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지는 날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퀴즈 문방구 유재석 조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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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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