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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가톨릭 미사의 형식주의와 성직자 중심주의에 염증을 느낀 대중의 지지로 세력을 키웠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을 보면 그 상황이 역전됐다. 

가톨릭교회는 대면 미사를 중단하고 온라인 미사로 대체했다. 그러나 많은 개신교 교회는 교회라는 특정 건물 안에서 드리는 대면 예배라는 형식이야말로 신앙의 핵심이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통령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되풀이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한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담임목사 전광훈).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한 서울 성북구 장위동 사랑제일교회(담임목사 전광훈).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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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외의 나라에 있는 개신교 교회들의 주장을 비교해 보니 한국처럼 교회 건물 안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마스크를 쓰지 않고 큰소리로 기도와 노래를 하고 목사가 큰 소리로 설교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미국의 일부 극우 개신교 교회가 한국의 개신교 교회와 유사한 언행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대체 한국 개신교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가톨릭교회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소속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세 가지 Sola가 있다. 바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총'(Sola gratia)이다. 

곧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가톨릭교회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 말씀만 있으면 되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만 필요하고,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루터교만이 아니라 모든 개신교에 아직도 유효한 원칙이다.

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성경에서 바울 사도는 분명히 모든 권력에 협조하라는 메시지를 신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자신도 권력에 맞서라는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바울과 예수는 오직 자기 말을 듣는 이들의 회개만을 요구하고 있다. 남에게 손가락질하라는 말도 없다. 모든 것은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음으로 믿음이다. 개신교에서는 선행보다는 믿음 자체로 인간의 구원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믿는지 안 믿는지 어찌 아는가? 물론 죽어서 천당 가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죽어서 천당 가본 사람이 다시 살아온 경우는 없느니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다시 성경 구절을 찾아볼밖에. 

그래서 보니 성경에 정확히 나와 있다. 믿음으로 맺는 성령의 열매가 나와 있는 것이다. 개신교 목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개역 성경 버전으로 인용해본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라디아서 5:22-26)

그렇다면 참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이 9가지의 덕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믿음이 없다면 그 반대인 육의 열매를 맺는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16-21) 

이상 15가지가 믿음이 없고 세상 것에 욕심내며 집착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특히 분쟁과 분노와 패거리 짓기와 분열이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 사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다. 지금 개신교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성령의 열매인가? 아니면 육의 열매인가?

'종교의 자유'란 무엇인가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왼쪽)가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한국 개신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왼쪽)가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한국 개신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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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총 회장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종교단체를 사업장 취급하지 말라고 주장하였다. 종교 단체가 사업장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교회가 어떤 열매를 맺는지 보면 된다. 바울이 말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지 아니면 육의 15가지 열매를 맺는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교총 회장이 비교당하기 싫다는 사업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 사업장 가운데 육의 열매와 관련되는 술취함과 방탕함을 조장하는 술집조차 코로나 방역에 협조하여 문을 닫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개신교 교회는 대면 예배로 확진자가 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엄연한 현실을 보고도 육의 열매를 맺는 사업장만도 못 한 사업장이 되기로 작정한 것인가? 그러면서 어찌 종교의 자유 운운하는가?

말이 나왔으니 '종교의 자유'도 다루어 보자. 종교의 자유는 언제부터 누구를 위해 마련된 것인가?

엄밀히 말해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의 자유는 기독교 고유의 것이 아니다. 국제연합과 같은 기구들이 제시한 종교의 자유는 근대 이후의 개념인 인권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의 자유란 기독교의 신을 믿을 자유만이 아니라 유신론, 무신론, 비신론의 믿음을 가질 자유도 의미한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유럽의 역사에서 종교의 자유는 반기독교적이기도 하다. 380년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테살로니카 칙령으로 기독교가 유일무이한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되고 나서 1600년 가까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신자들의 종교의 자유를 철저히 탄압해 왔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수많은 백성의 피를 흘리고 나서 교회가 아니라 유럽의 군주들이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세속적 이익을 위하여 종교적 타협을 하며 이른바 개신교의 신앙 활동을 인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 대한 철저한 탄압 정책을 지속해 왔다. 아프리카와 신대륙 개척 과정에서 기독교는 '이교도'들을 철저히 탄압하여 종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살육을 자행하였다. 이교도들도 '종교'가 있으며 그들도 엄연히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이 붕괴하고 프랑스혁명으로 구체제가 무너지고 나서도 기독교의 다른 종교에 대한 탄압은 지속됐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정교분리가 법제화되고 인권 개념이 등장하면서 기독교의 종교의 자유를 무시하는 행위가 제도적으로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의 자유는 반기독교적인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개신교가 종교의 자유를 외친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아니면 역사에 대한 무지인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끝으로 '오직 은총'이 남았다.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인간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느님/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가톨릭은 인간의 선행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구원 사업에 협조하는 것을 강조하는 데 비하여 개신교는 인간의 선행은 구원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가톨릭과 루터교는 1999년 10월 31일 이른바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교회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성명서"에 공동 서명하여 16세기 이후 논쟁이 되었던 의화론/칭의론에 관한 그러한 신학적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어서 2006년 7월 23일 한국의 서울에서 "세계감리교협의회와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이 공식적으로 비준되었다. 이로써 의화/칭의의 근본적 조건이 하나님/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게 된 것이다. 사실 기독교 교리에서 하느님/하나님의 은총은 인간 구원의 시작과 끝이다. 그러나 누가 구원을 받는지 미리 알고 싶지 않은가? 죽기 전에 말이다.

그에 대한 답을 이미 예수가 성경에서 주고 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오 25:31-46)


매우 긴 인용이지만 한 마디로 힘든 이웃을 위하여 그것도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자들이 의인이고 은총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 선행은 신학적으로 천국행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천국에 들어갈 만한 사람이기에 지상에서 선행을 하는 것이다. 선행을 했기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하느님/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다. 여기 지금의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코로나 사태로 질병의 위험에 노출된 노약자들,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계에 위협을 받는 이들 아닌가? 그러나 그런 이들에 대한 관심은커녕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오로지 교회 건물 안에서 얼굴 마주 보고 예배드리는 것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과연 의인인가? 현재 한국의 개신교, 특히 개신교를 대표하는 목사들에게 그들이 신성시하는 성경 말씀을 들어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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