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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미청산은 한국 사회의 기저질환입니다. 친일을 비호하면서 자신을 보수라고 말하는 것은 매국노 이완용을 보수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는 보수와 진보가 아니고, 민족과 반민족입니다."

지난 광복절 경축식 당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 중 일부다. 이날 김원웅 회장은 작정한 듯 발언을 이어나갔다.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산으로 인한 친일 청산의 좌절, 대한민국 국군 창군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들의 친일부역행위를 낱낱이 까발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립현충원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잠든 현실을 고발하며 "대한민국을 광복하라"는 피 맺힌 성토로 기념사를 갈무리했다.

광복회장의 작심 발언은 곧바로 우리 사회에 후폭풍을 몰고 왔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과 미래통합당은 김원웅 회장의 과거까지 들춰내며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 우익'이라는 세력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생각해본다면, 이런 반응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의 주도로 현충원 내 친일파의 이장 혹은 친일 표지석 건립을 위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에 따라 친일 청산이라는 화두가 한동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현충원에 잠든 친일파들을 추적하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이러한 논란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필 책이 출간됐다. 바로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아래 <현충원 한 바퀴>)이다. 이 책은 서울·대전 두 현충원에 잠든 친일파들의 흔적을 추적한 가이드북이다.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표지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표지
ⓒ 이케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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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한 바퀴>의 저자는 자칭타칭 '친일 전문 추적 기자'인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다. 나는 출판사에 근무하던 시절 <임정로드 4000km>, <약산로드 7000km>라는 두 권의 책을 함께 만들며 그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임정·약산로드 시리즈가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으로 대표되는 항일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라면, 이번 <현충원 한 바퀴>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규정된 '국가공인 친일파'로 대표되는 친일의 역사를 추적한 책, '친일로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임정로드 4000km> 출간 당시 이벤트로 기획했던 '현충원 투어'가 시작이었다. 당시 기획을 담당하고 있던 나는 저자와 함께 하는 현충원 투어를 제안한 바 있다.

애초의 계획은 현충원에 잠든 임시정부 요인들을 비롯한 독립선열들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까지였다. 그러나 저자는 현충원 투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곳에 잠든 친일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싶다며 역제안을 해왔다. 이에 출판사 내부에서는 "아이들도 올 텐데 너무 부정적인 역사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투어는 성공적이었다. 아이 손 잡고 투어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기괴한 명당'에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깊이 공감했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이 책 <현충원 한 바퀴>의 집필을 결심했던 것 같다.  

마지막 간도특설대원 '백선엽'

<현충원 한 바퀴>는 표지부터 도발적이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7월 10일, 향년 100세로 세상을 떠난 예비역 육군대장 백선엽(1920~2020)의 사진이 최상단에 '국가공인 친일파'라는 일곱 글자와 함께 박혀 있다. 그는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대장이기 전에 만주국 장교이자 간도특설대원이었다. 이렇듯 이 책은 천수를 누리고 떠난 국가공인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단죄로 포문을 연다.

백선엽 사망 직후 그의 '장지' 문제는 한동안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다.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대에 부딪혔지만, 결국 그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이 과연 온당한가 우리에게 묻는다.
 
"백선엽은 적국인 일본을 위해 자발적으로 충성하고 목숨 바친 국가공인 친일파다. 무엇보다 백선엽이 적국의 장교로 활동하기 수년 전인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2020년 적국을 위해 총칼을 들었던 백선엽을 우리는 현충원에 안장한 것이다." - 324쪽

책은 백선엽 외에도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 등 국가공인 친일파 11명의 삶을 소개한다. 그리고 '친일파 아래 잠든 현충원의 지사들'이라는 소제목 아래 그들 곁에 나란히 잠든 신규식, 지청천, 조명하, 김상옥 등 독립선열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친일파 아래'라는 단어에서 분노를 넘어 슬픔이 느껴진다.

오죽하면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냈던 조경한 선생이 "내가 죽거든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가 아니라 동지들이 묻혀 있는 효창공원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친일파 신태영, 이응준 등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내려다 본 독립운동가 묘역. 친일파 아래 독립운동가들이 잠든 기괴한 형국이다.
 친일파 신태영, 이응준 등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내려다 본 독립운동가 묘역. 친일파 아래 독립운동가들이 잠든 기괴한 형국이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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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안장이 꿈이었던 '신태영'

광복회장이 기념사에서 언급하기도 했던 문제의 인물, 신태영(1891~1959) 역시 빠질 수 없다. 신태영은 1914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래, 30년 동안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던 '뼛속까지 황군'이었다.

1943년 11월 17일 <경성일보>에 발표한 수기에서 그는 "조선인들은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다"라고 천명했다. 일본 천황을 위해 기꺼이 죽으라며 동포 청년들을 전선으로 등 떠민 장본인이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으로 군복을 바꿔입은 그는 승승장구했다. 1952년 마침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국방부 장관에까지 올랐다. 그는 현재 '호국의 간성', '시대의 등불'이라는 민망할 정도의 미사여구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 장군제2묘역에 잠들어 있다. 저자는 묻는다. "야스쿠니 신사 안장이 꿈인 당신이 왜 현충원에 잠들었나요?"
 
 일본군 출신으로 훗날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된 신태영의 묘. 국립서울현충원 장군제2묘역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군 출신으로 훗날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된 신태영의 묘. 국립서울현충원 장군제2묘역에 위치하고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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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중 명당에 자리잡은 '박정희'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이라는 현충원 내에서도 가장 양지바른 곳. 바로 그곳에 5·6·7·8·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1917~1979)가 잠들어 있다. 그러나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의 친일 행위를 입증할 수 없다"며 명단에서 제외했다.

박정희가 만주국 장교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문제는 국가공인 친일파가 되기 위한 요건 중 하나인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입증할 자료가 부족했다. 무리하게 상정했을 경우 오히려 부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진상규명위는 훗날을 기약하며 부득이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배경 속에 박정희는 국가공인 친일파라는 낙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저자는 박정희를 '비공인 친일파'로 규정하며 현충원에 잠든 '다카키 마사오'의 흔적을 추적한다. 역시 국가가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친일 행위가 드러난 정일권, 안익태, 김창룡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친일 추적 전문 기자다운 날카로움이 빛나는 부분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들을 이렇게 두어도 좋은가'라는 물음이다. 그러나 현충원 파묘 문제는 '친일 청산'이라는 민족적 과제와 보수 진영이 내세우는 '공과론'이 충돌하는 매우 첨예한 문제다. 공과론자들은 이른바 '공칠과삼(功七過三: 공적과 과오가 7:3이라는 뜻)'을 말하며 그들에 대한 면죄부를 주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였던 반 고흐는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현충원 한 바퀴>가 우리가 가져야 할 분명한 의지는 무엇인가 명징한 이정표를 세워줄 것으로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김종훈 저, 이케이북, 2020.8.25.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 친일파 김백일부터 광복군까지

김종훈 (지은이), 이케이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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