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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댓글로, 메일로, 심지어 근무처의 전화로 적잖이 욕을 먹었다. 거문도 여행에서 만난 공중보건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느닷없는 봉변을 당한 셈이다. 그런데도 농어촌의 오지에도 병원과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과 이 와중에 의사 파업은 명분이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관련 기사 : '의사 총파업'에 거문도 '공보의' 떠올린 까닭)

현직 의사나 의대생으로 보이는 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당장 교사인 너부터 가족을 데리고 거문도로 이사해 근무해보라는 것. 민주주의 국가에서 생활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 가서 일하라고 누가 강요할 수 있느냐며 발끈했다.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나 군사 독재 시대에나 가능한 폭력적인 발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며, 논어의 구절을 빌려 점잖게 타이르듯 나무라기도 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라는 뜻이다.

조롱이 난무한 대부분의 댓글은 그냥 읽고 그런가보다 지나쳤다. 다만, 쿠바의 의사 양성 과정의 이면과 의보수가 문제, 공공의료의 한계 등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기사 내용을 반박한 한 분에게는 반론을 제기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그의 답장은 받지 못했다.

거창하게 반론이랄 것도 없다. 외마디 반문을 던졌을 뿐이다. 사람들이 농어촌에서의 삶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열악한 의료와 교육 환경을 꼽는데, 의사의 입으로 농어촌엔 의사가 없으니 그곳에서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건 황당하지 않으냐고 되물은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의 와중에도 파업을 강행하는 현실에서 과한 욕심인 줄 알지만, 농어촌의 열악한 생활 여건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앞장서 밀알이 되겠다는 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그런 의사가 왜 없을까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

정부가 당사자인 의사들과 협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의료 정책을 추진한 점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책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 단지 절차상 하자가 문제라면,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공개 토론하면 된다. 어디까지나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내 글이 그렇게 잘못됐나 싶어, 정부의 공공 의료 정책을 '4대 악'으로 규정한 그들의 주장을 시험공부 하듯 읽어봤다. 인터넷을 뒤지다시피 해서 살펴본 그들의 입장과 근거는 하나같이 납득하기 힘든 것투성이였다. 댓글과 메일 내용과 비교하면 모순된 주장도 적지 않다.

대도시가 아닌 농어촌에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직업 선택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초헌법적 발상이기 때문이라는 글도 봤다. 헌법에는 국민이 누려야 할 건강권 조항도 명시되어 있다.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교묘히 왜곡하는 셈이다.

농어촌 의료는 공중보건의 제도만으로 족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인구, 곧 환자 수가 격감하는 현실에서 구태여 비효율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의료 서비스를 오로지 효율성으로만 접근하면, 도시와 농어촌 주민들과의 차별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만다.

그들에게 농어촌 주민은 '2등 국민'인가. 농어촌 주민은 의대생에게, 도시민들은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라는 뜻일까. 의사에게 사회지도층으로서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는 건 지나친 걸까. 인구 100만이 넘는 광역시의 주민들조차 꾸역꾸역 서울의 병원을 찾는 현실은, 그들 주장의 근거가 아니라, 그들이 초래한 결과다.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면, 농어촌이 텅 비어가는 현실을 막을 수 없다.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임을 고려할 때, 지역 의사 양성을 위한 정부의 공공 의료 정책은 차선의 대안일 수 있다. 적어도,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농어촌의 붕괴는 막아야

그들은 줄곧 의사의 숫자가 부족한 게 아니라, '바이탈과' 전공자가 줄고 지역적 분포가 불균형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바이탈과'란 생명에 필수적인 전공으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을 통칭하는 용어다. 결국, '바이탈과'를 전공하고 지역에 자발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뜻이다.

의대에 진학한 제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미래의 의사인 의대생들이 '바이탈과'는 대부분 기피하고 안과, 치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을 선호한다고 한다. '바이탈과'는 의료사고의 위험이 큰 데다 의료 수가가 낮다는 이유에서다. 의사도 사람인데, 돈 벌기 쉬운 곳으로 몰리는 건 인지상정 아니냐는 거다.

그렇다면, 국가 예산이 화수분이 아닐진대 '상박하후(上薄下厚)'가 정공법이다. 위는 박하고 아래는 후하게, 곧, 쉽게 돈 버는 곳의 수익을 줄이고 그것을 재원으로 하여 모두가 기피하는 곳에 지원하도록 정책을 손보는 게 순리다. 의료계가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이번 사달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거칠게 말해서, 국가가 책임지고 열악한 곳에서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겠다는데 의료계가 집단 파업을 통해 몽니를 부리는 꼴이다. 위는 건드리지 말고, 아래를 더 후하게 하는 것만이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물며, 의료의 질 악화 따위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과문한 탓인지,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변호사 수가 크게 늘었지만, 법률 서비스의 질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주위에서 변호사를 쉽게 만날 수 있고, 그만큼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그저 의사와 변호사는 경우가 다르다고 눙칠 것인가.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댓글과 메일의 조롱 섞인 질문에 답한다. 현직 교사로서 지금 광역시에 살고 있지만, 기꺼이 거문도에 가서 근무할 의향이 있다. 평생 근무지를 옮길 수 없다면 모를까, 일정 기간 순환 근무하는 조건이라면 주저하기는커녕 오히려 바라는 바다.

농어촌 인구가 급감하고 수도권 과밀화가 심각하다는 점을 안다면, 적어도 의사와 교사 등 공공성이 요구되는 직업의 솔선수범은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병원과 학교가 사라진 공동체는 이내 해체되고 말 것이다. 이상을 넘어 망상이라고 비난해도 좋지만, 고통 분담이든 뭐든 농어촌의 붕괴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파업 대신 토론을

고통 분담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덧붙인다. 듣자니까, 한 국회의원이 공무원의 급여를 삭감해서 2차 재난지원금의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고 한다. 앞으로 정책의 정교한 설계와 합의가 필요할 테지만, 개인적으로 120% 동의한다.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이 일상이 된 이 와중에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게 솔직히 면구스러웠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아서다. 올해 배정된 맞춤형 복지비를 모두 지역 상품권 구매에 쓰는 것만으로는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그들 앞에서 '코로나 블루' 운운하는 건 사치다. 교사로서 난생처음 원격수업 준비가 만만찮은 일이긴 해도, 어찌 그들이 직면한 고통에 비할까. 아파트 단지를 돌며 청과물을 파는 트럭의 확성기 소리가 소음이라기보다 절박한 호소처럼 들리는 이유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코로나 확산을 막는 사실상 유일한 대책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될수록 경제적 약자들의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균형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시일반'의 정신이다.

한쪽에서는 '공무원이 봉이냐'고 발끈하는 모양이다. 설마 애꿎은 공무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려는 것이겠는가. 다만, 우리 사회를 향해 고통 분담을 요구하려면 공무원이 먼저 나서야 하는 건 맞다. 공무원은, 말 그대로, 공동체를 위해 공적인 일을 하는 직분 아닌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갈등을 부추기지만, 공무원 중에 '십시일반'에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주위의 동료 교사들도 재난지원금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갈 수만 있다면, 급여의 20% 정도의 삭감 정도는 흔쾌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와중에도 기어이 파업을 강행하려는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묻는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기꺼이 '십시일반'을 실천할 의향은 없는가.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놓고, 파업 대신 토론을 벌이는 것이 시금석이 될 것이다.

태그:#의사 총파업, #공무원 급여 삭감, #2차 재난지원금, #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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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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