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2 11:14최종 업데이트 20.08.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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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멕시코 소노라 주와 미국 애리조나 주 사이에 발견된 나르코 터널. 발견 당시 미국쪽으로 출구를 내지 못해 완성 단계는 아니었지만, 언론들이 '가장 정교한 터널'로 수사를 붙일 만큼 내부 마감 상태가 완벽했다. 바닥에 포석과 함께 레일이 깔리고 사막지역 특성상 모래 함몰을 우려하여 좌우 벽과 천장도 갱목으로 마감하였다. 전선은 벽과 천장 모서리에 관을 통해 배설하였다. ⓒ 미국 이민세관집행국

 
지난 8월 초, 또 다른 터널이 발견되었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 발견이다.

서로 다른 터널이니만큼 길거나 혹은 짧고, 좁거나 혹은 넓기도 하다. 그리고 터널 안의 송풍 장치나 전기 배선 방식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이지만,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두 나라, 즉 멕시코와 미국을 연결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멕시코에 입구를 두고 미국에 출구를 두는 형태다. 터널을 파는 이들은 멕시코 측의 마약 카르텔이며, 궁극의 목적은 마약 운송이다. 일명, '나르코 터널'이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약 200여 개의 나르코 터널이 발견되었다. 매번 터널이 발견될 때마다 도무지 믿지 못할,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회자된다. 이번에 발견된 터널 역시 예외는 아닐 터. 많은 언론들이 이번 터널에 대해 '지금까지 발견된 터널 중 가장 정교한'이라는 수사를 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가히 그 명성에 걸맞게 바닥에는 흙 한 점 보이지 않게 포석이 깔렸고 그 위로는 훌륭한 수준의 레일이 놓여 있었다. 모든 전기 배선들은 혹 젖을까 염려하였던지, 1.2미터 높이의 터널 천장 모서리를 따라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게다가 무너짐을 예방하기 위해 양 벽면과 천장 역시 촘촘하고 깔끔한 갱목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세번째 나르코 터널

언론에 공개된 사진만 본다면, 프랑스 어느 지역 유명 포도주 저장 창고로 들어가는 터널이라 해도 될 만했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장면이었다.

다만, 현실은 이 터널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르코 터널이라는 점, 언제 공사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다행히 미국 쪽 지상에 아직 출구를 뚫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미국 국경을 넘어선 지점으로부터 450여 미터 지선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 등이다.

터널의 시작점은 멕시코 소노라 주 산루이스(San Luis Rio Colorado)의 한 건물이었다.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국경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지난 8월 초, 미국측 애리조나 주에서 전문가들이 나르코 터널 입구를 탐지하고 있다. 터널은 완성되기 직전의 상태였고, 400미터 길이였으며 폭은 1미터, 높이는 1.2미터였다. 배수로와 송풍 장치가 완비되어 있었고 전기선이 물에 젖지 않도록 벽면과 천장이 이어지는 모서리에 가설되어 있었다. 작은 작업 차량이 운행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나르코 터널 안에는 레일 장착이 필수적인데, 이는 터널을 파는 과정에서 나오는 흙과 암반들을 작업 차량을 동원하여 빼내기 위함이기도 하고 향후 대량으로 마약을 운송하기 위한 필수 작업이다. ⓒ 미국 이민세관집행국

 
그 곳의 어느 건물 안쪽 바닥을 뚫고 공사가 시작되었고, 국경 너머 같은 이름의 쌍둥이 도시 미국 산루이스의 지하로 뻗어 있었다. 물론 그 끝 역시 미국 쪽 어느 건물의 바닥을 뚫고 올라왔을 것이나, 완공되기 전에 미국 관세국경보호청(U.S.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이하 CBP) 소속 국경 수비대에 포착된 것이다. 어느 날 미국 측 국경 부근에서 모래 지반 침하 현상이 우연히 탐지되었고 이를 수상히 여긴 미국 이민세관집행국(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이 조사원들과 중장비를 동원하여 발견한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당연히 체포된 사람이나 압수된 마약은 없었지만, 언론들이 하나 같이 수사를 단 '가장 정교한' 터널답게 모든 것이 완벽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터널이 몇 개이며 그 곳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양의 마약이 멕시코로부터 미국으로 넘어가는지는 사실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불과 다섯 달 전인 지난 3월 말 발견된 터널의 상황을 본다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하다.

지난 3월 31일 멕시코뿐 아니라 세계 언론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또 다른 나르코 터널은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멕시코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이고 접경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터널 안에서 1300파운드의 코카인과 86파운드의 메탐페타민, 17파운드의 헤로인, 그리고 3000파운드의 마리화나가 발견됐다. 더불어 적은 양이지만, 2파운드의 펜타닐도 같이 있었다.
 

2020년 3월 말 멕시코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이고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마약 터널에서 압수된 마약들. 마약의 종류는 마리화나부터, 코카인, 헤로인, 메탐페타민, 펜타닐 등으로 다양했다. 총 3천만 달러 정도의 가치로 환산되었다. ⓒ 미국 연방정부 마약단속국 보도자료

 
값으로 환산한다면, 자그마치 미화 30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화학 아편 종류인 펜타닐의 경우 기존 코카인이나 헤로인에 비해 100배 이상의 중독성과 파괴력을 갖기 때문에 이미 미국 사회 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발견 당시 정황으로 추정해 볼 때, 그간 상당한 양의 마약이 운송되던 터널이었을 것이다.
 

2020년 3월에 발견된 나르코 터널 내부. ⓒ 미 연방정부 마약단속국 보도자료

 
이 터널의 길이는 600미터에 달했고 지하 10미터 아래 만들어져 있었다. 이 터널의 지상은 지난해 9월 더 높고 더 촘촘한 트럼프 장벽이 세워진 구간이기도 하다. 새로 보완된 장벽을 기념하기 위해 완공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왜 미국은 장벽을 더 강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열정적인 연설을 하고 돌아갔지만, 그 시점에 이미 그 곳의 땅 아래로는 이 터널이 만들어져 있었을 것이고 또한 마약이 운송되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1월에도 멕시코 측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이고를 잇는 나르코 터널이 발견되었는데, 이 경우는 '그간 발견된 터널 중 가장 긴 터널'이란 서사와 함께 세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6킬로미터에 달했고 지하 21미터까지 내려간 지점이었다. 기존의 여느 터널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에는 레일이 깔려 있었고, 전 구간 송풍 시설과 충분한 전기 조명까지 갖추고 있었다. 지상에 국경선이 지나는 지점에서는 지하 터널 천정에도 경계선을 표시해 놓아 통과 위치가 멕시코인지 미국인지 알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둔 상황이었다.
 

2020년 1월 멕시코와 미국 국경지역에서 발견된 나르코 터널 내부. ⓒ 미국 관세국경보호청 보도자료

 
국경 수비대가 24시간 삼엄한 감시를 하는 가운데, 어떻게 미국 땅에 터널의 출구를 뚫을 수 있을까 싶겠지만, 대부분의 터널들이 멕시코 쪽 입구뿐 아니라 미국 쪽 출구도 개인 집이나 공장 혹은 창고로 연결된다. 일례로 2018년에는 미국 애리조나 주의 국경 가까운 패스트푸드 KFC 매장 바닥에서 터널 출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물론, 영업을 하지 않는 KFC 매장이었고 그 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주인이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던 중 밝혀진 경우다.

이처럼 빈 공장이나 가게 등을 타깃으로 하여 입구와 출구를 만든다면, 얼마든지 멕시코와 미국을 잇는 터널을 만들 수 있음이 지난 20여 년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었다. 다만 그토록 정교하고 세련된 터널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가에 대한 물음 앞에서는 여전히 정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러한 터널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약 유통의 법칙

마약 가격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붙는다. 생산지 가격이 있고,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의 중간 유통 가격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Street price 혹은 Street value라는 '길거리 가격'이 붙는다. 최종 소매가격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10그램 이상을 구매할 경우와 그 미만을 구매할 경우 상이한 가격이 책정된다.

통상적으로 마약 관련 연구나 조사 기관들에서 공개하는 생산지 가격은 2020년 현재 순수 코카인 1kg 기준으로 미화 200달러에서 400달러 선이다. 보통 1kg의 순수 코카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1톤 이상의 코카 잎이 필요한데, 그 양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지난 8월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미국 이민세관집행국 (U.S. ICE)가 나르코 터널 입구를 찾기 위해 굴착기와 중장비를 동원하여 모래를 파내고 있다. 굴착기 뒷편으로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이 보인다. ⓒ 미국 이민세관집행국

 
코카인의 제조는 여전히 콜롬비아에서 이루어지고 이후 '북쪽'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대략 1000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1kg의 코카인이 콜롬비아로부터 중앙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을 거쳐 멕시코에 도착하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까지 수직 상승한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미국으로 들어가면 그 곳에서의 도매가격이 7만 달러 혹은 8만 달러까지 상승하고, 최종적으로 거래되는 길거리 가격, 즉 최종 소매가격은 15만 달러까지 상승한다.

그러니 콜롬비아 생산지에서 미국의 최종 소비지에 이르기까지 마약은 각 통과 지점에 엄청난 돈을 뿌리는 셈이고, 단순히 멕시코에서 미국에 이르는 과정만 보더라도 최소 열 배 이상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중앙아메리카 국가들 중 일부는 마약이 통과하면서 뿌리는 부가가치가 자국 내 국내 총생산의 1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물론 각 지역에 마약이 뿌리는 돈만큼 피도 같이 뿌려진다.

현재 멕시코에서 1년 동안 발생하는 피살 건수는 4만 건을 넘어서고, 그 중 80% 이상이 마약 카르텔과 연관된다.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중앙아메리카의 치안 부재 역시 마약이 통과하면서 파생되는 결과들이다. 더 많은 부가가치가 만들어질수록, 더 많은 피가 뿌려질 수밖에 없다.

나르코 터널이 발견될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웃나라 멕시코에 불같은 질책을 퍼부어 댔다. 제대로 막지 못한 멕시코 탓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럴 때마다 오직 미국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양국 사이를 가르는 트럼프 장벽뿐임을 거듭해 천명해 왔다. 미국이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 이주자들과 마약의 유입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욱 굳건하게 트럼프 장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터널의 시작은 멕시코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트럼프 대통령의 화가 일견 맞다. 다만, 멕시코의 입장에서는 자국 마약 카르텔이 개입되긴 하지만, 생산지도 아니고 소비지도 아닌, 잠시 거쳐 지나가는 길목일 뿐이라는 억울함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의 소비가 사라진다면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도 힘을 잃을 것이란 입장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싸움으로 보이는 이 복잡 난해한 상황 앞에서 분명한 점은 2000년 이후 미국 내 마약 소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약이 유입되기에 소비가 증가하는 것인지, 소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마약이 계속 유입되는 것인지는 각국의 판단이 다를 것이다. 이 상황에 2000년대 초 미국과의 협공으로 와해되었던 콜롬비아 카르텔도 최근 코카인 생산 증가와 함께 다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로 나르코 터널 더 늘 듯... 미국의 책임은

최근 몇 년 사이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소비되는 마약류는 700톤에 달한다. 보통 그램 단위로 판매되는 마약이 톤으로 계산될 정도라면 그 양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의 소비는 전통적 마약이라 할 수 있는 코카인과 헤로인, 그리고 메탐페타민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독성이 훨씬 강한 펜타닐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미국 내에서 마약 소비로 인한 사망자 수는 자살이나 살인에 의한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다. 물론 이 숫자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 중이다. 2000년에 1만7415명이 마약 소비로 인해 사망한 반면, 2017년에는 7만235명이 같은 이유로 사망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마약 중독 또한 심각하여 2020년 현재 미국 내 26세 이상 인구 중 50% 이상이 어떤 종류의 마약이든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해 본 적이 있고, 헤로인이나 메탐페타민과 같은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를 경험한 사람들도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선다.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 내 마약소비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상황이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자택대피가 길어지면서 2020년 마약 소비는 더욱 증가 추세다. 게다가 최근 마약류 중 독성이 가장 강한 펜타닐 소비가 두드러지고 있어 당국의 긴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가격도 여느 마약보다도 월등히 높은 편이다. 1그램을 기준으로 봤을 때, 코카인의 경우 150달러인 반면 펜타닐은 1600달러를 넘어선다.

신종 마약이라 할 수 있는 펜타닐의 경우 대부분이 중국에서 제조되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통해 유통되는데, 중국에서의 수출 가격이 1kg당 4000달러 정도인 반면 미국에서는 같은 무게 당 가격이 160만 달러까지 상승한다. 이쯤 되면 매년 미국에서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게 흘러들어가는 돈이 1400억 달러에 달한다는 관련 기관들의 연구보고서 결과가 그리 놀랍지 않다.

이렇게 큰 돈이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들어가는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터널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될수록 마약 카르텔들은 터널에 집중할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후 각 국의 국경들이 봉쇄되면서 그들의 마약 유통도 발이 묶이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콜롬비아에서 출발하여 멕시코에 들어오는 마약류들이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운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고,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펜타닐도 운송이 원활치 못한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심각한 상황은 미국이 멕시코와 연결되는 국경을 거의 봉쇄 수준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 사이의 필수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통행은 허용되지만, 대부분의 통행이 여전히 통제된 상황이다. 펜타닐의 경우 워낙 고가 마약이고 소량으로 운반되니 나르코 터널을 이용하기보다는 합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 편에 교묘히 숨겨진 채 운송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국경 봉쇄가 주는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통제가 계속된다면, 더 많은 마약이 마약 터널을 따라 지하로 우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돈 앞에 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멕시코 노갈레스(Nogales) 시에서 국경선 너머 미국 애리조나 주 쌍둥이 도시 노갈레스와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르코 터널. 국경과 가까운 멕시코 측 노갈레스의 공동묘지 무덤에서 터널이 시작되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후 이 도시는 '나르코 터널의 캐피탈(Capital)'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 BBC NEWS 화면캡처

 
트럼프 정부가 들어섬과 동시에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국경은 더 촘촘해지고 더 높아지고 더 두꺼워졌다. 미국의 바람대로 이주자들이 합법적 절차를 갖추지 못한 채 국경을 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수렴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국경을 넘는 일이 어려워질수록, 코요테라 불리며 월경을 안내하던 이주 브로커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이 영역 역시 마약 카르텔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르코 터널이 마약뿐 아니라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하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이주자들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합법적 서류를 갖추지 못한 채 미국행을 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싼 이주 브로커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그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노새'(mula)라 불리는 마약 카르텔의 가장 낮은 조직원이 되는 것 뿐일 것이다. 뱃속 혹은 몸 어딘가에 일정량의 마약을 소지한 채 이동하는 운반책 말이다.

새로운 나르코 터널이 발견될 때마다 미국 정부는 국경 수비를 더욱 강화할 것이고, 더 촘촘하고 더 높은 국경을 세울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미국에서의 마약 소비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터널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 와중에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의 지독한 치안부재와 참담한 수준의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마약뿐 아니라 이주자들도 결국 그 터널을 통과하는 행렬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죽을 것 뻔히 알지만,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물론 미국은 여전히 굳건한 트럼프 장벽을 내세워 어떻게든 유입을 차단하겠지만, 과연 작금의 현실 앞에 미국이 역사적으로 자유롭다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지난 세기 미국이 무리한 개입을 통해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누렸던 정치적-경제적 패권의 이면에 현 상황이 이미 배태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만 파고 들어가도, 그리 오래지 않은 미국의 지난날이 현재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에 만연한 치안 부재, 마약 카르텔, 이주, 하물며 왜곡된 경제까지, 그 어느 것 하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이미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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