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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사랑제일교회 발 코로나19 확산. 저녁 뉴스를 보다가 도저히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정치적 이슈가 생기면 항상 어머니가 먼저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셨지만,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며칠 전 찾아뵈었을 때 어머니가 보여준, 친구 분들이 나눠주었다는 8.15 집회 전단지가 생각나서였다. 어머니 주위의 많은 분들이 집회에 간다고 하셨다.

"어머니, 저예요."
"그래, 잘 지내냐? 식구들 모두 아무 이상 없는 거지?"
"네. 그나저나 아버지 광화문 집회 나가신 거 아니죠?"
"에이. 어디 너희 아버지가 그런 데 나갈 사람이냐. 안 가셨다."


아버지는 아들 말을 듣고 2002년과 2017년에 각각 노무현과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하셨었지만, 한때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를 뽑은 분이기도 하셨다. 아들 눈치에 차마 조선TV는 보지 않으시지만, 채널A를 즐겨 보시고 동아일보를 구독하신다. 또한 경찰이셨기에 주위에 태극기 집회를 나가는 지인이 많으신 편이다.
 
부모님들이 보시는 전단지
 부모님들이 보시는 전단지
ⓒ 우리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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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주위 분들은 뭐라고 하세요? 지금 상황이 저렇게 심각한데."
"그러게. 그런데도 다 거짓말이란다. 문재인 정부가 탄압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고."
"아니, 뉴스를 보면서도 그래요?"
"다 거짓말이래. 유튜브 보면 아니라고."


답답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봄부터 나들이도, 외식도 제대로 못 하시던 분들이 왜 대규모 집회에는 이렇게 용감하게 참여하시는지. 자신만 믿으면 코로나19가 알아서 비켜간다고 했던 전광훈 목사의 말을 진짜로 믿는단 말인가.

"어쨌든 당분간은 태극기 집회 이야기하시던 분들과는 만나지 마세요."
"자기들은 이번에 안 갔다고 하는데?"
"알 수 없어요. 지금 사랑제일교회 사람들 모두 거짓말 한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그분들은 안 갔지만 갔던 사람들과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알았어."


그러나 이것만으로 걱정이 줄어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학교 보안관 퇴직 이후 경찰청에서 아동안전지킴이로 활동 중이셨는데, 그 역할 역시 70대 아버지 또래의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라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같이 일 하시는 분들도 태극기 쪽이 많으시겠죠?"
"아마도 그렇겠지?"
"아버지한테 일하실 때 꼭 마스크 쓰시라고 전하주세요. 진짜 너무 심각해요."
"그래, 알았어. 너도 밖에서 사람 너무 많이 만나지 말고. 빨랑빨랑 집에 들어가라."
"예, 어머니."


전화를 끊고 나니 아내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코로나19가 좀 먼 나라의 일인 줄 알았건만, 내 전화 내용을 듣고 그 심각성을 인식한 것이다. 이제 우리 부모님들의 안위를 확신할 수 없다.

당신의 주위는 안전하십니까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 광화문 집회 나온 전광훈 목사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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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안함은 일상에서도 계속되었다. 8.15 집회 이후 대부분의 회의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으며, 어떤 사람을 만나도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일하는 감독과 스태프들이 집을 방문했다. 반나절 우리 집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함께 점심도 먹는 일정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세 명의 손님들. 촬영을 잠시 멈추고 중국집에 가서 점심을 시켜 먹는데, 문득 궁금했다. 설마 저들 중 사랑제일교회 신자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내를 불러 살며시 물어 보았더니 돌아오는 건 역시나 핀잔이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요즘 같은 시국에 타인의 종교를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아내가 다가오더니 다행인 듯 속삭였다. 손님들이 모두 천주교라는 것이다. 성당에서는 미사를 강제하지 않고, 아직 성당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회의석상에서 가끔 만나는 지인 한 명은 나의 부모님 전화 내용을 듣더니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내용인즉, 자신의 어머니가 이번 8.15 집회에 나갔다 왔는데 검사를 안 받으시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님의 말씀으로는 집회장 가까이 가지 않고 멀찍이서 지켜봤다고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인은 어머니께 더 이상 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하면 의절할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지인을 만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나의 안위는 괜찮은 건지 고민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코로나19에 걸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실. 

문제는 이런 부모님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60대 이상 연령의 정서가 어쨌든 현 정부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바, 연로한 부모님 중 그 누군가가 8.15 집회에 다녀온다 한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쨌든 그들에게 현재는 빼앗긴 세월이며, 보수 언론들은 이를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그 부모님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살아가고 있다.

다시 코로나19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부디 개인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의 안위까지 챙겨 이 시국이 어서 진정되기를 바란다.
 

태그:#태극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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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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