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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을 때 가만히 앉아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매일 보는 아이들이지만 매번 신기하고 감동적이다. 정말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종알종알, 까르르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 그리고 울적한 나의 마음 따위는 가뿐하게 녹여버리는 그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얼굴이란!

아이들이 가진 놀라운 모습들 중 가장 부러운 것은 바로 호기심이다. 매일 먹고 자고 뒹구는 익숙한 집에서조차 아이들은 매일매일 집 안의 모든 것을 궁금해하고 집 안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물건들을 찾아내며 기뻐하며 한참을 요리조리 가지고 논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보이는 아이들의 호기심 역시 대단한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눈을 반짝이며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이요, 몇 층에 사는지, 어디를 가는 중인지, 팔에 난 상처는 어쩌다가 생긴 것인지, 손에 들린 장바구니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아이들의 질문은 좀처럼 끝날 줄 모른다.

그에 비해 나는 무언가를 궁금해해 본 적인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다. 물건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 사람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궁금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전혀 즐겁지 않을뿐더러 귀찮고 피곤하기만 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도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혼자 심각해지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사라진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많아도 여전히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들도 있다. 가까운 예로 나의 시어머니와 남편이 그렇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대화가 끊기는 법이 없다. 모르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단다. 그러고 보면 호기심도 나이가 아니라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호기심을 유지하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한 걸까?

익숙하고도 낯선 365명의 사람들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 인물편>, 데이비드 S. 키더, 노아 D. 오펜하임 지음, 고원 옮김, 위즈덤하우스(2020)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 인물편>, 데이비드 S. 키더, 노아 D. 오펜하임 지음, 고원 옮김, 위즈덤하우스(2020)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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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성격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연습이라면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2019년 10월)에 출간된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는 나의 지적 호기심을 훌륭하게 자극해 준 책이었다. 책이 출간된 후 지금까지 매일 한 페이지씩 읽던 책이 어느새 끝이 보이는 지금, 반갑게도 이번에 같은 저자의 신간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 인물 편>이 출간되었다.

마침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가는 와중에 만나게 된 책이라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두 저자 '데이비드 S. 키더'와 '노아 D. 오펜하임'은 이 전에 펴낸 책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에 이어 '인물 편'을 따로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 문명을 구성하는 수천 개의 종교와 이념, 체제 등을 창조해내고 또 파괴한 것은 모두가 인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은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우리가 다시 인간에게서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작이 '역사', '문학', '미술', '과학', '음악', '철학', '종교'를 요일 별로 한 페이지씩 소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인물 편'에도 총 7가지 유형의 인물을 요일 별로 한 페이지씩 소개하고 있다. 월요일에는 '리더', 화요일에는 '철학자', 수요일에는 '혁신가', 목요일에는 '악당', 금요일에는 '예술가', 토요일에는 '개혁가', 일요일에는 '선지자' 이렇게 한 페이지씩 간략하게 소개하는 식이다.

기원전 2600년경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365명의 익숙하고 낯선 '시대의 아이콘'들이 총망라된 이 책을 곁에 두고 읽노라면 그들의 뜨겁고 강렬한 삶의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아쉽게도 이 책에 실리지 못한 위대한 인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지면서 갑자기 삶에 대한 애정이 불끈 불끈 움트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펼쳐 읽다 보면 자신의 흥미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을 적어도 한 명은 찾을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이 책을 통해 흥미를 갖게 된 인물이 생겼다면 지체하지 말고 바로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달려가 그에 관련한 평전이나 자서전을 찾아 읽기를 권한다. 간신히 불이 붙은 호기심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차일 피일 미루다 보면 금세 또 시들해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특히 이 책에 소개된 여성들을 관심 있게 봤다. 비록 책에 소개된 365명의 인물들 중에 여성은 38명으로 전체의 10%가 간신히 넘는 수준이긴 하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위대한 여성들의 이름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앤 콘웨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마가렛 풀러, 시몬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 같은 여성 철학자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 도서관에서 그들의 이름을 찾아 그들에 관한 책을 한 권씩 천천히 읽어나갈 계획을 세웠다.

습관처럼, 질문을 던지며 읽는 책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읽는 최고의 방법은 이 책으로 매일 아침의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머리맡이나 자주 머무르는 책상 위에 이 책을 두고 매일 아침 한 페이지씩 읽으면서 질문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는 어땠을지, 그의 어떤 면이 나의 흥미를 끄는지, 그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목요일의 '악당'들을 읽을 때,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악당'의 정의는 무엇인지, 그를 정말 '악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 혹시 억울한 '마녀사냥'의 피해자는 아니었을지,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낚아채서 메모를 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이겠다.

그렇게 매일매일 책으로나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시간들이 쌓이면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찾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천 권의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보다 더 귀하고 단단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므로. 쉽게 판단하는 버릇보다는 질문하는 버릇을, 심판자의 태도 보다는 학생의 태도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정직'이나 '공감', '관용', '애국심' 같은 말의 의미를 사전에 실린 정의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린 시절에 동화를 읽으며, 또는 그런 말에 깃든 가치들을 상징하고 실천하는 영웅의 모험담을 읽으며 말의 의미를 머릿속에 새긴다. 우리는 윤리 강령이나 두꺼운 규정집을 읽으며 도덕적인 의사나 선량한 변호사가 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자신이 흠모하는 이들을 모방하고, 이로써 그들의 삶을 우리 스스로가 선택에 직면했을 때 이정표로 믿고 따르는 이야기로 변화시킨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엮고 옮김, 황금가지(2020)에 실린 '저자 머리말' 중에서)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 인물편

데이비드 S. 키더, 노아 D. 오펜하임 (지은이), 고원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20)


태그:#1일1페이지, #세상에서가장짧은교양수업, #인물편,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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