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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거창에서 열린 연출가 이종일 희곡집 출판기념회
 14일 오후 거창에서 열린 연출가 이종일 희곡집 출판기념회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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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거주하며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고위직을 지낸 큰아버지는 공책에 빼곡하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사를 써 놓으셨다고 한다. 똑같은 내용을 공책 두 권에 각각 남겨 놓으셨는데, 두 권의 자서전을 남겨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형님과 큰아버지 때문에 한국에 있던 동생과 조카는 연좌제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부자는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고 간첩으로 몰릴 뻔한 위기도 겪게 된다.

교사로 재직하다 연극인이 된 조카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상상력을 발휘해 한 편의 희곡으로 정리했고 연극으로도 만든다. 연극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10일 발간된 희곡집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경남의 대표적인 연극인 중의 하나인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의 가족사가 담겨 있는 기록이다. 지난 14일 저녁에는 그가 사는 거창의 작은 공간에서 여러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희곡 제목이 된 큰아버지 음식점

1953년 생인 이종일 연출가는 안정된 교사의 길을 벗어나 연극인으로 45년을 살아왔다. 직접 희곡을 쓰고 연출한 작품만 20편이 넘는데, 희곡 중에는 지난 시절의 삶도 담겨 있다. 자신이 쓴 희곡을 책으로 엮기 시작했는데, 5편이 희곡이 들어가 있는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그 첫 번째다.

책에 들어있는 '종각이 있는 공원', '밀항선', '노르망디에 핀 쑥부쟁이', '토굴뱅이' 등 희곡 중 그가 가장 애착이가는 희곡은 제목으로 선택한 '조선료리집, 판문점'이다. 조총련의 간부로 있던 큰아버지의 음식점 이름이기도 하다.
 
이종일 희곡집. <조선료리집, 판문점>
 이종일 희곡집. <조선료리집, 판문점>
ⓒ 하루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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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 연출가는 출판기념회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큰아버지가 일본에서 야끼니꾸(불고기) 음식점을 운영하셨다"며 "자식을 북한에 보낼 만큼 조총련 활동을 열심히 하신 분"이라고 담당하게 자신의 가족사를 털어놨다.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한국과 일본에서 살며 서로 왕래할 수 없었던 형제가 일본에서 해후하고 소회를 나누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형인 이현술은 일본에 있다가 해방 직후 동생인 이덕술만 귀국선에 태우고 정작 본인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이덕술은 죽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 일본으로 찾아온 또다른 동생 이금술을 만나게 된다.

그 사이 이현술은 조총련의 고위 간부가 돼 있어 고향으로 아예 돌아올 수 없는 처지가 돼 있었다. 한국에서 결혼했지만 부인은 처가로 장모님 장례를 치르러 갔다가 빨치산에 잡혀서 산으로 올라가 자연스레 빨치산이 된 비운의 가족사를 안고 있었다.  한국에 있던 어린 아들은 동생 이덕술이 일본으로 밀항시킨 덕에 이현술이 키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조총련에서 활동했던 이금술은 1960년대 북송선에 태워 북한으로 보냈고, 북으로 간 아들 역시 그리 편한 삶은 아니었다. 남북분단이 빚어낸 이산가족의 역사이면서, 서로 엇갈린 가족 간의 분단사였다.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지난 2018년 이종일 연출가의 극단 입체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져 제36회 경상남도연극제에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구성이 탄탄하고 스토리텔링이 창의적이며 주제가 시사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종일 연출가는 "일부 각색된 내용을 제외하고는 실제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큰아버지가 1930년대 후반인가 1940년대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눌러앉게 됐다"며 "이후 조총련 부의장까지 지내셨다"고 전했다. "연극에서처럼 그의 사촌 형제는 북송됐고 평양 옆 순천에 산다"고 덧붙였다.

족쇄가 된 조총련 큰아버지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큰아버지의 존재는 상당한 족쇄였다. 가족들을 위해 돈을 보내오기도 하셨지만 연좌제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기에 조총련 고위 간부를 둔 이종일 연출가와 부친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재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간첩단 사건 조작 대상이 된다.

이종일 연출가는 "당시 전두환이 해외 순방을 나갔을 때였는데, 밑에서 대통령에게 잘보이기 위해 뭔가를 하나 엮으려고 했던 것 같다"며 "아버지와 함께 끌려가 고초를 당했는데, 간첩 사건 보도자료를 내기 위한 목적으로 명판 들고 사진도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특별하게 나오는 게, 없었다"며 "조작하려고 해도 마땅하게 엮을 게 없다 보니, 결국 큰아버지가 일본에서 보내준 돈에 대해 외환법 위반으로 꼬투리를 잡은 게 전부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조사를 받은 후 잠든 척을 하면서 에서 수사 관계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잘못 짚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서 다소 안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조선료리집, 판문점>을 펴낸 이종일 연출가
 <조선료리집, 판문점>을 펴낸 이종일 연출가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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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료리집, 판문점'에는 안기부에서 조사받던 장면도 들어있다. 안기부의 간첩 조작에 체념한 듯한 이덕술은 아들에게 안기부 말대로 따르자고 말한다. 그러나 아들 이상수는 "큰아버지는 일본에서 민족의식을 지니시고 불굴의 의지로 일본과 싸우며 살아 돌아오셨는데, 아버지는 어찌 작은 협박에 무너지고 자존심도 없냐"고 항의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당시 말하고 싶었으나 정보기관의 위세에 눌려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희곡을 통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상응하는 장면으로 북으로 간 이덕술의 아들 이성남이 북한 보위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성남의 아들 이정식이 기독교 목사의 설교가 들어있는 남한 비디오테이프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종일 연출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투영된 작품"이라며, "큰아버지와는 1991년 김영삼 정권이 조총련계 인사들의 고향 방문을 허락했을 때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극에서는 일본에서 형제가 만나는 장면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수십 년 만에 해후한 것이다.

<조선료리집, 판문점>은 현실의 판문점이 분단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중의적이다. 분단으로 인해 남한과 북한, 일본으로 나눠진 가족사의 비극이 애틋하게 와 닿는다.

희곡 마지막 부분은 이덕술의 둘째 아들 이상원이 일본의 큰아버지 식당을 찾는 장면인데,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 내고 싶은 이종일 연출가의 간절한 바람이 극적으로 표현됐다.

조선료리집, 판문점

이종일 (지은이), 하루의산책(2020)


태그:#조선료리집, 판문점, #이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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