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멍이 들고 온몸이 퉁퉁 부은 9세 여자 아이가 편의점에 나타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 5월 창녕에서 발생한 여아 탈출 사건이다.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와 감금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베란다를 통해 탈출을 감행했다. 그 후 한 달, 충남 천안에서는 새엄마가 9세 남아를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일 방영된 < SBS 스페셜 > '체벌, 훈육, 그리고 학대'는 최근 연이어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을 조명했다. 체벌과 훈육 그리고 학대라는 이름 하에 고통 받는 아이들의 실태와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sbs스페셜 - 체벌, 훈육, 그리고 학대>

ⓒ sbs

 
국가적 조처는 아직 역부족 

1999년 소아암에 걸린 신애를 방치한 사건은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가정 문제에 사회가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던 '관습'을 뚫고 20년 만에 아동 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유기와 방임도 처벌의 대상이 됐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아동 학대'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첫 발을 내디딘 국가적 개입을 통해 2013년 칠곡 아동 학대 사건의 친부가 최초로 처벌받았다. 2013년 학대로 갈비뼈 16대가 부러져 숨진 이서현양 사건을 계기로 2014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 학대에 대한 특례법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15년 친 딸을 굶기고 때려 논란이 된 인천 여야 학대 탈출 사건을 계기로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2019년에만 43명의 아이들이 '가정 학대'로 숨졌다.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2013년 6796건, 2015년 1만1715건,  2018년 2만4604건으로 해마다 아동학대 건수는 늘고 있다.   

법안이 발의되고 특례법이 만들어졌지만 아동 학대 건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정부는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일선의 전문가들은 예산 부족과 인력 부족 등의 문제를 들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동 보호 기관도 턱 없이 부족하다. 결국 '구조'된 아이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가정으로부터 분리된 아이들 중 겨우 13%만이 '시설 보호'를 받고 있다. 재학대 발생률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대 발견 사례가 외국에 비해 1/3에 불과하다. 실제 학대 사례가 적은 게 아니라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가려진 '암수 범죄'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쉼터에 있는 20살 현석(가명)이는 4살 때부터 10여 년 넘게 학대를 당했다. 현석이 아빠는 삽으로, 소주병으로 때렸고 변기에 현석이 머리를 처박기도 했다. '아빠를 죽여주세요'라며 매일 기도했으나 아무도 그를 구해주진 못했다. 현석이는 성인이 돼서야 지옥 같은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sbs스페셜 - 체벌, 훈육, 그리고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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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이 훈육일까

학대의 시작은 어디일까. 학대 사건이 벌어지면 계부, 계모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학대 주체의 78.5%가 친부모다. 놀랍게도 가해 부모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아이가 미워서 학대했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해서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런 부모들의 '사고'에는 아이의 몸은 아이의 것이 아니며, 언제든 부모가 손을 댈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 SBS스페셜 > 제작진이 만난 평범한 부모들은 고백한다. 아이들이 위험하게 놀 때, 혹은 독박 육아 과정에서 아이들이 컨트롤 안될 때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가게 된다고, 분노 조절이 안될 때가 있다고 말이다. 

체벌은 우리 사회에서 부모가 배운 유일하다시피 한 훈육 방법이다. 훈육은 즉각적 명령 준수 효과가 있다. 그렇기에 부모들은 '나의 훈육 방법이 옳았구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뿐이고 상황은 다시 반복된다. 결국 체벌 효과는 없다. 그러나 '체벌'만이 유일한 훈육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부모는 더 강한 체벌로 아이의 잘못을 다스리려 한다. 

과연 체벌이 훈육일까? 전문가들은 되묻는다. 동물도, 범죄자도 안 맞는 요즘 세상에 왜 아이들이 맞아야 하냐고. 때리는 것만이 아니다.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너 때문에 못살겠다' 등등 부모들은 차마 타인에게는 하지 못 할 말들을 내 아이에게 한다. 상처주는 말 역시 정신적 학대다. 

스웨덴 역시 한때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1971년 3살 여아가 부모 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부모 및 그 누구도 아이에 대한 체벌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1979). 이 법안은 유엔아동 협약보다도 10년 빨랐다. 

일찍이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을 어른보다 귀하게 보고 높게 대접하라 하셨다.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라 하셨고, 당연히 때리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현재 여전히 우리 사회는 '훈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내' 아이를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구시대적 사고의 결과물인 것이다.

최근 법무부는 민법 915조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동의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이를 위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한다고 알렸다. 

'가정'이 세상 전부인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만이 아니라 부모들의 '인식적 변화'가 확산되어야 할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SBS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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