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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내동 내리교회를 나와 언덕을 조금 오르면 아담한 크기에 아름다운, 범상치 않아 보이는 건축물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내동 성공회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1890년 영국성공회에서 선교사로 온 코프(한국명 고요한) 주교가 세운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으로, 본래 건물은 한국 전쟁 때 파손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성당이 이전하면서 1956년에 새로 지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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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성당 중에서는 강화도의 성공회강화성당과 온수리성당이 한국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만든 건축물로 유명한데, 이 내동성당 역시 한국의 전통적이 목구조 처마양식이 가미되어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1956년 전까지 이곳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본래 이 자리에는 코프 주교와 함께 미국에서 온 의료선교사 랜디스 박사가 1891년에 세운 인천 최초의 현대식 병원, 성누가병원이 있었습니다.

성공회는 앞서 전래된 미국의 감리교나 장로교와 달리 적극적인 전도보다는 사회선교와 실천에 좀 더 관심을 쏟았는데요, 의료선교가 바로 그 일환이었습니다. 실제로 성누가병원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찾아와서 치료를 받았으며, 랜디스 박사는 의술뿐만 아니라 병원을 중심으로 영어교육도 펼쳤다고 합니다.

이후 성누가병원은 1902년 러시아 영사관으로도 사용되었으며, 1921년부터 1925년까지는 성공회 신학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성누가병원은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격침당한 순양함 바랴그호와 포함 코레에츠호의 부상당한 수병들이 진료를 받았던 곳입니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러일전쟁 발발 100주년인 2004년에 고마움을 표하는 명판을 지금의 성공회성당의 별관 건물에 부착했습니다.

내동 성공회성당에 가면 건물 자체도 멋있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인천항 풍경도 일품입니다. 물론 지금은 높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서 풍광이 예전 같지 않지만, 아무것도 없었을 120여 년 전을 그려보면 그 당시 조선 민중들에게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이곳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미국 감리교의 내리교회, 프랑스 천주교의 답동성당과 함께 영국 성공회의 내동성당도 한 번 찾아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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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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