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퓨처스(2군)리그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7회말 1사 주자 2, 3루 때 1번 타자 겸 지명타자로 출전한 LG 트윈스 박용택이 1타점 중전 안타를 친 뒤 1루에 나가 밝게 웃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퓨처스(2군)리그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7회말 1사 주자 2, 3루 때 1번 타자 겸 지명타자로 출전한 LG 트윈스 박용택이 1타점 중전 안타를 친 뒤 1루에 나가 밝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은퇴투어'는 오랫동안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마지막을 모든 구단과 팬들이 함께 축하해주는 이벤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2012년 치퍼 존스를 시작으로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 데이빗 오티즈 등의 유명선수들이 은퇴투어를 한 바 있다. KBO리그도 메이저리그에서 영감을 얻어 2017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승엽의 은퇴투어를 진행한 바 있다.

은퇴투어는 보통 상대팀 마지막 원정경기 때 의미 있는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함께했던 경기들의 순간을 떠올리는 등 추억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승엽 때는 기념동판, 그림 액자, 1루베이스, 소나무 분재에 이르기까지 각 구단의 개성과 역사를 살린 다양한 기념선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은퇴투어 이벤트는 그동안 특정 구단의 프랜차이즈스타를 넘어 프로야구 역사에 기념할 만한 레전드라면 함께 기억하고 예우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장기적으로 야구문화의 품격을 높이고 아름다운 전통으로 남을 수 있는 기획이기에 많은 야구팬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베테랑 타자 박용택은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했다. 최근 소속팀 LG는 KBO리그 차원에서 박용택의 은퇴투어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박용택의 은퇴투어 추진 소식에 야구팬들의 반응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일부 야구팬들은 박용택이 뛰어난 선수였던 것은 맞지만, 소속팀도 아니고 리그 전체가 동참하여 은퇴를 기려야할 정도의 위상을 지닌 선수였는가라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몇몇 야구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박용택의 은퇴투어 여부를 놓고 LG 팬들과 타팀 팬들간에 서로 과대평가-과소평가를 운운하며 갑론을박을 벌이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만인의 축하 속에서 훈훈하게 이루어져야할 은퇴투어가 엉뚱하게도 선수의 '급'이나 역사를 평가하는 공개 논쟁을 촉발하며 다소 방향이 어긋나버린 모습이다.

박용택은 2002년 LG에 입단한 이후 줄곧 주전으로 활약하며 무려 19년간이나 한 팀에서만 활약한 '원클럽맨'이자 꾸준함의 대명사였다. 통산 타율 0.308(역대 23위) 211홈런(23위) 1179타점(7위) 312도루(11위)를 기록했다. 또 KBO리그에서 200-200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박재홍(300홈런-267도루)과 박용택, 단 2명 뿐이다. 기록 면에서 KBO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였음은 분명하다.

반면 박용택에 대하여 박한 평가를 내리는 팬들은, LG의 프랜차이즈스타라면 몰라도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였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LG 구단 내에서 은퇴를 기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KBO리그 차원의 은퇴투어까지는 과하다는 것이다.

박용택이 LG에서의 명성에 비하여 리그에서의 우승 경험이나, 한 시대를 지배했다고할 만한 압도적인 개인 활약상을 보여준 시즌도 없고,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도 미미하다는 것이 근거로 제기된다. 심지어 일각에는 2009년 홍성흔과의 타격왕 경쟁 당시 '기록 밀어주기' 논란까지 언급하며 박용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특정 선수에 대한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하나의 모범답안이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선수라도 해도 명과 암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다양한 평가가 공존할 수 있다.

이승엽도 은퇴투어 당시 만인의 박수와 공감만 얻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선수시절의 업적만 보면 당연히 은퇴투어를 받을 자격은 차고 넘치지만, 엉뚱하게도 '팬서비스' 문제가 재조명받으며 잠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승엽은 선수시절 화려한 경력과 모범적인 이미지에 비하여 팬서비스가 좋지 못하다는 지적을 종종 받았는데 은퇴를 앞두고 일부 팬들이 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여론이 나빠졌다. 이승엽은 이후 여러 차례 당시의 언행들을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가하면 메이저리그의 강타자였던 '빅 파피' 데이빗 오티즈는 과거 약물복용 전력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미국 현지에서도 대중적인 이미지가 좋았던 리베라나 존스, 지터의 사례와는 달리, 오티즈의 은퇴투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상당했다. 물론 은퇴투어는 잘 진행됐지만, 단지 눈에 보이는 기록 이상으로 선수의 위상이나 가치를 바라보는 팬들의 평가가 냉철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박용택이라는 선수의 가치와 위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팬들마다 생각이 다를수 있고, 저마다 일리있는 주장이다. 다만 은퇴 투어라는 것은 'MVP투표'나 '명예의 전당' 입성을 논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은퇴투어의 첫 시작이 하필 이승엽이라는 '올타임급' 선수이다보니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감도 있다. 물론 리그 우승이나 MVP-개인타이틀 수상, 국가대표에서의 활약 등은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것이 선수의 자격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런 논리로 따지자면 류현진이나 이대호도 KBO리그에서의 우승 경력은 없다. 양준혁은 리그를 지배한 MVP시즌이나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은 미미하다. 박찬호는 한국에서 말년에 딱 1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KBO리그 올스타전에서 기념 은퇴식을 치러줬다.

은퇴투어는 리그에 오랫동안 기여하고 나름의 족적을 남긴 선수들을 예우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역사를 팬들과 함께 추억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는 이벤트다. 은퇴투어를 하고 안 하고에 무슨 타이틀이 걸린 것이 아니다. '이승엽급'-'박용택급'으로 구분하여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억지로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야구팬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정할 만한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준은 필요하겠지만, 애초에 획일적인 잣대를 만드는 것부터 불가능한데다 과거의 단점 들추기 식으로 선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분위기는 각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응원하지 않는 다른 팀의 선수라고 해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함께 웃고 축하해주는 너그러운 여유를 갖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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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은퇴투어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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