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일종의 야만 사회가 되고 있다. (중략) 예전에는 한국 사회에 일종의 '선비정신'이 통용됐다. 자신만의 이익이나 자신이 속한 정파나 집단을 위해서 말도 되지도 않는 주장은 염치와 부끄러움을 알기에 아예 꺼내지도 못하던 정상적인 일종의 도덕률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그러나 작금 일어나는 사태는 어떠한가."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강 판사는 이 글에서 작심이라도 한 듯 현 세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강 부장판사는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먼저 수적 우위를 앞세워 각종 쟁점법안을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에 날을 세웠다. 강 부장판사의 글 중 일부다. 

"다수를 차지하면 헌법 같은 기준선은 염두에 둘 필요도 없다는 태도로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인다. 하지만, 그 다수는 영원한 다수가 결코 될 수 없는 것이 세상사 인연의 이치법이다. 오늘의 다수가 내일의 소수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소수가 내일의 다수가 될 수 있음에도, 어찌 역지사지, 협치의 정신을 내팽개치고 모든 것을 숫자로 밀어붙이고만 있는가."
 

이뿐 아니다. 최근 국회에서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율과 양도세율을 각각 최고 6.0%, 72%까지 상향한 부동산세제 법안이 통과된 걸 염두에 둔 듯 "나라의 국민이면 누구나 소득에 따른 납세 의무가 있다. 하지만 소수의 국민에게 상당한 범위 내의 누진세율이 아니라 아예 황금알 낳은 거위의 배를 가르듯이 도살적 중과세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행하는 것도 국가가 부끄러움을 잊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한창 논란이 이는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언론기관과 권력기관이 합세하여 무슨 덫 같은 것을 설치해서 특정인이 그 함정 속에 빠지기를 기다리다가 여의치 않으니 전파 매체를 통해 사전에 계획한 작전대로 프레임을 국민에게 전파하고, 그런 일을 막아야 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자가 역으로 그 작전에 동조하는 듯한 행동과 말을 여과 없이 내뱉는 것도 염치의 실종사태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강 판사 지적이다. 

강 부장판사는 이전에도 논란 중인 현안에 대해 나름의 소신을 피력했었다. 강 부장판사는 지난 해 7월 자신의 블로그에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일본의 통상보복'이란 글을 올렸다.

강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양승태 코트에서 선고를 지연하고 있었던 것은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판결 이외의 외교적·정책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어준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이는데, 지금의 대표적 사법농단 적폐로 몰리면서 대법원장 등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법부도 한 나라의 국가시스템 속의 하나일 뿐이라고 외교 상대방은 당연히 간주하는 것이고, 그래서 양승태 코트 시절 그같은 고려를 한 측면도 일정 부분 있는 것"이라며 "일본의 보복 정당성은 전혀 인정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응책이 거의 없는 현시점에서 나라를 이끄는 리더들이 부디 지혜로운 정책 결정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속히 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 잘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강 부장판사 글이 올라온 시점은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문제 삼아 무역 보복조치를 발표한 직후였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이 강제징용 판결을 고의로 지연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전후맥락을 감안해 볼 때, 강 부장판사는 한편으론 일본의 무역 보복에 비판적이면서도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지연을 두둔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강 부장판사의 시각은 다소 보수정치색이 강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보수언론은 강 판사의 최근 게시글을 앞다퉈 기사화했다. 보수언론은 특히 강 판사 게시글의 첫 문장을 인용하면서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정치권을 향해 작심 비판했다"(한국일보), "현직 고위 법관이 헌법적 가치가 무시되고 있는 정치권의 현 세태를 비판했다"(문화일보)고 썼다.

고 허원근 일병 사건 재판 주심 맡았던 강 부장판사

강 부장판사의 정치색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판사도 한 명의 시민이고,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강 부장판사의 과거 이력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고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 중 하나다. 고 허 일병은 1984년 4월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 GOP에서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을 총상을 입고 변사체로 발견됐다.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2002년 11월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군 의문사위는 2004년 6월 타살로 발표했다. 이어 2007년 허 일병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타살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고 허 일병 사인이 자살이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사건을 맡았던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는 "M16 소총으로 흉부에 2발, 머리에 1발을 쏴 자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같은 총상으로 자살한 사례가 있다"라고 적시했다. 당시 주심판사는 바로 강민구 부장판사였다. 

[관련 기사]
[항소심] "허원근 일병은 자살"... 항소심서 1심 판결 뒤집혀
[대법] 끝내 수수께끼로 남은 허원근 일병의 죽음

"M16 소총으로 흉부에 2발, 머리에 1발을 쏴 자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들여다 볼수록 어처구니없다. 
  
지난 8월 20일 의문사위가 '허원근일병 사망사건'의 재조사 결과를 중간발표하면서 공개한 사건 당시의 현장 지도와 고 허일병의 사망 모습을 담은 사진 등 브리핑 자료. 지난 8월 20일 의문사위가 '허원근일병 사망사건'의 재조사 결과를 중간발표하면서 공개한 사건 당시의 현장 지도와 고 허일병의 사망 모습을 담은 사진 등 브리핑 자료.
 2002년 8월 20일 의문사위가 "허원근일병 사망사건"의 재조사 결과를 중간발표하면서 공개한 사건 당시 현장 지도와 고 허일병의 사망 모습을 담은 사진 등 브리핑 자료.
ⓒ 권박효원

관련사진보기

 
M16 소총은 총탄이 오른쪽으로 여섯 번 회전하며 비행하도록(6조 우선식) 설계된 소총이다. 총열을 들여다보면 회전할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다. 이렇게 날아간 총탄이 목표물을 맞히면, 제멋대로 회전한다. 사람의 경우 총탄은 인체를 뚫고 들어가 내부 장기를 파괴한다. 총탄이 목표물에 부딪히면서 반발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M16 소총으로 한 발만 맞아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이렇게 M16 소총의 살상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 같은 M16 소총의 특성은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잘 알 것이다. 지금은 한국 군이 병사들에게 K2소총을 지급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 주력 소총은 M16이었다(필자는 훈련소에서 M16으로 훈련했고, K2소총은 자대에서 지급받았다).

M16 특성과 제원을 고려해 볼 때 흉부에 2발, 머리에 1발을 쏴 자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재판부 결론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강 판사와 나머지 보조판사가 군 복무를 했는지 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재판부 판결은 한 번이라도 M16 소총을 다뤄보았으면 나오기 어려운 결론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5년 고 허 일병의 자살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고 허 일병의 사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강 주심판사의 판결이 이 사건을 미궁에 빠지게 한 요인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다시 강 부장판사의 페이스북 글로 돌아가 보자. 강 부장판사는 첫 문장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일종의 야만사회가 되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강 부장판사의 과거 이력을 보면 이미 한국은 야만사회였던 것 같다. 군 복무 중이던 한 젊은이의 죽음에 대해 법원이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내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어처구니없는 판결의 주인공이 바로 강민구 판사였다. 그런 강 판사가 야만사회 운운하다니, 다시 한번 할 말을 잃는다. 

강 부장판사는 이런 말로 끝을 맺었다. 

"권부의 높은 자리에 있는 모든 분은 자기의 갓끈이 떨어지고 자연인으로 회귀하는 미래의 자기 모습을 부디 사고실험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꼭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되면 적어도 야바위꾼 같은 발언이나 정책을 남발하여 국민 가슴에 대못은 박지 못할 것이다." 

쉽사리 공감이 가지 않는다. 높은 법대에 있으면서, '야바위꾼' 같은 판결로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다. 

위에 적은 마지막 대목은 강 부장판사 스스로 먼저 곱씹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갓끈' 떨어지기 전에 고 허원근 일병 유족을 찾아 백배사죄하기 바란다. 그게 고위 공직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