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로고가 전면에 박힌 티셔츠, 패턴만 봐도 브랜드를 알 수 있는 클러치... '등골브레이커' 패딩이 가고, 명품이 온 걸까요? 요즘 10대들 사이에서 알바비를 꼬박 모아 명품을 사는 게 유행이라고 합니다.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명품이 어떻게 10대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일까요. 학교 현장과 가정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유튜버 'SP 스튜디오'가 올린 노스페이스 패딩 리뷰 영상.
 유튜버 "SP 스튜디오"가 올린 노스페이스 패딩 리뷰 영상.
ⓒ 유튜브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한때 아이들 사이에 노스페이스 패딩이 '신분증' 역할을 했던 적이 있다. 같은 브랜드라도 가격대별로 등급이 나뉘었고, 아이들은 색깔과 디자인만으로도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약칭 '노페'로 불리며, 특정 학교와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중고생들에게 꽤 오랫동안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날씨와 상관없이 교복 재킷 위에 패딩을 껴입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나같이 오뚜기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아이들은 기꺼이 자신의 '레벨'을 드러내기 위한 기회비용으로 여겼다. 일과 중에 정 못 견디겠다면 교복 재킷을 벗을지언정 패딩을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문 밖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굳이 차이라면, 아이들 사이에 서열을 나누기보다 기성세대와 아이들을 단박에 구분하는 징표에 더 가까웠다는 점이다. 당시 길거리에서 '노페'를 입지 않은 아이들 만나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으니, 편의점 등에서 학생증을 일일이 검사하는 수고로움을 덜게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벌에 웬만한 TV 한 대 값이라 형편이 녹록지 않은 집에서는 선뜻 사 입힐 수 없는 옷이었다. 그런 까닭에 부모의 수심을 깊게 하고 허리를 휘게 한다는 뜻으로 '등골 브레이커'라고 불렸다. 당시 교실에서 도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짝퉁'이 판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 다른 '신분증'의 등장

노스페이스 패딩이 위세를 떨치기 전엔 교복 브랜드로 서열을 매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대기업 브랜드가 찍힌 것과 중소기업에서 만든 것, 그리고 지역 기업이 만든 공동 구매 교복을 구분해 아이들은 서로 시샘하고 놀려댔다. 대기업이 교복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부작용이 시나브로 해소되긴 했다.

사실 교복이 자율화된 건 이미 수십 년 전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교복 착용을 선호하는 이유는 집안의 경제적 여건에 따른 아이들끼리의 위화감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교복은 극심해진 경제적 양극화가 고스란히 교실에 전이되는 것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교복에까지 서열을 매기려 들자, 아이들에게 교복 공동 구매의 경제성과 합리성을 설명하는 계기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한국사 수업을 하다 말고, 난데없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제도에 대해 수업하고, 윤리적 소비에 대해 글쓰기를 시켰다. 그때도 지금처럼 교복 업무와 생활지도를 담당한 학생부장이었다.

세월이 흘러 교복 브랜드도, 노스페이스 패딩도 힘을 잃었지만, 아이들끼리의 서열 매기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계급을 증명할 새로운 '신분증'이 필요했고, 몇 해 전부터 스마트폰이 그 바통을 넘겨받은 모양새다. 한 아이의 말마따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브랜드가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시대가 됐다.

요즘 아이들끼리 통용되는 스마트폰 서열을 잠깐 소개하자면, 아이폰, 갤럭시, 그리고 기타 이렇게 크게 셋으로 나뉜다고 한다. 아이폰을 쓴다는 건, 은연중에 젊고 세련되고 부유한 사람이라는 걸 암시한단다. 한 아이는 카페의 탁자 위에 아이폰이 놓여 있으면, 서로 마주 앉은 그 사람들뿐만 아니라 카페조차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갤럭시와 기타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아이들끼리 스마트폰을 새로 장만했다고 하면, 아이폰인지 아닌지로만 묻고 답한다는 것이다. 굳이 갤럭시를 기타와 구분 지은 건 아이폰 부럽지 않은 성능과 부가서비스 덕분일 테지만, 아이폰의 확고부동한 지위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서 기타란, 친구들 앞에서 자랑삼아 꺼내놓지 못하는 나머지 모든 제품을 뭉뚱그린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의 성능과 디자인, 가성비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브랜드가 지닌 고유의 이미지와 가격이 중요할 뿐이다. 중고품도 아이폰이라면 아이들은 기꺼이 웃돈을 얹는다고 한다.

비슷한 사양에 비싼 가격일지라도 아이폰에 눈길이 먼저 가는 건 '인지상정'이라고 했다. 숫제 운영체제가 여느 스마트폰들과 다르다는 것조차 불편하게 여기기는커녕 다른 친구들과 구별 짓는 근거로 여길 정도란다. 기존의 아이폰 사용자들이 아이폰만 고집하는 건 사용법 익히는 게 번거로워서라기보다 그들만의 '프라이드'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하긴 근래 들어 기존의 아이폰 사용자뿐만 아니라 타사 제품에서 아이폰으로 갈아타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손들어보라 하면, 아이폰 사용자가 절반이 넘는 학급도 있다. 개중엔 용돈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값비싼 것들도 적지 않다. 언뜻 봐도 산 지 얼마 안 된 것들이다.

아이폰 사용자가 늘어나자, 아이들이 이젠 아이팟 전용 아이폰인지, 헤드셋을 연결하는 아이폰인지 굳이 따지고 비교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듣자니까, 최근 출시되는 신상품 중엔 아예 헤드셋의 잭을 꽂는 구멍이 없는 제품도 있다고 한다. 어느덧 아이폰은 과거 노스페이스 패딩에 이어 학부모들의 '등골 브레이커'로 자리매김했다.

명품 하나 있으면 '기 산다'는 아이들
 
 요즘 유행하는 캐나다 브랜드의 스니커즈. 새 신발처럼 말끔한 게 아니라, 표면에 가공 처리를 해 오래 신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이 모델은 가격이 약 70만 원에 육박한다.
 요즘 유행하는 캐나다 브랜드의 스니커즈. 새 신발처럼 말끔한 게 아니라, 표면에 가공 처리를 해 오래 신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이 모델은 가격이 약 70만 원에 육박한다.
ⓒ 사이트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아이폰만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최근 들어 명품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명품으로 불리는 것들이 대개 그렇듯 꼭 필요해서 산 건 아니다. 기능과 디자인 따위가 본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명품으로 인정해주고, 부러워하며, 하나쯤 갖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이면 그걸로 족하다.

한 아이는 부모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명품이라며 개인 사물함에서 신발을 꺼내 보여주었다. 얼핏 봐서는 평범하다 못해 오히려 낡아 보이는 운동화인데, 가격이 무려 70만 원쯤 될 거라고 했다. 자신은 운동화 한 켤레일 뿐이지만, 몇몇 친구들은 신발과 바지, 티셔츠에 시계까지도 명품만 걸치고 다닌다면서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어린 그가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교실에서 서먹한 친구들조차 자신에게 다가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무심한 척 안 보는 것 같아도 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면서, 순간 어깨가 으쓱해지는 그 느낌이 좋다고 했다. 한마디로 '기가 산다'는 것이다.

그는 명품을 '절대 반지'로 표현하기도 했다. 고작 신발 하나 바꿔 신었을 뿐인데, 학교생활에 자신감이 생기고 친구도 많이 생겼다면서 달라진 일상을 뽐냈다. 요즘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이들까지도 명품에 꽂혀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면서, 머지않아 교실에서 명품 소유 여부로 친구들끼리 헤쳐모일 날이 올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굣길 그는 신발을 발이 아닌 손에 들고 있었다. 비가 와서 신을 수 없다고 했다. 발은 젖어도 상관없으나, 신발에 물이 묻으면 안 된다는 거다. 비 오는 날엔 신지 않고, 때가 묻었을 땐 전문 세탁소에 맡기며, 며칠 이상 신지 않을 때는 방습제와 함께 신발 안에 형태가 유지되도록 보형틀을 끼워두는 게 철칙이란다.

신발이 발을 보호하기 위한 물건이 아니라, 발이 신발을 위해 희생하는 꼴이다. 이쯤 되면,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주인이자, 군림하는 신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기를 살려준' 데 대한 보답이었을까. 우산이 작아 책가방은 빗물이 들쳐 이미 축축히 젖었는데, 비닐로 꽁꽁 싸맨 신발은 가슴에 품은 채 교문을 나섰다.

대학에 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명품 가방 하나 장만하는 거라고 말하는 한 아이는, 명품에 대한 요즘 청소년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SNS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거다. 명품을 입고, 들고, 신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등에 올리는 게 요즘 또래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행복이라고 귀띔했다.

예전엔 어떻게 생겼느냐가 중요했지만, 요즘엔 아무리 못생겨도 명품으로 얼마든지 커버가 된다며, 그 인증의 장이 바로 SNS라고 단언했다. 누군가 겉치레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라고 충고한다면, 당장 '꼰대질'을 멈추라는 날선 반응이 튀어나오게 될 거라고 덧붙였다. 실제의 자신보다 SNS에 담긴 모습을 진짜 자신으로 여기는 세대일진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 와중에 다른 한 아이가 혀를 끌끌 차며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중고 매물로 나온 스니커즈 운동화였는데, 사진만 봐서는 족히 몇 년은 신은 듯 낡아빠진 모습이었다. 그가 놀라워한 건, 판매자가 제시한 48만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 아니었다. 사이트에 탑재하자마자 순식간에 팔렸는데, 그걸 산 사람이 자기가 잘 아는 동네 후배였단다.

입고, 먹고, 쓰는 걸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세대에게 명품은 가장 확실한 '신분증'이다. 아이들 사이에 끊임없이 서열이 매겨지고, 이렇듯 물신주의마저 팽배해지는 현실에서 학교 교육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솔직히 이게 과연 학교 교육을 통해 제어될 수 있는 문제인지도 의문이다. 명품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들 앞에서 그저 간수 잘하라는 말밖에 더 해줄 이야기가 없었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늘도 난 세계일주를 꿈꾼다. 그 꿈이 시나브로 가까워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