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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의 자리
▲ 족욕카페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의 자리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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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욕카페는 처음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양말을 벗고 발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나 족욕을 하며 마음껏 몸을 이완해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발 마사지 같은 것도, 발 네일이나 각질을 제거한다는 많은 곳들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온몸을 디디고 지탱하는 험한 일을 하는 발, 눈에 보이지 않아 가꾸지 않는 발을 남에게 내보이기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불편했다.

쉼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대화가 목적이고 차는 수단이 되어 피로나 통증을 남몰래 잠시 가라앉히는 곳이 카페였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쉼은 집이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었다. 여행 중에도 숙소에 가서야 비로소 몸을 편하게 이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경으로의 여행 중에 잠깐 쉼을 허락한 곳이 족욕카페였다.

어떤 책에서였는지 영화에서인지 기억에 없지만, 한 주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항상 발에 양말을 신고,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양말을 벗지 않고 항상 완벽하게 발을 감춘다는 어떤 여인이었다. 유독 발을 항상 감싸고 있어서 사람들은 발이 험하게 못생겼거나 흉터가 있거나,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고 유난스러워 보이는 행동을 이해했다고 했다.

어느 날 우연이 그녀의 발을 보게 되었는데 그 발이 너무 곱고 예뻤다는 것이다. 예쁜 그 발을 왜 보여주지 않고 감추냐는 물음에 그녀는 대답했다. 항상 험한 일을 하는 손은 늘 사용하니 가꿀 수 없지만, 발만은 예쁜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오래 지키고 싶었다고.

그때 처음으로 내 발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잠깐은 그녀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었고 비록 한 부분이지만 자신을 단단하게 지키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그녀가 했던 것처럼 한동안은 발을 열심히 매만지고 가꾸려고 노력했다. 노력은 잠깐 뿐이었다. 이후에도 비록 거칠긴 해도 손은 보이는 것이라 나름 신경을 썼지만, 발에 마음을 담아 신경 쓰고 살폈던 적은 없었다.

코로나 이후, 어딜 가든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가 찾은 족욕카페도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에어컨도 틀어 놓지 않고 주인 혼자 앉아 있다 우리를 맞았다. 낯선 공간의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자리로 안내되었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는 창가의 블라인드는 내려졌다. 족욕 순서를 안내하고 바로 색감도 예쁜 차를 내왔다. 준비된 것을 착착 진행하는 거침없는 손길이 이어졌다.

뜨거운 물을 받아 발을 담갔다. 거기에 노란 빛깔의 사해 소금을 적당히 넣어주었고, 아로마 오일도 몇 방울 똑똑 떨어뜨려 주었다. 물의 온도가 내려가면 다시 뜨거운 물을 받아 온도를 맞추면 된다고 했고, 뜨끈한 물에 투덕투덕 쌓인 하루의 피로가 풀어지는 사이 어깨에 찜질팩이 올려졌다. 밖은 뜨거운 날씨였지만 실내는 이미 에어컨 바람에 시원해졌고 몸속까지 후끈하게 해 주는 찜질까지, 완벽한 조합이었다.

투명 유리 주전자에 꽃잎이 동동, 차가 잘 우러나고 있었고 작은 유리잔이 옆에 놓였다. 뜨거운 차와, 따끈한 족욕 물과 어깨에 올려진 찜질팩. 어디서부터랄 것도 없이 피로를 풀어주는 삼박자가 마치 장단을 맞추는 것 같았다. "참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준비 없이 주인장 혼자 앉아있던 가게가 어느새 시스템이 잘 갖춰진 명품 풋샵이자 카페로 바뀌는 변화가 신기했다. 썰렁하게 텅 비어있던 곳은 쾌적하고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오로지 쉼을 위한 장소,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가만히 앉아 내 발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오장육부의 기운이 모여 있다는 발, 어디가 심장이고 어디가 신장인가를 되지도 않는 지식으로 짚어 보았다. 공원에서 가끔 걸을 때면 발이 커다랗게 입간판으로 제작되어 오장육부가 표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맨발로 돌길을 걸을 때 발을 꾹꾹 눌러주는 것이 좋다고 안내하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진지하게 그러한 안내를 대했던 기억도 없다.  

친정 엄마의 발은 크고 모양이 예쁘지 않았다. 신발을 신어도 한쪽이 툭 튀어나와 있어서 신발이 항상 그쪽으로 해지곤 했다. 해진 신발을 볼 때마다 속상해하며 편하고 큼직한 것으로 사드렸지만 엄마는 늘 신던 해진 신발만 신었다. 그러다 드물게 외출하게 되면 새 신발을 펼쳐놓고 그중에서 어떤 것이 제일 예쁘냐고 물으셨고, 편한 것보다는 발이 가장 예뻐 보이는 것으로 골라서 신으셨다.
 
엄마의 발은 크지만 
사랑의 노동처럼 크고 넓지만 
딸아, 보았니, 
엄마의 발은 안쪽으로 안쪽으로 
근육이 밀려 꼽추의 혹처럼 
문둥이의 콧잔등처럼 
밉게 비틀려 뭉크러진 
전족의 기형의 발

엄마의 신발 속엔 
우주에서 길을 잃은 
하얀 야생 별들의 신비한 날개들이 
감옥 창살처럼 종신수로 갇히어 
창백하게 메마른 쇠스랑꽃 몇 포기를 
조화처럼
우두커니 걸어놓고 있으니            
                 (김승희, <엄마의 발>)

엄마가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편한 시대를 살고 있다. 발이 미워 예쁜 신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엄마와는 다르게 나는 5년 전부터 어딜 가든 운동화만 신는다. 정장에도 운동화, 그래도 흉이 되지 않는 시대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쁜 구두는 아니지만 발에 부담을 덜 주니 엄마의 발을 닮았지만 다행히 모양이 변형되지는 않았다.

엄마의 발은 예쁜 구두를 통해서 세상에 보였고 그 여인의 발은 양말 깊숙이 감춰진 채로 지켜졌다. 예쁜 구두를 통해 수줍게 드러냈던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발은 길을 잃었고, 엄마의 꿈은 야생 별들의 날개처럼 창살에 갇힌 채 어린 남매들의 기둥으로 우두커니가 되어버렸다. 

짊어진 것을 큰 발로 버텼던 엄마는, 욕망이나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던 엄마는 지금은 곁에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인생 중반부를 넘어섰고 완고한 인습이나 억압의 굴레에서는 많이 벗어났지만, 온전한 내 삶으로서의 독립은 지금도 여전히 애쓰는 중이다.

뜨거운 물에 발을 오래 담그며 엄마가 살았던 세상과는 다른 나의 세상을 그려 보았다. 성성한 '야생 별'로 살아가며 아직 웅크리고 있는 날개를 자유롭게 펼치는 삶. 그리하여 더는 세상 한쪽 귀퉁이의 '우두커니'로 머물지 않는 삶.
 
카페 들어오는 진입로, 잘 정돈된 카페 마당
▲ 족욕카페 카페 들어오는 진입로, 잘 정돈된 카페 마당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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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한 시간의 쉼이 끝나고 풋크림을 바르고 다시 양말을 신고 일어섰다. 새로운 기운을 얻은 듯한 느낌, 처음 바닥을 딛는 아기처럼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생소한 경험, 낯설지만 의미 있었다. 가볍게 쌓인 먼지 같은 사연을 털어내는 것보다, 무장해제의 느낌을 만끽하며 흩어지는 분수처럼 이야기를 분출하는 것보다 시원했다. 잘 쉰 것 같았다.

잘 다듬어진 초록의 공간에 편안하고 조용한 휴식. 몸은 가볍고 마음은 묵직했다. 손등에 생기는 거뭇거뭇한 흔적은 감추고 싶지만 감출 수 없다. 지우고 싶지만 세월의 자취는 쉽게 지워지지도 않는다. 다시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온 지금, 생각이 많았던 족욕카페에서의 느낌은 흐릿해졌다. 다만, 꼭 하나 지우지 말자고 했던 것이 있다. 어떤 길을 걸어도 '나를 잃지 않기!'

구불구불한 길을 내비게이션의 안내로 도착한 곳, 족욕 카페. 다시 오게 되려나. 이곳저곳을 잘 다니지만 갔던 곳을 다시 찾지는 않는다.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곳이 많고 하지 못한 것도 많으니, 더 나이 들기 전에 새로운 것을 많이 담자고 하며 여행을 하는 편이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좋은 기억으로 남겨놓는 것도 여행의 맛이 아닐까 생각했다.

태그:#족욕카페, #발건강, #꽃마실, #김승희 엄마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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