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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정된 양형기준에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명시됐다. 소위 권력형 성범죄로도 불리는 '위계·위력에 의한 성범죄' 유형을 되레 범죄자들의 징역형을 유예하기 위한 요소로 고려한 것이다. 권력형 성범죄가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비판받는 상황에 국민 법감정에 어긋난 기준이 포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1일부터 수정시행되고 있는 성범죄 집행유예 기준이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유죄 형이 확정된 범죄자에 한해 적용된다. '긍정적' 요소가 많을수록 집행유예가 권고되고, '부정적' 요소가 많을수록 실형이 권고된다. 밑줄친 부분은 성범죄 유형 가운데 '위계·위력에 의한 경우'를 집행유예 참작 사유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7월 1일부터 수정시행되고 있는 성범죄 집행유예 기준이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유죄 형이 확정된 범죄자에 한해 적용된다. "긍정적" 요소가 많을수록 집행유예가 권고되고, "부정적" 요소가 많을수록 실형이 권고된다. 밑줄친 부분은 성범죄 유형 가운데 "위계·위력에 의한 경우"를 집행유예 참작 사유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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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대법원 양형위원회(아래 양형위)는 성범죄 유형 가운데 "폭행·협박이 아닌, 위계·위력을 사용한 경우(13세 이상)"를 집행유예 권고를 위한 일반 참작 사유(긍정사유)로 분류하고 있었다. 지난 7월 1일부터 수정 시행되고 있는 2020 성범죄 양형기준에 명시된 내용이다. 

집행유예 선고 기준에는 부정적 사유와 긍정적 사유가 있는데, 후자에 속하는 게 많을수록 범죄자가 실형 선고를 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통 주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기준에 명시된 주요 참작사유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재판부는 일반 사유로 분류된 항목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도록 권고된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2018년 초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고발을 시작으로 촉발된 미투(#ME-TOO 나도 피해자다) 운동과 함께 범죄의 심각성이 대두됐다. 사회적으로도 문제의식이 높아지면서 무형의 위력을 성범죄 수단으로 인정한 판결들도 나왔다.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제자를 성추행하고 강제 성관계까지 시도한 유명 무용인에게는 징역 2년 형이 내려졌다. 유형력(피해자 신체에 가해진 피해의 정도) 정도에 따라 성범죄 사실관계를 판단한 과거의 판결과 대비되는 결과다. (관련 기사 : 무용계 미투 1년 "예술계 위력 성범죄 인정, 가슴 뛰는 결과")

하지만 정작 2020 성범죄 양형기준에는 앞선 인식의 변화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양형위 관계자는 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보통 성범죄는 폭행·협박을 많이 동원한다"라며 "위계·위력이 그것보다는 (행위) 정도가 약하고 형량도 낮은 범죄이기 때문에 (집행유예 참작 사유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아직도 드러나는 피해 정도로 성범죄 유형의 경중을 구분한 과거의 판단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법조계도 비판 "수정할 필요 있다"

이와 관련해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성범죄 피해는 위력이나 폭행이나 (결과적으로는) 똑같을 수 있다"면서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형량이 낮은 반면 죄질이 더 나쁘다고 말한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대체로 오랜기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추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범죄 유형이 집행유예 긍정요인에 포함되는 건 (문제가 있다.)"

이어 서 변호사는 "모든 성범죄는 폭행·협박이 행위의 기준이다, 강제추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형력의 정도로 구분하려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면서 "하지만 성범죄의 매커니즘은 행위의 정도(유형력의 행사)만 놓고 판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양형위에 따르면 2018년 선고된 성범죄 사건 가운데 86.9%가 양형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서 변호사는 "양형기준은 권고적 효력을 갖지만 많은 판사들이 관련 기준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라며 "따라서 (양형기준에 사용되는) 표현들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한 현직 판사도 관련 내용을 지적했다. 그는 "명시된 기준대로라면 이 내용은 위계·위력에 의한 범죄가 성립된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위계·위력을 명시한 형법 제303조, 청소년성보호법 7조 5항 등이 해당될 수 있다"면서 "범죄 유형이 집행유예를 위한 긍정적인 참작 사유가 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형법 제303조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해놨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도 업무상 의력 등에 의한 추행을 저지를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해놨다.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5항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청소년을 추행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그는 "(유형력을 구분하려 한 양형위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용은 위계·위력에 의한 성범죄에 한해 집행유예를 권고하는 것처럼 잘못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서 "지금처럼 특정 범죄 유형을 집행유예 참작 기준으로 넣을 게 아니라, 모든 성범죄의 경우에 따라 유형력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관련 문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양형위 관계자 "전반적인 성범죄 양형기준 개정 필요성에 동의"

양형위 관계자는 "이 내용은 2013년 4월에 만들어진 내용"이라며 "이번에 나온 성범죄 양형기준은 전체적으로 수정된 내용이 아니다, 전에 없었던 군형법상 성범죄 항목이 추가된 것 외에는 저희가 손을 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양형위 관계자는 "위계·위력 이 부분은 다른 사람들도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인 성범죄 양형기준을 수정할 때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저희 임기 기간이 내년 4월 26일까지다, 그동안 디지털성범죄·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양형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임기 동안 끝마쳐야 할 업무양이 꽉 찬 상태다, 남은 임기 동안 (성범죄 양형기준을 전체적으로) 수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관계자는 "내년 4월에 새 양형위(8기)가 출범하면 이 부분도 고려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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