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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Korea+장녀)는 가족들을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돌보는 역할을 떠안는 한국 장녀들의 특징을 포착한 신조어입니다. 왜 이런 용어가 생겨났는지를 심리학의 관점으로 따져봅니다.[편집자말]
 "딸 없는 엄마는 불쌍해"라는 그 말에 담긴 부조리.
 "딸 없는 엄마는 불쌍해"라는 그 말에 담긴 부조리.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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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이었다. 근교로 가족 여행을 가던 중 아이와 함께 고속도로 휴게소에 앉아 있는데 한 낯선 할머니 한 분이 우리 옆에 와서 앉으셨다. 할머니는 한국인 특유의 관심 어린 시선을 가득 담아 아이가 몇 살이냐, 어디에 가느냐, 이런저런 것들을 물으셨다. 그러더니 내가 아들 하나만 둔 엄마라는 걸 알아채자마자 대뜸 아이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엄마 불쌍해서 어떡하니. 딸이 없어서. 딸이 없으면 외로운데." 

그리고 몇 주 후 나는 한 집단상담에 참여했다. 8명의 집단원들 중 3명이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세 자매 중 둘째인 한 참가자는 집안일을 사사건건 통제하려 드는 언니와의 관계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반대로 장녀라는 한 참가자는 집 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알아서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에 지친다고 했다. 남동생을 둔 또 다른 맏딸은 '비혼'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지병이 있으신 부모님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른바 'K-장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20~40대 젊은 장녀들이 각종 집안일을 해결하고,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애를 쓰고, 한편에서는 이런 장녀들을 '쎄다'고 불편해하는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 'K-장녀'. 도대체 왜 이 젊은 '첫째 딸'들이 가족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불현듯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낯선 이에게 '딸이 없으면 외롭다'며 혀를 차던 그 마음과 지금 이 장녀들의 고민이 별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심리학에서 바라본 '첫째 아이'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알프레드 아들러는 형제 관계와 가족 내 위치가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둔 심리학자였다. 그는 아이들은 같은 부모와 가족을 공유하지만, 출생 순위(엄밀히 말하면 가족 내에서의 심리적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심리적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고 했다. 

아들러에 따르면, 첫째 아이는 태어날 때 그 어떤 순위의 아이들보다 집안의 관심 속에 자라난다. 처음으로 몸을 뒤집었을 때,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었을 때, 첫걸음을 뗐을 때, 가족들은 첫 아이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환호를 보낸다.

이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성장하던 첫 아이는 둘째가 태어나면서 갑작스레 그 관심을 잃어버렸다고 느낀다. 자신보다 작고 연약한 동생은 부모의 손길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게다가 첫 아이는 종종 '동생에게 양보하라'거나 '동생을 보살피라'는 전에 없었던 압박을 받는다. 

이런 변화는 첫째 아이에게 큰 혼란을 가져온다. 이 혼란 속에서 첫 아이가 택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부모의 뜻에 순응해 '착한 아이'로서 인정을 받아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퇴행', 즉 다시 아기 때로 돌아가 부모의 관심을 되돌리려는 시도다.

둘째가 태어나고 많은 첫 아이들이 갑자기 소변 실수를 하거나 아기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아동기를 거치면서 첫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동생을 돌보는 데 관여하게 되고 점차 책임감을 갖게 된다. 또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인정받고 사랑을 획득하는 쪽으로 발달해 간다. 

장녀들의 특징을 연구한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와 비스 엔트호번은 책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에서 출생 순위로 인해 장녀들이 갖게 되는 심리적 특성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추출해냈다. 

'책임감, 성실성, 효율적 일 처리, 진지함, 보살핌.' 

이들은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장녀들은 학창시절 좋은 성적을 거두고, 리더의 역할을 하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성취를 일궈낸다고 했다. 때문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유명 인사들 중에는 장녀가 유독 많다고 분석했다. 또한 장녀들은 가정에서도 책임감을 발휘해 가족들을 돌보고 각종 집안의 일들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고 했다. 

한국형 가부장제가 장녀들에게 미친 영향 
 
 가부장제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장>의 한 장면
 가부장제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장>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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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의 장녀들은 이 같은 심리적 특성을 사회에서 꽃피우기보다는 '가족 안에서' 발휘하며 갇혀 있는 것 같다. SNS에는 장녀로서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듯하고, '돌봄을 강요받으며', '가족의 각종 대소사를 처리해야 하는 데 매여' 괴롭다는 하소연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왜 한국의 첫째 딸들은 자신들의 특성을 가족 안에서만 발휘하게 된 걸까? 

이는 휴게소에서 만난 할머니가 낯선 이에게조차 거리낌 없이 드러낸, '딸이 없으면 외롭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같은 인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한국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가족은 여전히 강력한 '시가 중심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시가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인 관계가 중심이 되는 가족 안에서 아내와 남편은 평등한 의사소통을 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주 양육자'의 임무는 대부분 여성에게만 지워진다.

결국 엄마로서 살기를 강요받는 여성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 대신 딸과 더 내밀하게 자신의 감정을 나눈다. 때로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들이 대신 이뤄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부모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장녀들은 이 꿈과 욕망이 가장 잘 투사되는 대상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딸들은 어머니의 상처를 무의식으로 동일시하게 되고,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가족 안에서 더 많은 중재 역할과 책임을 떠안게 된다. 특히, 장녀들은 특유의 책임감과 성실함을 발휘에 이런 역할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어머니가 투사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애를 쓴다.

또한, 어릴 때부터 '누나니까 동생에게 양보해라', '외출한 사이 동생을 잘 챙겨라'라는 말을 들어온 탓에 다른 가족 구성원의 '돌봄'에도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게다가 돌봄은 여성의 것이라는 시각이 강한 한국문화 속에서 돌봄의 역할은 장남보다 장녀에게 더 크게 부과된다.  

남동생을 하나 둔 30대 K-장녀 이웃의 말은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

"어릴 때부터 매일 들은 말이 누나니까 동생한테 잘해라, 양보해라 이런 거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반대로 내가 동생이고 동생이 오빠였으면 안 그랬을 것 같아요. 아마도 장남이니까 더 식구들이 맞춰주지 않았을까." 

장녀들이 '나다움'을 회복할 때 

결국 K-장녀들의 호소는 한국의 가부장제와 첫째 아이의 심리적 특성이 맞물린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 책임감과 성실함이 가부장 문화와 만나 가족의 높은 기대와 돌봄 요구에 부응하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때문에 K-장녀들의 어려움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들은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느낄 것을 강요받고,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사회적 성취를 양보한다. 때로는 나의 꿈이 아닌 가족의 꿈을 위해 애쓴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각종 법적 관습적 지위에서는 남자 형제들에게 밀리는 것이 K-장녀들이 겪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K-장녀들이 빠져나오는 길은 없을까. 근본적으로는 여성에게 돌봄을 전가하는 가부장 문화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식주를 챙기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돌봄을 가족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어머니나 장녀에게 집중되는 돌봄에 대한 책임도 줄어들 것이다.

영유아기나 노년기, 투병기 등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있는 가족 구성원에게 사회가 적절한 돌봄 체계를 제공한다면, '돌봄'을 이유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기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장녀에게 자신의 감정과 꿈을 투사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고, 장녀들 역시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장녀들은 '첫째 아이'의 특징을 '장점'으로 발휘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제도적, 문화적인 변화가 자리잡는 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제 장녀들이 먼저 나서보면 어떨까? 장녀 특유의 실행력을 발휘해 가족들과 적당히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엄마의 하소연이 듣기 괴롭다면 "이젠 이런 이야기 내게 하지 말아달라"고 선을 그어보고,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식사를 챙기는 대신 이들에게 밥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자. 장녀들이 일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작은 변화를 시작한다면 견고한 가부장제의 틀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딸이 없어도 외롭지 않을 때', 더 나아가 '자식이 없어도 외롭지 않을 때',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될 때, 모두가 자율적이고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변화의 시작이 K-장녀에게 달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K-장녀 현상이 '하소연'과 '푸념'을 넘어 변화의 발판을 만들어 내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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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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