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1 13:34최종 업데이트 20.07.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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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하는 빌 게이츠 ⓒ 연합뉴스


지난 7월 26일, 청와대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 이사장은 서신을 통해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감명을 받았으며 한국이 민간분야 백신 개발에도 선두에 있다"면서 "코로나 및 여타 글로벌 보건 과제 대응에 한국정부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이후 다시 한 번 한국의 코로나19 관련 대응에 대한 신뢰와 협력 의사를 밝힌 셈이다.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의 바이오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빌 게이츠의 속내

미국의 코로나19 피해가 연방정부의 무능한 방역망을 무너뜨리며 심각해지기 시작한 3월 말, 게이츠 이사장은 미국 비영리 재단 테드(TED)의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과 한 인터뷰에서 신속한 대량 검사와 감염자 격리를 시행하는 한국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 초 토크쇼 <더 데일리 쇼>에 출연해서는 "한국은 검사, 격리조치, 동선추적 등을 통해 감염대응에 성공했다"며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24시간 이내에 나오는 한국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미국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기술(IT) 전문가인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의 역동적 방역 능력을 평가할 당시부터 그가 구상하는 인공지능 기반의 감염병 조기진단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실현될 수 있을 것임을 직감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게이츠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한 달여 후 케이티(KT)에 감염병 연구를 위한 명목으로 3년간 총 12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케이티는 이를 통해 실제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감염병 조기진단 알고리즘과 통신 데이터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 경로 예측 모델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KT 직원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관계자들이 ICT 기반 감염병 대응 연구를 위한 화상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 kt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의 첨단 바이오산업의 가능성을 본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이번에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주목받은 SK 바이오사이언스(SK Bioscience)는 지난 2014년부터 각종 백신 개발을 위해 게이츠 회장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올해 5월 코로나19 백신 항원 개발을 위해 게이츠 이사장으로부터 43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빌 게이츠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의 백신 사업을 지원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빌 게이츠 음모론'이다. 황당한 괴담 수준이지만 야후뉴스/유고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28%가 이러한 음모론을 믿고 있다고 한다. 음모론의 내용을 떠나 웃고 넘기기에는 심각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워싱턴 시애틀 등 정보산업분야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과 사이가 좋지 않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그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미국의 정보산업분야 기업들에 대해 비호감을 넘어 적대적 성향마저 보인다. 빌 게이츠 이사장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적대감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 타임스> 4월 17일자. "바이러스 관련 트럼프에 맞선 빌 게이츠 우파의 타깃되다." ⓒ 뉴욕타임스 캡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보건기구(WHO) 자금 지원 중단 결정이 발표된 후 게이츠 이사장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게이츠 이사장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음해는 이때를 기해 더욱 심해진다. 지난 4월 17일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미국 언론들은 일부 우파 세력과 음모론자들에게 게이츠 이사장이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코로나19와 관련한 모든 거짓 정보들 가운데 게이츠 이사장과 관련한 것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백신 이기주의에 맞선 문재인-빌 게이츠 파트너십

백신과 관련한 음모론을 넘어서고 나면 백신 생산을 둘러싼 국가 간의 과열된 경쟁이 나타난다. 7월 26일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게이츠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낸 사실을 전하면서 자국민을 보호할 백신 개발에 세계가 경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게이츠 이사장이 전 세계의 백신 개발 회사들에 투자해야 미국 이외의 지역들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면서 한국이 코로나 19 백신 생산 가능국 중 하나임을 암시했다. 무슨 의미일까?

다수의 외신들은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경쟁 체제로 접어들었다면서, 앞으로 자국민을 위한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예상하고 있다. 현재 3상 임상실험까지 접근하고 있는 네 나라가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다. 문제는 이들 네 나라가 과연 백신 개발 후 자국민이 아닌 모든 지구촌 국가들을 위한 공평한 생산과 배분을 보장하겠느냐는 것. 그렇지 않다면 백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안보 차원 수준의 심각한 국가 간 분쟁이나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 연합뉴스


결국 미국의 백신 이기주의 가능성을 경고해온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이 지구촌 국가들을 위한 공평한 백신 생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지원을 목표로 하는 민간국제기구 GAVI, 전염병대비혁신연합 CEPI 등이 백신의 국가 간 공정한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코벡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이하 코벡스)라는 백신 공급 시스템을 설치, 운영 중이다. 또한 국제백신연구소(IVI)가 CEPI와 상호협력 협약을 맺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IVI 한국 지원위원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로서는 코벡스가 국가 간 백신 이기주의와 백신 안보 경쟁을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백신 개발 가능국 가운데 코벡스 시스템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고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이 시스템에 큰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다. 문재인 대통령과 빌 게이츠 이사장은 서로 국제사회의 공평한 백신 공급을 위해 재정 지원과 기술 지원을 분담할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주 미국 <뉴스위크>는 빌 게이츠 이사장이 문 대통령에게 서신을 전달한 사실을 전하면서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는 제약사인 SK 바이오사이언스가 내년 6월부터 매년 2억 개의 코로나19 백신 키트를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시사지는 그러면서 게이츠 이사장은 문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한국 정부와 협력해 전 세계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역시 백신 민주주의를 향한 문재인 대통령과 빌 게이츠 이사장의 협력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뉴스위크> 7월 마지막주 기사. "빌 게이츠 지원받는 SK, 코로나 백신 1년에 2억 키트 생산 가능" ⓒ 뉴스위크 화면 캡처


<뉴스위크>는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에 가장 근접해 있는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와 함께 한국을 소개하면서 현재의 백신 개발 상황을 전했다. 빌 게이츠 이사장이 서신에서  "한국이 백신 개발의 선두권"이라고 표현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앞선 네 나라와 같은 수준이라는 의미는 아닌 듯하다. 공정한 백신 배분을 위한 파트너인 한국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실제 임상 3상까지 가 있거나 조만간 그럴 것으로 보이는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연구진보다 한국의 연구진은 한 발 뒤처져 있지만, 게이츠 이사장이 지구촌 백신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적, 정치적 파트너로 한국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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