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9 13:15최종 업데이트 20.08.1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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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지킴이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권우성

 
요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끊으려 줄을 서면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키오스크를 이용해 표를 구매해 주세요." 또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주문 받는 직원 대신 이런 안내를 들을 수 있다. "빠른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를 이용해주세요."

그런데, 대체 키오스크가 뭘까? 키오스크를 모르는 건 나뿐인 걸까?


키오스크는 은행, 관공서, 버스터미널, 일반음식점 등에서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는 '무인 단말기' 또는 '무인 안내기'를 말한다. 이렇게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어려운 외국어를 쓰는 일이 늘고 있다. 키오스크라는 말을 모르면 차표를 구매하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일도 어렵다. 왜 이런 말들이 많아지는 걸까?

세종국어문화원은 우리말을 가꾸고 우리말 오염 실태를 진단해 우리말 제대로 쓰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4일 세종국어문화원에서 김슬옹 원장을 만나 우리말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젊은 사람들만 이해하는 '키오스크'

- '키오스크'를 '무인 단말기'로 바꾸자고 제안했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소통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인 단말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다양해요. 어린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한데 '키오스크'라는 말로만 소통하게 되면 젊은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죠. 언어라는 건 소통과 편의성이 중요합니다. 한 번은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전광판에서 '블랙아이스'라는 단어를 보고 화가 났어요. 전광판에 블랙아이스가 뭔지 설명이 되어 있더라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살얼음판이라고요.

사람 생명이 달린 일인데 왜 그런 어려운 말을 써서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거죠? 생명을 지키는 일인데 우리가 왜 그런 설명까지 들어가면서 새로운 말을 익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언어란 소통이 안 되면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럼 블랙아이스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안 보이는 살얼음판' 또는 '노면 빙판'이라고 하면 되죠."

- 젊은층들은 영어를 가까이 여겨서 굳이 우리말로 바꿀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해요.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 게 더 정확하다고 여기기도 해요. '나이브하다'는 말이 그런 예 같아요. 
"그 외국어가 우리말과 확실히 구분되는 새로운 말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죠. '나이브하다'는 '순진하다'는 말로 쓸 수 있잖아요. 만약 순진하다라는 말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면 나이브하다고 쓸 수도 있겠죠.

문제는 순진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이브하다고 말하면서 엘리트주의에 젖어서 남들을 무시하는 티를 내는 겁니다. 언어라는 건 맥락입니다. 순진하다는 게 어떤 문장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말맛이 다 달라져요. 순진하다라는 말 앞에 수식어를 붙여서 다양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 그런 노력은 안 하고 그냥 외국어를 쓰니까 문제인 거죠."

우리말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신조어나 유행어, 은어 따위는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김슬옹 원장의 말은 의외였다. 새로 생기는 말이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 우리말만 쓴다고 늘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언어가 '오염'되었다고 한탄하는 걸까? 어떤 것이 오염이고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변화인 걸까?

- 언어 사용 습관이 변하는 것을 굳이 오염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요? 언어는 꾸준히 변화해오지 않았나요?
"언어는 늘 변하고 있어요. 환경하고 똑같아요. 문제는 잘못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거죠. (유행어 같은 것 말인가요?) 유행어는 잠깐 쓰다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 삼을 필요가 없어요. 특정 집단에서 또래 의식 때문에 쓰는 거고, 쓰다 없어지는 거니까요. 문제는 특정 집단에서 쓰는 언어를 다른 집단에서 쓸 때 생겨요. 또래집단에서 쓰는 언어를 엄마, 아빠에게 쓰면 문제가 되는 거죠. 언어는 이렇게 모두 맥락에 따라 봐야 해요."

- 차별적인 말을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미망인'처럼 차별적인 의미가 담긴 경우도 있어요. 미망인이라는 게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잖아요? '편부모 가정'도 '한부모 가정'이라는 말로 바뀌었죠. 국어문화원과 서울시가 함께 '녹색 어머니회'를 '녹색 학부모회'로 바꾸었고, '유모차'를 '유아차' 혹은 '아기차'로 바꾸었어요. '조선족'이라는 말도 '중국동포'라고 하는 게 옳죠.

차별어를 어휘 중심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넓게 보면 차별적인 언어가 정말 많습니다. SNS를 보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런지 자기 주장만 강하게 드러내면서 누군가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주잖아요? 가짜 뉴스를 바탕으로 격한 댓글을 달거나 누군가를 차별하는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문맹률은 세계 최저지만, 독해력은 OECD 나라 가운데 꼴찌에 가까워요. 맥락에 따른 읽기와 쓰기를 못하는 겁니다.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같은 소셜 미디어 읽고 쓰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봐요."

김슬옹 원장은 말은 모두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말을 바르게 부려쓰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조어나 외국어를 쓰지 않는 수준에서 나아가 독해력을 키우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소셜미디어 배려 교육이 필요하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권우성

 
- 어떻게 국어 교육을 해야 우리 말을 잘 부려쓸 수 있을까요?
"
우리나라 교육은 구태의연하고 획일화된 교과서를 가지고 이루어져서 현장 중심의 말글을 제대로 교육하고 있지 못합니다. 교과서식 획일화 교육이 독서 교육을 망쳐버렸어요. 책은 다양하게 읽어야 재미가 있는 건데 교과서적 읽기를 하면 재미가 없어요. EBS 교재에서만 수능이 나오니까 그 외의 책은 보지를 않아요. 검인정 교과서는 10종이 넘으니까 차라리 낫죠. EBS 교재 중심의 입시 제도는 국가 폭력입니다.

어떤 문명국가에서 하나의 책에서만 대학 진학 문제를 내나요? 논술 교육도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주장을 하는 연습을 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사교육이 커진다고 논술을 안 한다고 하는데, 사교육이 커지지 않도록 공교육을 발전시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예 금지해 버리는 건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정책이죠."

-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같은 소셜 미디어 읽고 쓰기는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배려가 중요해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야기를 들어도 '잘 읽었다'라는 말로 시작해야 하는 거죠. 카카오톡은 사진과 그림, 이모티콘 등을 활용하다 보니 그걸 어떻게 적절히 배합해서 써야 하는지도 교육이 필요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메일을 보낼 때도 기본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요?) 메일 제목이 없다거나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고 파일만 보낸다거나 하는 경우죠.

텍스트로만 소통을 하다 보면 보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편하기도 하지만 오해도 커질 수 있거든요. 그 사이를 채우는 맥락을 부여해야 합니다. (이모티콘 사용처럼요?) 이모티콘을 남발하면 성의가 없어 보이겠지만 맥락에 따라 적절하게 쓰는 건 역동적인 소통 방식이 되는 것이죠. 친하다고 생각해서 하트 모양 이모티콘을 날렸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고요.(웃음) 다 맥락이죠."

- 우리말을 제대로 부려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이 읽고 토론하고 쓰는 정통 방식이 좋습니다. 이런 것도 공부하는 게 필요해요. '한글'만 하더라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교양을 익히고, 열심히 소통하고, 사전을 많이 활용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20, 30대 청년들에게는 다들 글쓰기를 생활 속에서 열심히 실천하는 글쟁이가 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들 칼럼니스트가 되자고요. 요즘 세대가 많은 책을 읽고 논리적인 글을 쓰게 된다면 기성 세대가 쓰는 칼럼과는 다른 읽고 싶고 읽기 쉬운 칼럼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슬옹 원장은 고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우리말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 지금은 국어교육학, 국어사론, 훈민정음해례본학 총 세 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전문가라면 신조어도, 유행어도, 줄임말도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으나 의외로 그는 내가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중요한 것은 언어의 맥락이 아닐까?

그는 좋아하는 우리말로 '상생'과 '시나브로'를 꼽았다. 우리말을 어떻게 잘 부려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가 좋아하는 우리말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생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다 보면 맥락을 짚는 우리말이 시나브로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말지킴이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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