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가 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손잡고 '빨간 맛'(왼쪽), '하루의 끝'등 자사 제작 케이팝을 클래식 버전으로 재해석한 음원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손잡고 '빨간 맛'(왼쪽), '하루의 끝'등 자사 제작 케이팝을 클래식 버전으로 재해석한 음원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 SM엔터테인먼트

 
최근 흥미로운 시도가 음악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 17일 SM엔터테인먼트는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과 손잡고 레드벨벳의 인기곡 '빨간 맛'을 44인조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발표했다. 그동안 국내 가요와 클래식의 협업이 여러 차례 진행되긴 했지만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음악을 클래식 연주곡으로 재해석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지난 6월 양사의 MOU 체결 이후 첫 결과물로 '빨간맛'이 선정된데 이어 24일엔 종현(샤이니)의 솔로곡 '하루의 끝' 역시 서울시향의 연주로 발매되는 등 케이팝과 클래식의 컬래버레이션이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외국에선 활발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만남​
 
 각종 팝과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왼쪽),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협연한 메탈리카의 라이브 음반 'S&M'은 대중음악과 클래식과 대표적인 만남으로 손꼽힌다.

각종 팝과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왼쪽),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협연한 메탈리카의 라이브 음반 'S&M'은 대중음악과 클래식과 대표적인 만남으로 손꼽힌다. ⓒ 소니뮤직, 유니버설뮤직

 
해외에선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힘을 모으는 작업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상당수의 단원들이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소속으로 이뤄진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1885년 창단)는 이름 그대로 대중음악(팝), 영화음악 등을 클래식 편곡으로 재해석한 음반 발표, 공연 활동으로 명성을 얻어왔다.  

지휘자 아서 피들러(1930~1979년 재임)와 유명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1980~1993년 재임) 시대를 거치면서 보스턴 팝스는 대중들이 어려워하는 클래식 입문의 기회를 팝+영화음악의 연주곡을 통해 마련하면서 오랜 기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각종 팝 음악을 꾸준히 재해석하는 악단으론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초반 대중음악계의 메들리 유행을 타고 제작된 < Hooked On Classic > 시리즈 음반은 웬만한 팝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주요 국가 인기 순위를 석권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예스, 핑크 플로이드, 제쓰로 툴,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등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의 명곡을 편곡한 연주 음반을 1980~1990년대에 걸쳐 꾸준히 발표하면서 관심을 얻기도 했다.  

​강렬한 전기기타와 드럼 사운드로 대표되는 록 음악 역시 오케스트라의 힘을 빌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도 한다. 딥 퍼플, 메탈리카, 스콜피온스, 드림 씨어터 등 하드록-헤비메탈 그룹은 각각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손잡고 꾸준히 공연 및 실황 음반 제작을 단행하는 등 변화를 주도한 바 있다.

국내에선 공연 및 발라드 가수 위주 협업 빈번​
 
 김동률은 지난 2018년 발표한 싱글 '노래' 녹음을 위해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참여시켰다 (사진:김동률 공식 페이스북)

김동률은 지난 2018년 발표한 싱글 '노래' 녹음을 위해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참여시켰다 (사진:김동률 공식 페이스북) ⓒ 김동률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만남이 활발한 해외에 비해 국내에선 이러한 시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같은 공연장에서 가요 공연이 이뤄지는 것 자체가 오랜기간 쉽지 않을 만큼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다. 서태지(2008년 로열 필 협연 공연)처럼 파격적인 시도도 없지 않았지만 주로 가요계 쪽에선 이문세, 이선희, 신승훈 등으로 대표되는 중견 가수들의 공연이나 각 지자체에 설립된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 등에서 대중가수와 오케스트라 협업이 빈번한 편이다.  

​서정적인 선율을 표현하려면 장엄한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관현악단의 등장이 필수적으로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김동률의 음악은 클래식의 요소를 녹여내기에 최적화된 구조를 지녔다. 김동율은 최근 SM 클래식 작업에도 참여한 음악감독 박인영과 손잡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자신의 음반 작업에 참여시키는가 하면 대규모 관현악단을 대동한 단독 콘서트를 여는 등 오랜 기간 발라드와 클래식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왔다. 

새로운 콘텐츠의 확보... 케이팝의 변주 시도
 
 서울시향 '빨간맛' 뮤직비디오의 주요 장면

서울시향 '빨간맛' 뮤직비디오의 주요 장면 ⓒ SM엔터테인먼트

 
그동안 발라드 중심의 듣기 편안한 멜로디를 기반에 둔 재해석이 빈번했던 것과 달리 이번 '빨간 맛'에선 경쾌한 댄스 팝을 클래식 음악으로 바꾸는 제법 파격적인 시도가 이뤄졌다. 아이돌 음악 특성상 악보로는 옮기기 어려운 랩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은 편곡의 난제로 등장하지만, 박인영 감독은 목관악기와 현악기를 적절히 안배해 굴곡 있는 전개로 바꾸는 방식을 택해 원곡과는 차별되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간 SM의 작업물에서는 클래식의 요소를 녹여낸 시도가 적지 않았다. 과거 신화의 'T.O.P'처럼 유명 고전(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을 샘플링하는 가벼운 접근부터 연작 싱글 시리즈 < SM STATION >을 통해 연주곡 싱글을 내놓는 등 기획이 있었지만 그 비중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서울시향과 손잡은 '빨간맛'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예 전문 레이블 SM클래식을 설립하며 기존 음반 제작과는 차별화된 시도도 예고한다. 

여기선 아이돌 팬에만 한정하지 않고 폭넓은 계층의 음악팬들까지 두루 포용하겠다는 제법 원대한 꿈도 엿볼 수 있다. 우연히 공연장 앞을 지나가던 어린이가 교향악단이 들려주는 선율에 빠져들며 상상 속 연주자로 변신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빨간맛' 뮤직비디오는 앞으로 진행할 작업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된다면 언젠가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화려한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레드벨벳, EXO, NCT 등의 모습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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