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인물 그 누구에게도 마음 둘 곳이 없다. 이런 영화는 참으로 당황스럽다. 누군가를 응원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인물이 없다. 감정 이입을 거부하는 영화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주인 없는 돈가방을 두고 벌어지는 사건들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범죄자들에게 있기 나름인 '동정을 살 만한' 혹은 '이해할 만한' 사정이 그 누구에게도 없다.

때문에 인간미라곤 하나 없는 매정한 '짐승'들이 연결되는 인과는 혐오스럽다. 그 혐오를 인내하자 감동과는 결이 다른 정서적 충격이 찾아온다. 시작과 끝의 아귀를 제대로 맞추는 결말은 위트 있지만, 경쾌한 웃음보다 깊은 우울감을 선사한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그리는 세상 한쪽이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포스터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포스터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마치 인물 열전처럼 돈가방과 관계되는 여러 인물의 상황을 시간과 상관없이 보여준다. 가방을 둘러싼 인물들이 중구난방 같은 서사는 얽히고 섥힘에도 통일성을 잃지 않는다. 각 인물들의 서사 안에 공통된 요소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 첫째는 돈을 향한 맹목적인 욕망이다. 우연히 돈 가방을 손에 넣는 찜질방 아르바이트 중만(배성우 분), 사채업자에게 위협을 당하는 태영(정우성 분), 밀항을 원하는 연희(전도연 분),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미란(신현빈 분), 태영을 닦달하는 박사장(정만식 분) 등은 돈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돈'이다.

이들에게는 돈이 필요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 돈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앞을 두고 존재하는 것은 가져야 하는 이유보다는 맹목적인 욕망뿐이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맹목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처럼 위험하다. 그 폭탄은 차지했다 착각한 순간 터지고야 만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다. 어차피 별다른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악당이다. 돈을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중심인물부터, 그들 근처에서 어른거리는 주변 인물 모두가 그야말로 악당들이다. 남녀노소, 직업을 가리지 않고 이들은 누구 하나 다른 이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돈을 차지하기 위한 살인은 끔찍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는 섬뜩하다.

그러나 잔혹한 장면과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가 야기되더라도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마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진태(정가람 분)가 미란의 남편으로 착각해 잘못 죽인 남자조차 강간범이니, 그야말로 악당들의 천국이다.

이 악당이 가득한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징악'이 확실하다. 각자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무게만큼 죗값을 받는다. 가장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자는 가장 잔혹한 죽음을 맞는다. 살인하지 않았으나 제 것이 아닌 것을 탐낸 중만은 살아남지만, 그가 처하게 된 상황 역시 녹록치 않다. 이러한 징악은 교훈 대신 자처한 것이라는 냉소를 남긴다.

동아줄로 여기고 꼭 쥐고 있으려 했던 돈은 위기를 자초하는 요물이다. 그 돈은 누군가의 목숨값으로 지불된, 애초부터 주인이 없는 돈이다. 저주가 붙은 왕비의 목걸이처럼 차지한 사람은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주인을 찾는 돈은 태영이 찾는 호구처럼 계속해서 호구가 될 욕심쟁이를 불러들인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한 장면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맹목적으로 돈을 쫓는 악당들의 비참한 최후,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반복하고 중첩시키는 서사이다. 저마다의 색깔을 자랑하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그 돈을 원하는 걸까. 태영과 연희는 사채업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갚을 생각보다는 돈을 들고 도망갈 궁리에 바쁘다. 사채업자 박사장에게 돈을 줄 수 없는 채무자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미란은 "보험은 들었지?"라고 묻는 연희의 제안을 주저 않고 실행한다. 중만은 주인없는 돈을 일단 감추고 본다. 그들의 그 돈을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어떤 절박함이 이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박사장에게 무언의 협박을 당하는 태영이지만 살기 위해 그 돈을 갚을 생각은 그리 없어 보인다. 궁핍한 중만에게 누구보다 돈이 필요해 보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만큼 급박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란의 비참한 삶은 일말의 연민이 자아내나, 그 삶이 그녀의 행동을 정당화해 줄 수는 없다. 깜찍한 미소를 짓는 연희가 보이는 것은 형제를 잡아 먹는 상어의 무자비함뿐이다.

이 맥락없는 욕망은 돈이 가진 위용을 잘 드러낸다. 돈은 이제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되었다. 물질만능을 경계하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걱정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경계하고 걱정해봐야 달라진 것이 그리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비판과 우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위력은 점점도 공고해질 뿐 약화되지 않는다.

이제 누구도 무엇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돈은 응당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방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돈을 갖게 되었는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폐허 앞에서 눈물 짓는 아들 중만에게 순자(윤여정 분)은 "두 손발만 있다면 언제든 일어설 수 있다"고 위로한다. 며느리 영선(진경 분)과의 줄다리기 속에서 순자는 치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모호한 언행을 보인다. 그러나 집으로 들이닥친 박사장을 보며 "무슨 형사가 문신이 있냐"는 순자의 일갈은 그녀가 제정신이라는 심증을 굳힌다.

아들은 향한 순자의 위로는 아무런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두 손발만 있으면 일어설 수 있다는 말은 경험에서 나온 진실된 조언이다. 그러나, 마치 중증 치매 환자의 이야기처럼 공허하다. 중만은 이미 그 두 손발로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상황은 더 나빠질 뿐 개선되지 않았다. 절망은 이처럼 희망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난다. 더이상 세상에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들이 매달릴 곳은 돈이다.

모두가 그 돈을 원한다. 그러나, 누구도 차지할 수 없다. 모두가 그 돈을 원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 돈을 원한다. 그러나 그 돈은 살 길을 보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 돈을 원하기 때문이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한 장면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세상 탓을 해야 할지, 악당이 되어버린 자신을 탓해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그것도 알 수 없다. 구원이 사라진 세상,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돈가방을 집어드는 짐승들이 판을 치는 암울한 세상,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선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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