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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인권대응 네트워크는 코로나19를 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코로나19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문제의식을 담아 글을 기고합니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코로나19, 인권을 말하는 이유②]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재감염'보다 'OOOO'을 더 무서워했다 http://omn.kr/1oav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체계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첫날인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방역 지침을 지키며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체계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첫날인 5월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방역 지침을 지키며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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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까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바꿔놓은 한국 사회 모습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차단'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의 입에는 '마스크'가 씌어졌다. 회사원은 재택근무를 하라고 하고, 학생들은 집에서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수업을 듣는다. 코로나 확진자들은 격리된다. 확진자와 밀착 접촉한 사람들, 해외 입국자들은 14일간 격리 기간을 거쳐야 한다.

확진자가 나온 병원은 코호트 격리되기도 했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이들 역시도 스스로 조심하자고 말한다. 되도록 사람들과 접촉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는 모이지 말란다. 서울 도심에서의 집회는 금지됐고 문중원 열사 분향소는 철거됐다. 그렇게 타인들과의 교류는 제약을 받고 있다. '언택트(Untact)'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생긴다.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적 요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코로나19가 위험하니 "사람들과 관계맺기를 참으라"라고 단순히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사회에 위험이 닥쳤을 때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재난에 대한 기초정보와 정부 부처의 대응과 평가, 재난을 이겨낼 다양한 방안들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시대, 어느 때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커뮤니케이션 확대? 낙인과 혐오만 커져

한 공동체 내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디어 사업자 그리고 정부, 시민(개인 혹은 공동체)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에서 이 주체들은 한국 사회 내 커뮤니케이션이 확장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코로나19, 어느 때보다 미디어(주되게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창궐', '쇼크', '패닉', '뚫렸다'라는 기사들도 사람들에게 과도한 공포감을 조성했다. 낙인과 혐오 조장 문제들도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 병명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명명했음에도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우한폐렴'이라는 용어를 고집했다. 헤럴드경제의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 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 기사는 어땠나. 

중국 동포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주범처럼 비치도록 만드는 전형적인 낙인 기사였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상승한 '대구' 또한 다를까.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코로나 사태는 '대구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는 언급하지 않았나. 국민일보의 '[단독]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 기사 또한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의미할 뿐,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어떠한 도움이 되지 않는 보도였다. 오히려 코로나 방역에 방해요소만을 키웠다. 이태원 클럽을 다녀간 이들을 숨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의 인권 또한 뒷전이었다. 우리는 기억한다. '31번 환자'는 양성판정을 받아 치료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언론매체는 그를 향한 부정적 여론에 기대어 코로나19 확진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했다. 

단지 31번만이었던가. 그 이전에는 또 몇몇 확진자들이 그 타깃이 됐다. 신천지라는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비난에 직면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한지역에 거주했던 교민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마음을 졸였던 것은 다른가.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환자가 다녀가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일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환자가 다녀가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5월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일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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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코로나19사태에서 진짜로 '창궐'한 것은 바이러스가 아닌 낙인과 혐오가 아니었을까. 특정 국가의 사람들 그리고 특정 지역, 특정 종교, 확진자(환자), 이들만 도려내면 한국 사회는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정부, 미디어, 시민들 모두 공범이 돼 계속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정부는 코로나19 시대 시민들의 커뮤니케이션 확대를 위해 노력했는가. 지난 3월 10일 정부는 방역의 방해요소로 '가짜뉴스'를 지목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심의했고, 삭제했다. 그간 위원회는 '"자물쇠로 잠그고…" 다낭에서 격리된 우리 국민들'(2월 25일, YTN 단독 보도) 등 특정 국가와 지역·인종 등 차별과 비하, 코로나19 방역에 위협을 주는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심의해왔다. 

하지만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코로나19와 관련 없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왼손 경례' 사진(3월 11일)와 김정숙 여사가 일본산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허위 정보에 대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정보'라고 판단해 삭제한 것이다. 코로나19 방역 활동에 방해된다거나 시급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위 공직자의 명예훼손성 게시글이 인터넷에서 사라졌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후,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비롯한 오픈넷은 '정치 심의'라고 비판했다. 

'가짜뉴스' 등 허위정보에 대한 심의 그리고 삭제보다는 재난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글들이 더 활발히 유통되도록 하는 게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부적절한 정보들이 유통되는 데에는 개인들의 책임도 컸다. 정부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공개한 확진자들의 동선을 두고 신원을 특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로 인해 확진자들은 "불륜", "노래방 도우미" 등과 같은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코로나19 방역 활동에 직접적으로 방해되는 허위정보가 유포되기도 했다. 일부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코로나19 확진자 행세를 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 등 사회적 불안을 조장했다. 이것은 명백하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행위였다.

'혐오'와 '낙인'의 대상은 누구인가

사회적으로 큰 재난에 닥쳤을 때 가장 보호받아야 할 이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혐오'와 '낙인'은 늘 소수자를 향한다. 코로나19 사태는 그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안전이라는 울타리를 친 이들은 누구인가. 그 울타리에서 내몰리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 사회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벌어지지 않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쪽 역시 소수자다. 기본적으로 정보 접근 취약계층이 직접적으로 소외되기 마련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받는 과정에서 배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청각 장애인 사례는 대표적이다. 장애인권단체들이 '접근권' 보장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질병관리본부 브리핑에 수어 통역사가 배치됐다.

스마트기기 조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 본인의 언어로 코로나19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친구들과 놀면 안 된다", "마스크 빼면 안된다"고 행동 통제만 받는 아동들 역시 정보 접근 취약계층이다. 언어가 다른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증가하던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안타깝게도 체불임금을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고 들었다.

문제는 재난정보를 제때 받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결국, 그들의 건강권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내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그들의 언어, 그들의 생활패턴, 그들의 편의에 맞는 정보가 적재적소에 제공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궁극적으로 그런 뜻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요구되는 '언택트'. 한국 사회 산업은 보다 빠르게 그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정부의 무게중심도 그쪽으로 쏠린다. 사람들은 그것이 곧 미래 사회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코로나19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제된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 미래는 재앙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해야 한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주장될 때 '시민들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통신 및 미디어 사업자들의 당연한 공적 책무를.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할 정부에게 말이다. 언택트 시대, 우리들이 더 모이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이유다.

[다음 기사] [코로나19, 인권을 말하는 이유④] 고시원에서 이탈했다가 고발... 그는 왜 스스로 신고했나 http://omn.kr/1oda8

태그:#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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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그냥 내킬 때 내키는 글'만' 쓴다. 개인적으로 자랑할 건 동거묘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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